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렌드 민감한 유통업계, 카테고리 킬러에서 라이프스타일 플랫폼으로 거듭

[시사저널e=한다원 기자] 유통업계 전반을 취재하다 느낀 점은 유통, 식음료 부문은 트렌드에 민감하다는 것이다. 트렌드를 알려면 유통 기사를 보면 될 정도다. 일상과 가장 맞닿아있고 유통업계와 관련된 소비자 연령층도 낮기 때문이다.

기자의 지인들은 가끔 유통업계가 유행을 선동한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성수동, 압구정로데오 등 소위 말하는 핫한 공간에서 하는 팝업스토어들은 모두 유통업계에서 진행한다. 편의점에서 출시를 앞둔 빵, 맥주 등은 인스타그램과 같은 SNS 공간에서 큰 인기를 끈다. 최근에는 방탄소년단(BTS) 데뷔 1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팬들이 모이면서 BTS와 관련한 상품을 판매한 백화점, 편의점 매출도 크게 뛰었다.

그러던 유통업계가 요새 경계를 뛰어넘는다. 화장품을 주로 판매하던 올리브영이 주류를 판매하기 시작했고, 편의점은 저가 커피를 판매하거나 위스키를 한정 물량 선보이며 소비자들이 판매 시간에 맞춰 줄을 서서 기다리는 일명 ‘위스키 오픈런’ 현상을 만들어냈다. 또 2010년대 소셜 커머스 문을 열었던 쿠팡도 오픈마켓에 쿠팡이츠, 쿠팡플레이 등으로 서비스 카테고리를 지속 확장해 나가고 있다. 즉 식료품, 생활용품 등으로 나눠 특정 제품만 판매하는 일명 카테고리 킬러 대신 모든 제품군을 한 번에 판매하는 ‘라이프스타일 플랫폼’이 대세로 떠오른 셈이다.

그동안 학창시절부터 기자는 ‘중간만 하면 된다’라는 말을 듣고 살았다. 그런데 요새 유통 취재를 하다보면 그 중간 경계가 허물어진 기분이 든다. 소위 말하는 MZ세대 소비층들의 선호도가 어느 쪽인지 도통 감을 잡기 어렵다.

얼마 전 주말 다녀온 성수동도 그랬다. 서울숲부터 성수동을 걸어오던 주말 유독 그 중간이 없어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성수동에 들어선 명품 브랜드 ‘디올’은 성수동의 랜드마크로 자리잡았고 샤넬, 헌터, 누누씨, 발렌티노 등 유명한 브랜드들은 모두 성수동에 모였다. 그 중에서도 눈에 띄었던 것은 ▲까르띠에 팝업스토어에서 멤버십 가입으로 받은 무료 커피를 마시며 성수동을 걷다가 분식을 먹거나 ▲디올에서 스몰 굿즈를 구매하고 성수동 길거리를 걸으며 하루필름을 찍거나 등등.

성수동에서 느낀 감정은 유통업계에서도 느껴진다. 디너 코스 한 끼가 35만원인 루이비통 식당은 5분 만에 예약이 마감되는 동시에 편의점 도시락은 점심시간만 되면 찾기 어려울 정도로 판매율이 높다. 용리단길로부터 시작된 위스키 열풍은 편의점 하이볼로 옮겨졌다. 교촌치킨은 아예 치킨을 오마카세로 만든 치마카세를 이태원 매장에 추가했다.

중간은 평균, 기준이라는 말로도 대체될 수 있다. 이처럼 공통된 무언가로 나눠지는 고가와 저가 사이, MZ세대들의 중간은 좀처럼 특정하기 어려워졌다.

결국 유통업계가 카테고리 킬러에서 라이프스타일 플랫폼으로 탈바꿈하는 것도 중간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개개인의 취향을 제공하기 위해 모든 것을 제공하려는 유통업계의 의도는 충분히 알겠지만, 어딘가 기업만의 특색이 사라지는 것 아닌가 하는 아쉬움은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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