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토부, 경·공매 유예 추진···우선매수권 부여 ·저리 대출 지원
기존 보증금 모두 확보하기 어려울 듯···“피해 조사 후 대책 다시”

/ 그래픽=시사저널e
/ 그래픽=시사저널e

[시사저널e=길해성 기자] 정부가 전세 사기 피해자들을 위한 우선매수권 부여, 경매 유예, 대출 지원 등 각종 지원책을 쏟아내고 있다. 이달 들어서만 전세 사기 피해자 두 명이 극단적 선택을 하고 전국 단위로 대책위원회가 출범하는 등 사태가 심각해지자 대안 마련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다만 현재 거론되는 정책을 통해 피해자들이 완전히 구제받기 힘들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피해자들은 윤석열 대통령과의 면담을 요청하는 동시에 근본적인 해결 방안을 요구하고 있다. 

21일 업계에 따르면 국토부는 전세 사기 피해자의 거주 주택에 대한 매각 유예 조치(6개월 이상)를 추진할 계획이다. 주택이 경매에 넘어갈 경우 임차인에게 ‘우선 매수권’을 부여하는 방안도 검토하기로 했다. 이때 전세 사기 피해자인 임차인이 해당 주택을 낙찰받을 경우 자금을 마련할 수 있도록 저리 대출을 지원한다는 방침이다. 또한 전세사기 피해자 거주 주택이 경매나 공매에 넘어가면 지방세보다 전세금을 먼저 돌려주도록 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정부는 이번 주 세부 방안에 대한 관계 부처 협의를 마치고 다음 주 대책을 발표할 예정이다.

다만 업계에선 현재 정부가 내놓은 대책으론 전세 사기 피해자들을 구제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당장 임차인들에게 우선매수권을 부여하더라도 기존 전세금을 모두 확보하긴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우선매수권은 전세사기 피해 주택이 경매에 나왔을 때 경매 최고가로 구입할 수 있는 권리를 피해자에게 주는 방식이다.

예를 들어 인천 미추홀구에서 전세 사기 피해(전세 보증금 7500만원) 주택이 최저 입찰가 1억2000만원에 경매로 나올 경우 임차인이 우선매수권을 통해 주택을 낙찰받으려면 최우선변제금(경매 후순위라 하더라도 소액 임차인에게 보장되는 금액) 2700만원을 제외한 낙찰 대금 9300만원을 마련해야 한다. 이 경우 돌려받지 못한 보증금 4800만원에 9300만원을 합한 1억4100만원에 집을 매수하는 셈이다.

/ 그래픽=시사저널e
/ 그래픽=시사저널e

한 업계 관계자는 “전세 사기 여파로 수요가 끊겨 빌라 가격이 하락하고 있는 상황에서, 낙찰가보다 비싼 가격에 매입하려는 임차인이 있을지 모르겠다”고 “전세금을 잃은 피해자들에게 재차 빚을 내 주택 매입을 유도하는 것이 맞는지도 의문이다”고 말했다.

여기에 정부가 우선매수권 부여 대상을 전체 전세 사기 피해자가 아닌 ‘일정 기준에 해당하는 임차인‘라고 정하면서 혼선이 적지 않을 전망이다. 또한 피해자 우선매수권 부여는 법 개정이 필요한데 그때까지 현재 진행 중인 경매를 유예할 수 있을지 미지수다. 채권자가 은행이 아닌 개인이나 채권추심업체에까지 경매 유예 협조를 구하기 쉽지 않아서다.

경매 우선 매수권을 세입자에게 주면 선순위 채권자인 금융사의 재산권 침해가 우려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서진형 공정경제포럼 대표(경인여대 교수)는 “경매 중지는 일반법에 어긋나는 만큼 특별법 제정을 통해 해결해야 한다”며 “특별법으로 해결하더라도 제3자의 재산권이 침해당할 수 있으므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사안이다”고 말했다.

피해자들은 정부가 피해 조사부터 다시 하고 제대로 된 대책을 내놓으라는 입장이다. 전세 사기·깡통전세 피해자 전국대책위원회(대책위)는 서울시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가 전세 사기 대책을 만드는 과정에서 피해자들의 요구를 자의적으로 해석해 일방적인 대책을 내놓는 일을 반복하고 있다”며 “이미 두 명의 희생자가 나온 만큼 윤석열 대통령이 직접 전세 사기 피해 상황과 요구사항을 청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인천 미추홀구와 서울 강서구에서 시작된 전세사기 피해는 최근 전국으로 확산되는 양상이다. 경기 화성 동탄신도시에선 오피스텔 250채를 보유한 부부가 파산해 세입자들이 전세금을 돌려받지 못할 처지에 놓였다는 신고가 접수돼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 부부는 최근 세금 체납 문제로 전세금 반환이 어려우니 임차인들에게 소유권 이전을 하라고 요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구리에선 수백 명이 전세사기 피해를 입었다는 신고가 접수돼 20여명이 입건됐다. 부산에서도 빌라와 오피스텔 90채를 소유하고 있는 부부가 최근 전세 계약만료를 앞두고 잠적하면서 논란이 되고 있다.

전세사기 피해자들이 20일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앞에서 열린 전세사기 대책 관련 대통령 면담 요청 기자회견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전세사기 피해자들이 20일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앞에서 열린 전세사기 대책 관련 대통령 면담 요청 기자회견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저작권자 © 시사저널e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