국세청 "주류, 소매업체 구입가보다 할인 판매 가능"
물가 안정화 위한 정부 정책에 자영업자 부담 가중

[시사저널e=이숙영 기자] 고물가를 잡기 위한 정부의 고군분투가 이어지는 이번엔 정부가 주류 가격으로 눈을 돌렸다. 음식점과 대형마트 등 소매점에서 소주와 맥주를 공급가보다 저렴하게 팔 수 있는 길을 터줬는데, 이번 정책으로 자영업자들의 부담만 가중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국세청은 지난달 28일 한국주류산업협회 등 주류 관련 단체에 '식당·마트 등 소매업자가 소비자에게 술을 구입가격 이하로 팔 수 있다'는 내용의 안내를 보냈다. 

그간 국세청 고시에 따라 주류 소매업자는 주류를 구입가격 이하로 판매할 수 없었다. 경쟁자를 이기기 위한 술 덤핑 판매, 소매업자가 술을 공급가보다 저렴하게 판매하고 이로 인한 손실비용을 거래처에게 받는 편법 거래를 막기 위한 조치였다. 

하지만 이번 정책으로 음식점, 대형마트 등에서는 공급가격에 상관없이 원하는 만큼 할인 판매가 가능해졌다. 예컨대 음식점은 소주를 1500원으로 공급받은 뒤 손님에게 1500원보다 낮은 가격에 판매할 수 있다. 

정부가 기대한 것은 소주·맥주 가격 인하를 통한 물가 안정이다. 정부의 이번 정책에 '서민의 술'로 불리는 소주가 1000원 시대를 맞이할 수 있다는 희망찬 전망이 나왔다.  

하지만 일반 음식점에서 1000원 소주를 판매할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술값은 단순히 공급가 인상으로만 오른 것이 아니다. 전기세, 가스비, 인건비 등 사회 전반의 물가가 올랐고, 자영업자들은 이러한 비용을 포함해 술값을 책정했다. 

자영업자 입장에서 술값을 내리게 되면 손해일 수밖에 없다. 또 만일 주변 음식점에서 술값을 내려 어쩔 수 없이 가격을 내린다 하더라도 안주가격을 올려 술값에서 얻은 손실을 충당할 가능성이 높다. 음식점을 운영하는 자영업자들의 입에서 '조삼모사'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온라인 자영업자 커뮤니티에서는 "(술값이) 싸면 적자인데", "이해가 되지 않는다", "더 이상 술로 수익창출하긴 어렵겠다" 등의 불만이 나오고 있다. 또 정부가 허용해주더라도 술값을 내리진 않겠다는 의견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대형마트에서는 이번 정책에 대해 자영업자들과 상반되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전반적으로 이번 정책을 환영하는 분위기다. 규모가 큰 대형마트에서는 손익을 고려해 다양한 할인 행사를 펼칠 수 있다. 또 술을 미끼 상품으로 삼아 고객을 모으는 것도 가능해진다. 

음식점을 운영하는 자영업자들은 이미 지난 3년여간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막대한 타격을 입었다. 엔데믹 전환 후 다시 유흥시장이 부흥하고 있는 현 시점에서 자영업자들은 시장이 코로나 전처럼 회복될 것이란 기대감이 올라오고 있었다. 

그러나 정부의 이번 정책은 자영업자들의 기대에 찬물을 뿌렸다. 자영업자들은 이번 주류 가격 할인으로 그나마 있던 손님도 마트나 편의점으로 향할까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물론 소비자 입장에서 소주와 맥주 가격이 떨어지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다만 가뜩이나 코로나로 힘들었던 자영업자들이 지금보다 더 힘들어질 것을 생각하니 마음이 불편한 것도 사실이다. 자영업자까지 배려한 정부의 정책이 절실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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