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계약시 사전 법률 자문 문화 정착 필요

[시사저널e=최성근 기자] 전세사기 공포가 전국을 뒤덮고 있다. 곳곳에서 골탕먹는 서민들이 속출하면서 주거 안전성을 위협하고 있다. 그런데 이건 어제오늘 문제가 아니다. 최근 피해자들이 잇따라 극단적 선택을 하며 심각성이 더욱 부각됐을 뿐 임대차 시장에 잠재돼 있던 고질적 병폐였다. 그간 손 놓던 정부, 국회는 들끓는 민심에 부랴부랴 대책 마련에 나섰다. 하지만 뾰족한 해법을 내놓긴 쉽지 않은 사안이다. 

모든 피해자들이 정부 지원으로 전세사기를 당하기 이전으로 돌아가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렇다고 계약 내용을 제대로 확인하지 못한 임차인 본인 책임이라고 떠밀 수도 없다. 열 사람이 도둑 하나를 못 잡는단 말이 있듯이, 속이려고 작정하고 덤비는 사기꾼을 일반 시민들이 막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전문가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최근 국회 본관 앞에서 열린 전세사기 피해자 기자회견에서 기자는 피해자들과 함께한 한 율사를 주목했다. 이 법률가는 피해 임차인의 다양한 유형을 감안한 입법적, 행정적 대책의 방향성을 흐트러짐 없이 설명해 나갔다. 피해자들이 계약 전에 이런 전문가 조언을 받았다면 소중한 재산을 떼일 위기에 놓이지 않았을 것이란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실제 법률가들은 다양한 부동산 사기 수법에 대응할 안전장치를 알고 있다. 기자가 정기적으로 자료를 받는 한 부동산 전문 변호사는 ‘빌라왕’ 사태가 불거진 이후 계약전 확인 사항, 계약서 특약 팁 등 전세사기 관련 대응 방안들을 제시하고 있다. 계약 후 발생할 수 있는 상황에 대한 대처법도 안내했다. 

국민 상당수는 일상에서 접할 일이 거의 없는 변호사에 대한 거리감이 있다. 비용 또한 만만치 않다보니 대다수는 부동산 계약시 법률가 자문을 받을 생각 자체를 하지 않는다. 그러나 전세보증금 액수가 한두푼이 아니기에 공인중개사나 임대인 말만 믿거나 인터넷상 신뢰성이 불분명한 정보를 기반으로 판단하는 것은 위험하다. 사회초년생 등 전월세 계약을 많이 해보지 않은 사람들이 전세사기꾼들의 주된 먹잇감이 된단 점을 생각해보면 부동산 계약을 할 때 사전에 변호사 자문을 받는 문화가 정착할 필요가 있다.

로펌 등 변호사 비용은 비싸다. 그래서 현실성이 떨어진단 지적이 나올 수 있다. 하지만, 최근 정보기술의 발달로 법률 서비스가 다양해지고 있어 방법이 없는 건 아니다. 법률 플랫폼이 대표적이다. 로톡, 네이버 엑스퍼트 같은 민간업체나 대한변호사협회가 출시한 ‘나의 변호사’ 등을 통해 기존 법률시장보다 저렴한 가격에 부동산 전문 법조인의 조언을 얻을 수 있다. 

물론 이것만으론 부족하다. 정부가 부동산 계약시 변호사 자문은 필수란 사회적 풍토를 정착시키기 위한 정책도 적극 마련해야 한다. 규율화, 인센티브화 등 제도적 방향성에 대한 심도있는 고민이 필요하다.  

현재 거론되는 전세사기 대책의 주된 방향은 피해를 입은 임차인들에 대한 사후 구제에 있다. 물론 선구제 등 이미 발생한 피해 지원책도 심혈을 기울여 마련해야 한다. 그러나 피해를 사전에 막을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는 것 또한 그에 못지 않게 중요하다. 

전세사기 피해자들은 “하루의 고단함을 풀어줬던 보금자리가 지옥이 됐다”고 고통을 호소한다. 보금자리가 절망이 아닌 내집 마련의 꿈을 현실로 만드는 디딤돌이 될 수 있도록 서민들이 법률 전문가에 접근할 문턱을 낮춰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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