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간호법은 유관 직역 간 갈등 초래”···간호계 “정치적 책임 물을 것, 정치인과 관료 단죄”
간호계 “간호사 의료행위는 불가능” 주장···의협 등 의료연대, 17일 총파업 유보
향후 면허증 반납 운동 등 단체행동 가능성 전망···보건의료계 “각종 직역 화합 필요”

[시사저널e=이상구 의약전문기자] 최근 논란이 일었던 간호법 제정안에 대해 윤석열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했다. 이에 간호계가 강력 반발하고 나섰다. 보건의료 직역 간 갈등이 최고조에 달한 가운데 향후 간호계의 단체행동 돌입 여부가 주목된다.   

16일 대통령실에 따르면 윤 대통령은 이날 오전 제20회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간호법 제정안 재의요구안(거부권)을 심의해 의결했다. 앞서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은 전날 윤 대통령에게 간호법 제정안에 대한 재의요구권 행사를 정식으로 요청한 바 있다. 간호법 제정안은 전문 의료인 간 신뢰와 협업을 저해해 국민 건강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며 의료에서 간호만 분리하면 국민이 간호서비스를 받을 권리가 제한된다는 게 조 장관 건의 이유다. 

이날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는 간호법 제정안이 지난달 27일 더불어민주당을 비롯한 야권 주도로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지 20일 만이다. 윤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 모두발언에서 “간호법안은 유관 직역 간 과도한 갈등을 불러일으키고 있다”며 “간호 업무의 탈 의료기관화는 국민 건강에 대한 불안감을 초래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이같은 사회적 갈등과 불안감이 직역 간 협의와 국회 숙의 과정에서 해소되지 못한 점이 아쉽다”라고 지적했다. 

16일 윤석열 대통령이 간호법 제정안에 대한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한 가운데 서울 용산 대통령 집무실 앞에서 대한간호협회 주최로 열린 간호법 공포 촉구 기자회견이 진행되고 있다. / 사진=간협
16일 윤석열 대통령이 간호법 제정안에 대한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한 가운데 서울 용산 대통령 집무실 앞에서 대한간호협회 주최로 열린 간호법 공포 촉구 기자회견이 진행되고 있다. / 사진=간협

이같은 윤 대통령의 간호법 거부권 행사에 대해 대한간호협회 등 간호계는 강력 반발했다. 간협은 간호법 제정 추진 범국민운동본부와 공동으로 이날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거부권 행사를 규탄했다. 간협과 간호법 범국본은 “윤 대통령에게 정치적 책임을 묻겠다”며 “총선기획단 활동을 통해 간호법을 파괴한 정치인과 관료를 단죄하겠다”고 강조했다. 이어 “간호법은 즉각 국회에서 재의할 것을 요청한다”면서 “국민의힘의 간호법 중재안은 지난 14일 고위당정협의 결과 브리핑에서 여당 스스로 허위사실을 주장하면서 파기시켰으며 대통령 거부권 행사로 확인 사살까지 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간협과 간호법 범국본은 “지난 2년 간 국회에서 적법 절차에 의해 심의 의결된 간호법은 좌초됐지만 국회 논의 과정에서 진실은 살아 있기에 진실의 힘과 지혜를 조직, 다시 국회에서 간호법을 재추진할 것”이라고 역설했다. 이어 간협은 이날 오후 2시 30분 대표자 회의를 시작했다. 이 회의에서 간호계는 향후 단체행동 수위와 방식 등을 논의하고 있다. 간협이 지난 8일부터 14일까지 협회에 등록한 전 회원을 대상으로 의견조사를 실시한 결과, 참여 인원 10만 5191명 중 98.6%가 거부권 행사 시 ‘적극적인 단체행동이 필요하다’고 응답했기 때문이다. 단, 간협은 파업 등 극한적 방법을 선택하지 않겠다는 방침을 밝힌 바 있다. 

현재 간호계에서는 단체행동으로 간호법 제정 투쟁과 면허증 반납 운동 등이 거론된다. 우선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간호법 제정안은 15일 이내 국회로 이송돼 본회의에 다시 상정된다. 재적의원 과반수 출석과 출석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하지 않을 경우 폐기된다. 현재 국회 의석 분포상 폐기 가능성도 있지만 간협은 간호법 제정을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하는 상황이다. 간호사들이 정부에 면허증을 반납하거나 정당에 가입하는 방안도 가능성이 있다. 간협 조사에서 간호사 면허증 반납 운동에 참여하겠다는 의견은 64.1%(6만 7408명)가 나왔다. 1인 1정당 가입하기에 참여하겠다는 의견은 79.6%(8만 3772명)로 집계됐다. 

최근 논란이 일었던 간호법 제정안의 경우 간호계는 현재 의료법 체계 안에 있는 간호사 업무 영역을 별도 법률로 분리하고 체계적 정책을 마련하겠다는 입법 취지를 강조한다. 인간 수명이 늘어 고령화 시대로 진행되는 시점에서 간호사 업무 분야를 넓히는 내용이 핵심이며 의료계가 우려하는 간호사 의료행위는 불가능하다는 주장이다. 보건의료계 관계자는 “이번 간호법으로 직역 간 갈등이 생길 수 있다는 점은 이해되지만 간호사 의료행위는 어불성설”이라며 “상식적으로 간호사가 의료행위를 하면 의사들이 절대 가만 있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실제 이번 간호법 쟁점 중 핵심은 ‘지역사회’ 단어다. 제정안 1조는 ‘모든 국민이 의료기관과 지역사회에서 수준 높은 간호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간호에 관해 필요한 사항을 규정한다’고 했다. 이 규정에 대해 의료계는 간호사가 의료기관을 벗어나 독자적으로 개원한다는 내용으로 파악했다. 하지만 의료법상 간호사가 단독으로 의료기관을 여는 것은 불가능하다.  

16일 오후 서울 용산구 대한의사협회 앞에서 보건복지의료연대 소속 의료단체 대표들이 성명을 발표하고 있다. / 사진=의료연대
16일 오후 서울 용산구 대한의사협회 앞에서 보건복지의료연대 소속 의료단체 대표들이 성명을 발표하고 있다. / 사진=의료연대

반면 그동안 간호법 제정안을 반대해왔던 대한의사협회 등 13개 단체로 구성된 보건복지의료연대는 당초 오는 17일로 예정했던 총파업을 유보한다고 이날 밝혔다. 윤 대통령 거부권 행사를 환영한다고 밝힌 의료연대는 “17일로 계획한 총파업은 국민 건강권을 지켜야 한다는 고뇌 끝에 국회 재의결 시까지 유보한다”며 “법안 처리가 마무리될 때까지 대응해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의료연대는 지난달 27일 국회를 통과한 간호법 제정안이 간호사라는 특정 직역 이익만을 대변하는 법이라고 주장하며 지난 3일과 11일 두 차례 연가투쟁 등 부분 파업을 진행한 바 있다.  

결국 간호사들이 추진했던 간호법 제정안은 일단 대통령 거부권으로 실패했다. 하지만 간호계가 단체행동을 추진하고 있어 후폭풍은 당분간 진행될 전망이다. 보건의료계 관계자는 “간호계의 법 제정은 좌초됐지만 중요한 것은 그 법안을 추진하게 된 배경”이라며 “국민 건강 증진에 긍정적 영향을 미치도록 여러 보건의료 직역이 화합하는 분위기가 필요하며 그같은 일은 정부가 진행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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