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가스공사 미수금 급증에 재무부담 가중
정치 고려 따른 연료비연동제 왜곡 운용 지적 
“이해관계자 참여 독립적 가스위원회 설립해야”
“국제가스가격 따른 연동제 운용원칙 정립 필요”

[시사저널e=최성근 기자] 연료비연동제가 정치 논리에 휘둘리면서 한국가스공사 미수금 급증으로 이어지고 있단 지적이 나온다. 다만, 급격한 가스요금 인상을 감안했을 때 현 상황에서 연료비연동제를 원칙대로 운용하기도 쉽지 않단 분석이다. 국제가스가격 수준에 따른 제도 운용 원칙을 마련하고 이해관계자 의견을 종합적으로 수렴해 가스요금을 책정할 위원회를 설립해야 한단 조언이 제기된다.

22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산업통상자원부 산하 공기업인 한국가스공사는 미수금(기타비금융자산) 문제로 재정 압박을 받고 있다. 미수금은 기업 자산을 처분했을 때 현금을 아직 받지 못한 부분을 말한다. 다만, 가스공사의 미수금은 일반적 미수금과 차이가 있다. 판매 등 계약이 아닌 연료비 연동제로 인해 발생하고 금융자산으로 판단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채권추심도 불가능하다.

가스공사의 미수금은 2020년 6911억원에서 2021년 2조2385억원, 2022년 8조5856억원으로 늘어났고 올해 1분기는 11조6143억원을 기록했다. 부채는 2020년 28조2000억원에서 지난해 52조원으로 급증했다.

미수금 증가의 근본 원인은 가스요금에 국제가스가격 상승분을 시의적절하게 반영하기 위해 도입된 연료비연동제가 정치적 유불리에 따라 왜곡 운영된데 따른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정권이 선거 등을 앞두고 연료비연동제를 중단하면 국제가스가격 상승분이 가스요금에 제대로 반영되지 못하게 되고 이는 가스공사 미수금 증가로 이어진단 것이다.

2020년 7월 당시 정부는 가스가격 상승으로 인한 물가불안 요인 등을 이유로 원료비 연동제를 중지했다. 이후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글로벌 가스 가격이 급상승했으나 연료비연동제를 재개하지 않았다. 

이날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한국가스공사 미수금 급증의 원인과 쟁점’ 토론회에서 손혁 계명대 교수는 “미수금 문제는 가스공사 대주주인 정부에도 상당한 책임이 있다”며 “2010년 이후 논란이 지속됐지만 관계당국은 구체적 해결책을 제시하지 않고 방치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손 교수는 “정치적 이유로 인한 원료비 연동제 중지를 막아야 한다”며 “상승한 국제가스가격이 가스요금에 당장 반영되지 않으면 물가상승 억제, 저렴한 가스요금으로 일시적 국민후생 증가는 가져올 수 있지만, 선거 후 한꺼번에 반영되는 가스요금 인상으로 인해 지난해 말 난방비 폭탄과 같은 상황이 나타날 수 있다”고 말했다.

가스요금을 시장논리에 반해 지속적으로 억제한다면 추후 더 큰 위기가 왔을 때 완충력이 많이 떨어질 것이란 우려도 제기됐다. 정준희 대구대 경영학부 교수는 “원료비와 공급비용을 정부가 조정하면서 가스공사 소액주주, 가스공사 구성원이 피해를 받았으나 이들의 피해보다 다수 국민과 기업이 혜택을 받았기에 소액주주와 구성원들에게 희생을 강요해왔다”며 “그러나 이제 사안이 매우 중대해졌다. 가스공사 현금부족을 해결하기 위해 지난해 12월 31일 가스공사법을 개정했으며 영구채도 발행했다. 사안을 미루지 말고 적시에 해결해야 한다”고 했다.

“한국가스공사 미수금 급증, 현실 감안 연료비연동제 원칙 마련 필요” / 표=정승아 디자이너
“한국가스공사 미수금 급증, 현실 감안 연료비연동제 원칙 마련 필요” / 표=정승아 디자이너

조광희 동국대 교수는 “만약 연료비 연동제의 중지를 무조건적으로 수행하지 못하는 상황이 도래하면 당국은 가스공사 미수금에 대해 공식적 공문이나 보증 등 미수금에 대한 통제 부분을 확약할 수 있는 정책을 펼치거나 향후 도입되는 규제자산과 규제부채에 대한 회계기준을 적극 도입해 이러한 미수금의 인식에 대한 시장의 불확실성을 해소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전기요금 의사결정기구인 전기위원회 같은 가스위원회 신설 필요성도 제기됐다. 정부, 에너지공기업, 주주, 소비자 등 가스요금 관련 다양한 이해당사자가 존재하는 상황에서 가스요금, 연료비 연동제 중단을 당국이 일방적으로 결정하지 않고 가스요금 관련 정책을 독립적으로 의사결정할 수 있는 가스위원회 운영이 필요하단 주장이다.

