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직급 통합 나선 두산·효성···주요 대기업들 변화 바람 이어져
수평 문화 확산으로 빠른 의사결정·MZ 인재 영입 등 장점 있지만 승진 기회 축소 등 불만도
전문가 "직급 통합, 대기업 내에서도 사업부따라 상이 적용 필요해"

/그래픽=정승아 디자이너
/ 그래픽=정승아 디자이너

[시사저널e=정용석 기자] “직장 생활의 목표가 사라진 느낌이다. 임원 승진 말고는 성취감을 느낄 기회가 없다.” (H사 책임매니저 A모 씨)

대기업을 중심으로 공공기관까지 인사제도 개편을 통한 직급 단순화 바람이 거세다. 기존 직급인 ‘사원, 주임, 대리, 과장, 차장, 부장’이 사라지고 ‘매니저, 책임매니저’ ‘프로, PM, PL’와 같이 두세 단계로 직급을 확 줄이는 것이다. 수평적인 조직문화를 강화하고 유연성을 높인다는 게 이 인사체계의 목표지만, “승진 기회가 줄면서 임금 상승 기회도 줄었다”며 불만을 늘어놓는 임직원도 많다.

22일 업계에 따르면 최근 두산그룹은 지난달부터 직급을 두 단계로 축소한 인사체계를 운영 중이다. 과장·차장·부장은 ‘수석’으로, 사원·대리는 ‘선임’으로 통일한다. 직급 개편은 사무직에 우선 적용하고 생산직 등에도 차례로 시행할 예정이다.

직급 단순화 바람은 기업 전반으로 퍼지고 있다. 효성은 지난 2019년부터 검토했던 직급 축소 방안을 최근 승인했다. 다섯 단계였던 직급을 세 단계로 축소해 사원·대리는 ‘프로’로, 과장·차장은 ‘퍼포먼스 매니저(PM)’, 부장은 ‘퍼포먼스 리더(PL)’가 됐다. 이에 대해 효성그룹 관계자는 “수평적 조직문화를 구축하고 유능한 직원들에게는 빠른 승진 기회를 주겠다는 의도”라고 했다.

임원 직급도 하나의 직급으로 통합하는 추세다. CJ는 지난해 사장·총괄부사장·부사장·부사장 대우·상무·상무대우 직급을 전부 ‘경영리더’라는 하나의 직급으로 통일했다. SK그룹은 모든 임원이 ‘부사장’이다. 2019년 8월 사장급 이하 임원을 전부 부사장으로 통일해 부사장만 800명 가까이 되는 기업이 됐다. 

직급에 이어 호칭도 바뀌었다. 삼성전자는 2017년부터 직급 대신 ‘프로’로 부르도록 했고 임직원 간 상호 높임말을 쓰도록 했다. LG에너지솔루션은 작년부터 직장동료를 부를 때 ‘님’이라는 단일 호칭을 사용한다. 임원 이름이 ‘이광수’라면 신입사원이 임원에게 “이광수님”이라고 부르는 식이다.

기업들이 직급과 호칭 통합에 나선 이유는 뭘까. 변화의 배경에는 기업들의 ‘위기의식’이 있다는 게 재계의 설명이다. 재계 관계자는 “4차 산업혁명, 코로나19 팬데믹 등을 거치면서 경영 환경이 급변하는 상황을 겪다보니 상명 하복식 관료주의 체계에선 변화를 따라가기 힘들다는 의식이 늘어나는 추세”라고 했다. 비즈니스 모델이 급변하면서 의사결정 속도가 중요해진 만큼 직급이 줄어들어야 그 속도도 빨라질 것이란 발상이다. 

재계는 직급 단순화를 통해 수평적 조직문화가 구축되면 서열에 대한 거부감이 큰 MZ세대 인재 영입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 “승진은 언제”···전문가 “기업별 직급 단순화 적용 장단점 따져봐야“

직장인들은 이러한 변화를 환영하고 있을까. 일각에선 직급 ‘다이어트’가 승진 기회 축소로 이어진 점을 불만 사항으로 꼽고 있었다. A씨는 “직급 통합이 없었을 때는 승진을 바라보고 열심히 일했다”면서 “책임 매니저 안에서도 연차가 12년 이상 차이 나는데 임원 승진은 먼 이야기라 동기 부여가 줄었다”고 했다.

기업들이 직급 통폐합과 더불어 성과주의를 강조한다지만 보상 체계가 미흡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S사의 ‘PM’ 직급인 B모(34) 씨는 “성과를 통해 동기 부여가 이뤄진다지만 결국 성과급은 기업의 업황에 달렸다”면서 “상사보다 성과가 좋으면 더 큰 보상을 받을 수 있어야 직급 단순화의 의미가 있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대기업들이 직급 단순화를 단순 적용하기보다는 개별 사업부의 특성을 고려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제도의 장단점을 따져보고 기존 직급체계를 유지할 곳은 유지해야 한다는 의견이다. 

서지용 상명대 경영학부 교수는 “기업마다 사내 분위기도 다르고 사업 내용도 다르다. 개인 직무 베이스가 중요한 사업부같은 경우는 수평 조직이 더 좋을 수 있지만 팀 단위로 움직이는 조직은 ‘업다운’ 방식의 프로세스가 필요할 수 있다”면서 “대기업도 사업군마다 직급 단순화 정도를 상이하게 운영하는 게 좋을 것 같다. 일률적으로 직급 단순화하는 행태를 긍정적으로 보긴 어려운 부분이 있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직급 단순화가 기업 내 리더십의 부재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하기도 한다. 서 교수는 “직급 단순화로 아무래도 기존 직급제도보다는 의사전달 과정에선 효과를 볼 수 있지만, 사업을 전체적으로 총괄하고 결정하는 데 있어선 책임 회피 현상이 발생할 수 있다”면서 “이는 결국 사업을 이끌어나가는 리더십의 부재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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