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급 불균형에 따라 기업 ‘갑’ 소비자 ‘을’로 전락
시국 편승해 무리한 가격 인상은 없어야

[시사저널e=박성수 기자] “이미 내년치까지 차가 다 팔렸다. 더 팔고 싶어도 팔 차가 없다.”

한 완성차 업계 영업사원 말이다. 최근 인기 자동차 브랜드 영업사원들 사이에선 영업을 할 필요가 없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그도 그럴 것이 차량용 반도체 대란이 이어지면서 자동차 생산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는 해프닝이 2년 넘게 계속되고 있다. 현대차그룹의 경우 주문 대기 물량(백오더)이 지난달 기준 100만대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현대차그룹 1년 내수 판매량이 120만대 수준인 점을 감안하면 대기 물량만 한 해 판매의 80%를 넘는 셈이다.

현대차그룹은 반도체 대란 전에는 인기 모델이라 하더라도 출고까지 한 달이 채 걸리지 않았으나, 지금은 최소 6개월을 기다려야 한다. 전기차의 경우는 1년을 기다려도 차를 받을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다. 볼보, 포르쉐 등 기존에도 출고 대기가 길었던 수입차 브랜드의 경우 이제 1년 기다림은 최소 단위가 돼버렸다.

1년 넘게 출고난이 이어지면서 차량을 기다리다 다음 연식 모델이 나오는 웃지 못할 일도 벌어지고 있다.

소비자들은 길어지는 반도체 대란에 속이 터지는 상황이다. 차량을 장기간 기다리는 것도 문제인데, 차를 기다리다 신형이 나올 경우 그 차를 사기 위해선 추가 비용까지 내야 하는 이중 피해를 떠안고 있다. 여기에 원자재 가격까지 오르면서 신형 출시마다 최소 200만원 이상 가격이 오르고 있다.

그렇다고 딱히 다른 대안이 있는 것도 아니다. 다른 차종으로 갈아타려고 해도 대부분 인기 모델들은 출고 기간이 길기 때문에, 또 다시 순번을 기다려야 하기 때문이다.

특히 전기차의 경우 매년 1대당 지급하는 보조금이 줄어들고 있는 추세라, 하루라도 빨리 차를 받아야 하기 때문에 소비자들은 울며 겨자먹기로 차를 구매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 와중에 기업들은 급할 게 없다. 지난 수 십년간 자동차 시장이 포화상태에 이르면서 기업은 ‘을(乙)’, 소비자는 ‘갑(甲)’인 상황이었다. 수많은 자동차 브랜드들이 매달 신규 차량을 쏟아내고 있는 가운데, 소비자들은 그 중에서 경쟁력 있는 제품을 골라 잡으면 됐다.

하지만 반도체 대란으로 인해 상황은 역전됐다. 소비자가 ‘을’, 기업이 ‘갑’이 된 것이다. 소비자들은 차량을 사기 위해선 수 개월을 기다리고 심지어 돈까지 더 내야 하지만, 기업들은 가만히 앉아서 돈을 쓸어담는 기형적인 구조로 바뀌었다.

이에 테슬라같이 시도 때도 없이 가격을 올리며 시가 판매하는 기업까지 나타나고 있는 상황이다.

문제는 딱히 이를 막을 방도도 제재할 명분도 없다는 것이다. 시장경제 논리상 자유경쟁 원칙에 의해 시장에서 가격이 형성되는데, 공급보다 수요가 많은 상황에서 제품 가격이 오르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정부가 차량용 반도체 사업 육성을 통해 진화 작업에 나서기로 했지만, 이는 중장기적 해결책일 뿐 이번 반도체 대란을 해결하기에는 시간이 부족하다.

결국 현재로서는 시간이 해결해주길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다만 이러한 시국에 편승해 추가에 추가 비용을 더 내라고 하는 기업이 없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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