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준 학교폭력예방연구소장
“학폭, 암수범죄 특성상 경찰·행정기관 인지 어려움”
“등교거부 및 과도한 용돈·휴대전화 요구 의심징후”

[시사저널e=최성근 기자] “지금 학교폭력 예방 교육은 형식적으로 진행되고 본래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학교폭력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다시금 높아지고 있다. 코로나19 사태로 수면 밑에 가라 앉아있던 학교폭력이 거리두기 해제를 계기로 교육 현장에서 재차 꿈틀댄다. 고통을 호소하는 피해자 사례가 곳곳에서 나오는 가운데 최근 학폭을 주제로 한 웹드라마가 흥행하고, 고위공직자가 자녀의 학폭 문제로 인사청문회에서 낙마하면서 학폭에 대한 경각심이 새롭게 환기되는 모양새다. 

학교폭력 분야 전문가인 정재준 학교폭력예방연구소장은 지난 4일 경기 남양주시에 위치한 연구소 사무실에서 진행한 시사저널e와 인터뷰에서 “학교폭력은 암수범죄의 특징을 갖고 있어 경찰이나 행정기관에서 미리 인지하는 경우가 많지 않다”며 “외부적 요인의 영향도 많이 받아 코로나 사태 영향으로 등교가 제한됐던 시기엔 학폭 수치가 줄었으나 정상적 학교 생활이 가능해진 최근 들어 다시 늘고 있다”고 말했다.

학폭의 가장 큰 이유로 가정 교육을 뽑은 정 소장은 “맞벌이로 부모 훈육이 부족하고 저출산으로 형제 없이 자라면서 사회성을 쌓을 기회가 부족해졌다”며 “이런 상태에서 다른 미인격 학생들과 부딪히면서 싸움이 일어나게 된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학교가기 싫다고 하면 일단 의심해 봐야 한다. 휴대전화 또는 용돈을 많이 달라고 하는 것도 학폭 징후”라며 “학폭 피해 학생들은 학습 부진을 겪다 학교를 떠나거나 대학을 진학하지 못하는 경우가 다반사”라고 덧붙였다. 

성균관대 교육학과 학교폭력 전담 교수이기도 한 정 소장은 교육 현장에서 학폭 대응 시스템을 개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 소장은 “또래에 의한 자체 종결 제도를 도입하는 게 낫다”며 “또래에서 벌어진 일들은 또래 간 조정회의와 합의를 통해 가급적 해결하도록 하고, 여기서 해결이 어려웠을 때 학교 등 성인이 나서야 한다”고 조언했다. 

또 “현행법상 매학기 모든 학급은 예방교육을 실시해야 하지만 예산부족으로 사실상 의미가 없다”며 “단순 동영상 교육에서 벗어나 실강, 참여형 예방 교육을 확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재준 한국학교폭력예방연구소장(성균관대 교육학과 겸임교수)이 지난 4일 경기 남양주시에 위치한 사무실에서 인터뷰하고 있다. / 사진=한국학교폭력예방연구소 제공
정재준 학교폭력예방연구소장(성균관대 교육학과 겸임교수)이 지난 4일 경기 남양주시에 위치한 사무실에서 인터뷰하고 있다. / 사진=한국학교폭력예방연구소 제공

현재 우리나라의 학폭은 얼마나 심각한 수준인가

학폭 문제는 정확한 통계를 잡기 어렵다. 이유는 세 가지다. 우선 학교폭력은 암수범죄의 특징을 갖고 있다. 성폭력 사건에서 여성들이 자신이 겪은 경험을 외부에 노출하기 어려워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경찰이나 행정기관에서 인지해 해결하는 경우가 별로 없다. 그러다 학교폭력 이슈로 사회가 떠들썩하게 되면 민감도를 높여 피해 응답률에도 영향을 미치게 돼 학폭이 심각한 것으로 간주된다. 최근 유행한 드라마 ‘더글로리’나 정순신 변호사 자녀 문제는 학폭 심각성 인식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학교폭력은 외부적 요인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 방학 때는 상대적으로 학교폭력이 크게 줄어든다. 코로나19 유행으로 등교가 제한된 2020, 2021년에도 학교폭력의 통계 숫자는 크게 줄었다. 지난해부터 정상적 학교생활이 가능해지자 다시 학교폭력이 코로나 이전 수준으로 증가하고 있다. 3~4년 단기적 시각에서 보면 마치 학교폭력이 크게 늘어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다른 나라와 비교했을 때 우리나라의 학교폭력 숫자는 심각하지 않다. 예컨대 전 세계적으로 낮은 범죄율을 자랑하는 일본의 학교 내 따돌림 피해 경험률이 10만명 당 17.4명인데 우리나라는 9.4명으로 거의 절반 수준이다. 그런데 아동 청소년 자살률은 아이러니한 결과를 보여주고 있다. 2012~2021년 15~19세 청소년 자살률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보다 훨씬 높다. 17세 미만 우리나라 아동청소년 10만명당 자살률은 2015년 1.5명에서 2021년 2.7명으로 두 배 가까이 늘어났고, 아동 학대는 같은 기간 3배(2015년 132건, 2021년 502건)로 늘었다.

