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 집중 논의 거쳐 개선안 마련 계획
새로운 시도 통해 과점 체제 개편 기대감
무분별하게 은행 개수만 늘리면 금융시스템 불안 야기 가능성
금융산업 흐름이 대형은행 중심으로 공고해지고 있어 과점 상태 불가피하다는 분석도

금융위원회가 은행 과점 개선을 위해 정부서울청사에서 금융감독원과 은행연합회 등이 참석한 가운데 제1차 '은행권 관행·제도 개선 태스크포스(TF)' 회의를 개최했다. 사진은 서울 시내에 설치된 각 은행 현금자동지급기 / 사진=연합뉴스
금융위원회가 은행 과점 개선을 위해 정부서울청사에서 금융감독원과 은행연합회 등이 참석한 가운데 제1차 '은행권 관행·제도 개선 태스크포스(TF)' 회의를 개최했다. 사진은 서울 시내에 설치된 각 은행 현금자동지급기 / 사진=연합뉴스

[시사저널e=김태영 기자] 윤석열 대통령의 "은행산업의 과점 폐해가 크다"는 발언을 시작으로 은행권 과점체제 수술작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금융당국은 금융권, 민간전문가, 연구기관 등과 집중 논의를 거쳐 오는 6월 말까지 실질적인 개선안을 마련한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업계의 시각은 엇갈리고 있다. 새로운 시도를 통해 과점 체제를 개편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도 있는 반면 무분별하게 은행 개수만 늘리면 금융시스템의 불안을 야기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무엇보다 세계 금융산업 흐름이 대형은행을 중심으로 공고해지고 있다는 점에서 과점 상태가 불가피하다는 분석도 나온다. 

2일 업계에 따르면 금융당국은 5대 대형은행(KB국민·신한·우리·하나·NH농협) 중심의 과점체제를 해소하기 위해 인터넷전문은행이나 핀테크 기반의 소규모 특화은행(챌린저뱅크)을 추가로 도입하거나 은행의 인허가 단위를 세분화해 특수목적은행 등을 허용하는 방안을 검토하기로 했다.

금융당국이 주목하는 방안은 대형 은행 중심의 과점 체제를 깨려고 시도한 영국의 사례다. 영국은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로 산업 간 경쟁 촉진이 필요함에 따라 은행 신설을 유도했다. 그 결과 인터넷전문은행이나 테크핀과 접목한 형태의 은행 등 일명 '챌린저뱅크'가 확대됐다. 은행업은 단일 인가 형태지만 인가 단위를 낮춰 특정 분야에 경쟁력 있는 은행들을 활성화한다면 5대 은행처럼 우월적 지위를 누리는 과점 체제를 깰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의도와 달리 결과까지 긍정적인 것은 아니다. 현재 미국과 영국에서는 오히려 과점체제가 유지되며 대형은행 중심으로 공고해지고 있는 추세다. 무엇보다 금융산업 변화가 대형은행에 유리한 방향으로 흐르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먼저 미국을 살펴보면 국내의 이런 움직임과는 정반대로 가고 있다. 미국 은행업계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대형은행의 시장점유율이 지속적으로 상승하고 있다. 금융위기로 인해 은행들의 파산과 금융규제 강화로 은행업 신규 시장 진입 건수가 크게 감소했다.

미국 전체 은행에서 4대 은행 대형 상업은행(JP모건, 뱅크오브아메리카, 웰스파고, 씨티은행)의 시장점유율은 2007년 40%에서 2019년 60%까지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은행 건전성에 대한 강화 및 디지털 가속화는 미국 대형은행의 과점체제를 더욱 공고히 하는 유인으로 작용했다는 설명이다.

영국도 유사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금융위기 이후 영국은 새로운 은행이 시장에 진입할 수 있도록 규제의 틀을 바꿨지만 미국의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다. 계좌수로만 보면 은행업에 신규진출한 곳의 성장세가 나타난 것으로 보이지만 여전히 디지털뱅크 등 새로운 신규 진입자의 예치금은 전체의 1.2% 수준에 불과한 것으로 드러났다. 여기에 새롭게 시장에 진출한 신규은행 중에서 수익이 나는 곳도 많지 않다.

미국과 영국의 선례가 한국에 전혀 없는 것도 아니다. 7년 전 등장한 인터넷전문은행이 바로 유사 사례다. 인터넷은행은 출범 초기만 해도 기존 은행들을 위협할 것이라는 예측이 강했지만 실질적으로 업계에 미치는 영향은 의외로 작았다는 지적이다. 업계 관계자는 "인터넷전문은행을 만들 때도 시장에 메기 효과를 기대했지만 기존 은행보다 중금리 대출 비율이 높다는 것 외에 차별점이 거의 없다"고 설명했다.

진입 장벽을 낮춰 은행 개수만 늘리면 금융시스템의 불안을 야기할 수 있다는 시각도 있다. 국내 시중은행들은 외환위기 이후 힘겹게 부실 은행을 정리해 현재 모습을 갖췄다. 규모를 키워 은행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는 목적 아래 정부 주도로 인수·합병(M&A)가 진행되면서 과점 체제가 만들어졌다. 특히 글로벌 금융산업 흐름이나 경쟁력을 위해서라면 대형 은행도 필요한데 과점 체제 해소에만 집중하면 국가적으로 혼란이 발생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이미 금융위기 때 경쟁력을 상실한 은행들이 파산에 이르고 그 부담을 국민들이 떠안았던 경험을 간과해서는 안된다"며 "은행업은 허가를 쉽게 내줄 수 있는 분야가 아니라 과점 상태가 불가피한 영역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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