손 교수는 “가스요금 인상을 좋아할 시민은 없지만 정부나 가스공사가 위원회를 통해 시민들과의 소통채널을 확대하고 요금인상의 불가피성을 호소하며 바우처 등 다양한 제도를 고려한다면 시민들도 인상을 받아들이고 가스를 절약하는 등 요금인상에 미리 대비할 것”이라며 “전기요금 의사결정기구인 전기위원회가 당국 영향을 받는단 비판이 있는 것을 감안해 유명무실한 위원회 설립이 아닌 진정한 독립적 가스요금 의사결정 기구를 만들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현실적으로 정치적 고려가 배제된 연료비연동제 시행이 쉽지 않을 것이란 판단에 기반한 타협안도 제시됐다. 실제 가스공사는 올해 가스요금을 메가줄 당 8.4원 올리면 2027년, 10.4원 올리면 2026년 미수금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보고 있으나, 가스요금 인상은 거의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말부터 난방비 폭탄 문제가 사회적 이슈가 되면서 가스요금을 올리지 못하단 지난달에서야 메가줄당 1.04원 인상했다.

배경석 한국가스공사 재무처장은 “지금 쌓인 미수금을 1년 내에 해소한다면 현재 가격의 두 배, 220%를 올려야 한다. 지금 5% 올리는 것도 사회적 논란인데 220% 올리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며 “4년 내에 해소하려해도 50% 정도의 요금인상 효과가 있다”며 “단기간에 문제를 해소하기 어렵고 국민들이 다 부담하는 것도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고 말했다. 

이어 “해외의 경우 영국, 독일 등 유럽국가들이나 일본은 일정부분 정부 보조금을 통해 급격한 연료비 인상에 대한 본인 부담을 줄여주는 사례들이 있다”며 “지난해 (에너지 가격 급등) 사례에서 우리나라는 다수 공사, 한전이 버퍼 역할을 했는데 이걸 해소하는 데 있어서도 적절한 보전이 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미수금 상하한선 조정 필요성도 제기됐다. 배 처장은 “애초 미수금이 쌓이기 시작할 때는 유가가 50달러로 쌀 때였는데 유가가 오르고 100달러일 때 연동제를 중단하잔 얘기가 나왔다”며 “40~60달러 정도는 국민 부담이 낮다고 볼 수 있다. 일정 수준 이하에선 연동제를 계속하고 80달러, 100달러 등 실질적 국민 부담이 될 때 부담을 줄여주기 위한 방안을 시행하고 회수하는 측면들이 있어야 한다”고 제언했다. 도시가스에 부과되는 세제 부분에 대한 개편 필요성도 제기됐다. 

여당인 국민의힘은 이날 연료비연동제 시행 방향을 주된 정책방향으로 삼겠단 방침이다. 김기현 대표, 윤재옥 원내대표 등 당 주요인사들이 자리해 힘을 실었다. 이날 토론회를 주최한 이인선 국민의힘 의원은 “더 이상 정치적 논리가 개입되지 않고 전문가들에 의한 투명한 가스요금 산정의 시발점이 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다만, 내년 총선이 다가오는 상황에서 가스요금 인상에 대한 여론 부담을 감수하고 원칙을 고수하긴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조 교수는 “연료비 원동제를 선거 등 정치적 논리로 중지하지 않으면 미수금은 자연스럽게 사라진다”며 “현재 가스가격 인상을 반영하지 않는다면 올해 말까지 미수금은 더욱 증가할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22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이인선 국민의힘 의원 주최로 ‘한국가스공사 미수금 급증의 원인과 쟁점’ 토론회가 열렸다. / 사진=최성근 기자
22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이인선 국민의힘 의원 주최로 ‘한국가스공사 미수금 급증의 원인과 쟁점’ 토론회가 열렸다. / 사진=최성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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