학폭이 일어나는 원인은 어디에 있는가

가장 중요한 원인은 가정에 있다. 연구소에서 학교폭력 피해자, 가해자 학부모 상담을 하다보면 부모의 훈육이 부족하단 걸 알 수 있다. 핵가족이면서 맞벌이 부부로 부모의 훈육이 부재한 가운데 최근 저출산으로 한 자녀만 낳다 보니 형제간 기능과 눈치 쌓는 것을 배울 기회가 없다. ‘왕자’와 ‘공주’로 성장한 아이들이 인격적으로 성장하면서 다른 미인격 학생들과 부딪히다 보니 싸움이 일어나게 된다. 

통계적으로 학폭 원인 1위가 ‘장난삼아’(34%), 2위가 ‘이유없이’(18%)다. 과반이 성인 범죄 원인인 분노, 금전, 성관계와는 다른 양상을 보인다. 대중매체와 인터넷을 이용한 휴대폰은 학폭을 가속화했다. 최근 대중매체는 욕설과 폭력을 가감 없이 보여주고 있다. 유튜브 등 영상도 한몫한다. 학생들은 모두 휴대전화를 소유하고 있다. 이를 통해 사이버 욕설, 명예훼손, 따돌림이 벌어진다.

학교 현장에서 발생하는 학폭의 유형과 특징은

언어폭력이 가장 빈도가 높다. 전체 학폭 사건의 36% 정도를 차지한다. 한 통계에서 학생들이 매일 한 차례 이상 욕설을 내뱉는 비율이 92%에 달한다. 이 중 10회 이상 욕설을 사용하는 학생들도 22%나 된다. 얼마나 함부로 욕설을 사용하는지 알 수 있다. 상당수가 부모로부터 학습됐다고 판단한다. 친구들끼리 흔하게 욕설을 교환하다가 어떤 시점에서 감정이 실리면 학교폭력으로 발전한다. 언어폭력 외엔 집단 따돌림(23%), 사이버 괴롭힘(9.7%) 등이 있다.

피해 학생들은 어떤 고통을 호소하는가
대부분 정신적 피해를 호소한다. 불안감에 시달리다가 제일 먼저 꺼내는 말이 ‘학교가기 싫다’이다. 사이트에서 탈퇴하거나 휴대폰 또는 용돈을 많이 달라고 하기도 한다. 멍이 들거나 옷이 찢어졌거나 하는 것도 징후다. 이 경우 피해 학생의 부모나 학원 선생님들이 빨리 알아채 개입해야 한다. 더 심각해지면 학생이 자살을 생각할 수도 있다. 요즘 청소년들이 잘 쓰는 용어 중 “이 세상에서 사라져버려”라는 말은 청소년에게 극단적 결과를 안겨줄 수 있다. 정순신 사건에서 알 수 있듯 학교폭력 피해 학생들은 학습 부진을 겪다가 학교를 떠나거나 대학을 진학하지 못하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학교 내 시스템상 문제점은 없나

과거에는 학폭이 발생하면 담임 선생님이 자체 해결하거나 학부모가 나서 사과하고 종결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학폭법이 등장하고 점차시스템화가 되면서 작은 학폭 사건이라도 서로 사과하는 것을 꺼린다. 만약 처음부터 사과한 뒤 학교폭력대책 심의위원회에 올라가는 경우가 생기면 가해자로서 조치 결정이 나오기 때문이다. 물론 작은 학폭 사건은 학교장에 의한 종결처리가 가능하다. 이보다 앞서 핀란드의 베르소 프로그램처럼 또래에 의한 자체 종결 제도를 도입하는 게 낫다. 또래에서 벌어진 일들은 또래(또래 조정회의와 합의)가 가급적 해결하도록 하고 여기서 해결이 어려울 경우 학교에서 어른들이 나서는 것이 순서다.

정재준 한국학교폭력예방연구소장.
정재준 학교폭력예방연구소장.

학폭 근절을 위해 제도적으로 보완할 점은

최근 교육부가 내놓은 생활기록부 기록 강화정책은 쇼크 처벌 강화의 느낌을 준다. 이는 결국 대학 진학 좌절로 이어져 반사회적 젊은이를 양성시킬 가능성이 크다. 학교폭력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에 따라 매 학기 모든 학급은 예방교육을 실시해야 하지만 사실상 형해화돼 있다. 관련 예산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학폭 예방 교육에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때이다. 예방교육을 교과 시간이 아닌 별도 시간으로 편성하고 한 학기에 한번 5~6시간 몰아서 하지 말고 한 달에 한 번씩 특활활동처럼 1시간씩 시간 배정을 해야 한다. 단순 동영상 교육이 아닌 실강 내지 참여형 예방 교육을 확대해야 한다. 
 
학교폭력예방연구소가 하는 일은

예방 교육에 방점을 찍고 있다. 연구소는 3가지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피해 상담을 하고 치료교수들이 매달 방문하는 10명의 비행 청소년들에게 문학, 사진, 무용, 음악, 미술 등 치료교육을 시킨다. 학폭 전문 강사 육성과정도 있다. 우리나라는 학폭 관련 국가자격증이 아직 없고, 교육 현장에서 강의 인력이 필요한데 학폭 분야에 대한 강사는 부족한 실정이다. 교육현장에서 동영상 강의로 하는 것과 실제 강의를 진행하는 것은 확실히 효과 차이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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