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가 3세 중견사’ HN Inc, 법인회생 신청···미분양 사태로 자금난
지방 미분양, 전체 80% 차지···중소 건설사 줄폐업 이미 시작
정부, 연내 ‘미분양 10만가구’ 공식화···“최악 사태 대비, 선제 관리 필요 ”

[시사저널e=길해성 기자] 미분양과 자금경색 여파로 인한 지방 건설사의 줄도산 우려가 점차 현실화되는 모양새다. 지난해 지방 중소건설사와 시공능력평가 83위 대우조선해양건설이 부도난 데 이어 최근 범현대가 중견 건설사인 에이치엔아이엔씨(HN Inc)마저 법정관리에 들어가면서다. 미분양 증가와 이자비용 상승, 수익성 급감 등으로 지방 건설사의 폐업 행렬이 더욱 가속화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31일 건설업계에 따르면 HN Inc는 지난 21일 서울회생법원에 법인회생을 신청했다. 그동안 건설경기 침체와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위기로 인한 유동성 악화로 심각한 자금난에 시달려온 것으로 알려졌다. 회사는 앞서 428세대 규모의 주상복합단지 ‘동탄역 헤리엇’에서 입주 거부 사태가 발생하면서 잔금 회수에 차질이 발생해 PF 상환에 어려움을 겪었다. 여기에 지난해 8월 강원 속초시에 테라스 하우스 ‘속초 헤리엇 THE228′이 214가구 모집 중 119가구가 미달되면서 유동성이 더욱 악화됐다.

HN Inc는 시공능력평가 133위의 중견사다. 현대가(家) 3세 정대선 사장이 최대주주로 있다. 정 사장의 부친은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 4남인 고 정몽우 현대알루미늄 회장이다. 정 사장은 2008년 회사를 설립해 현대중공업, 만도, KCC, HL(옛 한라그룹) 등 범현대가 기업을 중심으로 소프트웨어 아웃소싱 수주를 이어가다 2010년 건설사업에 진출했다. 아파트 브랜드 ‘썬앤빌’과 ‘헤리엇’으로 아파트, 주상복합, 오피스텔 등을 비롯한 건설사업을 활발하게 펼쳐왔다. 2021년 매출은 2838억원(영업이익 23억원)으로 건설 부문 매출이 73%에 달한다. 하지만 부동산 경기 침체 1년 만에 법정관리에 들어갔다.

/ 그래픽=시사저널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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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출이 3000억원에 육박하는 100위권 건설사가 순식간에 부도가 나자 지방 건설사들 사이에선 올 것이 왔다는 분위기다. 시장에선 금리와 공사비가 가파르게 오르는 가운데 금융권 PF 리스크 관리가 이어지면서 재무구조가 좋지 않은 지방 건설사부터 직격탄을 맞을 것이란 관측이 쏟아졌다. 실제로 지난해 시공능력평가 202위 우석건설(충남 6위)과 388위 동원건설산업(경남 18위)이 부도처리 됐고 올해 초엔 83위 대우조선해양건설마저 법정관리에 들어가면서 업계 내 위기감이 확산됐다.

규모가 작은 지방 중소건설업계는 상황이 더 심각하다. 국토교통부 건설산업지식정보 시스템에 따르면 이날 기준 올해 1~3월 전국에서 폐업신고를 한 종합·전문건설사는 923곳이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794건) 대비 16.2% 증가한 수준이다. 특히 지방 비율이 높게 나타났다. 폐업 건설사 중 서울·경기·인천을 제외한 지방 건설사가 60%(547곳)를 차지했다. 또 지난 23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금융안정 상황 보고서’에 따르면 지방 중소 건설사 중 17% 가량은 연간 영업이익으로 이자도 갚지 못하는 한계기업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향후 전망은 더 어둡다. 미분양 사태가 심각해질 것이란 관측이 나오고 있어서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지난 21일 “미분양 물량 10만가구까지는 예측 내지 각오하고 있다”며 부동산 시장의 침체 흐름이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봤다. 올해 1월 말 기준 전국의 미분양 주택은 7만5359가구에 달한다. 10년 2개월 만의 최대치 물량이다. 이 중 지방은 6만2897가구로 83%를 차지한다.

/ 그래픽=시사저널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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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지방을 중심으로 ‘악성 미분양’이라고 불리는 준공 후 미분양(준공 이후에도 분양 계약이 안 된 물량) 물량이 쌓이고 있다는 점은 지방 건설사의 폐업 가능성을 높이는 요인이다. 국토교통부가 발표한 ‘2월 주택통계’에 따르면 준공 후 미분양 주택은 한 달 만에 13%(1008가구) 늘어 8554가구가 됐다. 2021년 7월(8558가구) 이후 최대치로 83%(7071가구)가 지방에 몰려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최초 분양 계약자가 발생하지 않으면 준공 시점까지 공사비를 건설사가 납입해야 한다”며 “준공 후 미분양이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부실화 가능성이 높아지게 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미분양과 함께 고금리·경기 침체가 장기화될 조짐을 보이는 만큼 선제 관리가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건설사는 물론 금융권도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까에 대한 판단을 하기 어려운 상황이다”며 “현재 미분양 증가세를 고려하면 5월부터 건설업계는 물론 자금 시장에 위기가 본격화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정부가 미분양을 직접 구입해 임대주택으로 활용하는 게 부담스럽다면 미분양을 살 때 취득세나 양도세를 감면해 주는 등 다른 지원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며 “최악의 사태를 예방하기 위해 민간과 공공 모두 기존 제도 내에서 자구노력을 이어가야 할 것이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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