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승범·정은보 양대 금융당국 수장 동시 교체···정은보, 금융사 관계 회복 노력
정은보, 가계부채와의 전쟁 돌입···내년에도 정책 기조 유지 전망

고승범 금융위원장(사진 왼쪽)과 정은보 금융감독원장/사진=연합뉴스
고승범 금융위원장(사진 왼쪽)과 정은보 금융감독원장/사진=연합뉴스

[시사저널e=이기욱 기자] 금융 정책 수립과 시장 감독 업무를 책임지는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은 올 한 해 많은 변화를 겪었다. 오랜 기간 두 기관을 이끌어왔던 은성수 전 금융위원장과 윤석헌 전 금융감독원장이 자리를 떠났으며 금감원은 그 과정에서 적지 않은 내홍을 겪기도 했다. 고승범 금융위원장은 취임과 함께 가계대출 총량 관리에 대부분의 역량을 집중했으며 정은보 금감원장은 윤 전 원장 시절 악화된 시장과의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 다만 취임 직후 1심 선고가 난 우리은행 DLF(파생결합펀드)사태 관련 행정소송 항소심은 향후 금감원의 정책 방향에 큰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전 금감원장 임기만료 앞두고 내부 ‘사퇴 운동’···금감원장 공백 3개월 발생

지난 2018년 5월 금감원장에 취임한 윤석헌 전 금감원장은 지난 3년동안 종합검사 부활, 키코(KIKO) 사태 분쟁조정위원회 개최,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문제 처리, 자본시장특별사법경찰(특사경) 출범 등 굵직한 성과들을 거두는데 성공했다. 때문에 임기 만료를 앞두고 있던 지난 2월쯤에는 윤 전 원장이 역대 금감원장 최초로 연임에 성공할 수도 있을 것이라는 전망들까지 제기됐다. 문재인 정부의 임기가 약 1년 정도밖에 남지 않은 시점이었기 때문에 새로운 인사를 구하기 쉽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전망들은 3월 금감원 내부를 뒤흔든 인사갈등을 계기로 급격히 힘을 잃게 됐다. 당시 윤 전 원장은 인사를 통해 과거 여러 건의 채용비리에 가담한 A팀장과 B수석조사역을 각각 부국장과 팀장으로 승진시켰고 자연스럽게 내부에서는 ‘인사 취소’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불거져 나왔다.

더 나아가 전국사무금융서비스노동조합 금융감독원 지부(금감원 노조) 측에서는 임기만료 전 윤 전 원장의 사퇴를 요구하는 ‘퇴진운동’까지 진행했다. 김근익 당시 수석부원장과 임원들이 금감원 내부 게시판에 관련 호소문을 게재하며 사태 수습에 나서기도 했지만 갈등은 쉽게 해결되지 않았다.

결국 윤 전 원장은 5월 임기가 만료돼 자리에서 물러나게 됐고 원만하기 못한 퇴임 과정, 외부 출신 인사에 대한 반감 등으로 차기 금감원장 선임도 약 3개월이나 지연됐다. 김근익 수석부원장 체제로 유지된 3개월 동안은 사모펀드 제재심, 종합검사 등이 정상적으로 진행되기 힘들었기 때문에 금융사들 입장에서도 경영의 불확실성이 커질 수밖에 없었다.

◇정은보 금감원장, 시장 친화 행보···“사전적 감독, 조화롭게 운영”

3개월의 긴 공백을 깨고 새롭게 금감원장에 임명된 이는 정은보 당시 한미방위비분담 협상 대사다. 당시 청와대는 금융위원장과 금감원장을 동시에 교체하며 금융정책 방향의 큰 변화를 예고했다. 2019년 9월부터 2년동안 금융위를 이끌어왔던 은성수 전 금융위원장의 후임으로는 고승범 당시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이 임명됐다.

정은보 금감원장은 취임과 동시에 그동안 얼어붙었던 금융사와의 관계를 개선하기 위해 노력했다. 정 원장은 취임사를 통해서도 “금융시장과의 활발한 ‘소통’을 부탁드린다”며 “법과 원칙에 기반한 금융감독이 공감을 얻기 위해서는 현장의 고충과 흐름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또한 그는 “‘사전적 감독’과 ‘사후적 감독’을 조화롭게 운영하겠다”며 “사후적인 제재에만 의존해서는 금융권의 협력을 이끌어내기 어렵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윤 전 원장 시절 문제가 됐던 ‘먼저털기식’, ‘짜맞추기식’ 검사를 근절하겠다는 의지를 강하게 드러낸 것이다.

금융사 CEO에 대한 과도한 징계 역시 개선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보였다. 그는 이달 온라인 송년 기자간담회에서 함영주 하나금융그룹 부회장이 사모펀드 사태 제재 대상에서 제외된 것에 대해 “불완전 판매와 관련해 지휘책임을 묻는다면 최대 두 단계까지 제재를 적용하게 된다”며 “실무자들의 문제여서 두 단계 지휘책임을 묻더라도 부행장이나 본부장 수준까지 올라간다”고 답했다. 이어 “은행장에게 지휘책임을 지우는 것은 법규상 어려움이 있다는 법리 검토가 있었다”고 말했다.

◇우리은행 DLF사태 행정소송 패소···항소심 내년 시작 예정

다만 일각에서는 정 원장의 이러한 행보를 두고 금감원이 소비자보호 가치를 외면하고 있다는 비판 여론도 제기됐다. 우리은행 DLF사태 행정소송의 항소 여부를 놓고 벌어진 갈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정 원장이 취임한지 한 달이 채 지나지 않은 지난 8월 27일 서울행정법원 행정 11부는 손태승 우리금융그룹 회장이 금감원을 상대로 제기한 ‘문책경고 등 취소청구의 소’ 사건의 1심 선고공판을 열고 손 회장에 대한 중징계가 취소돼야한다는 판결을 내렸다. 금감원이 중징계의 근거로 삼은 사안들은 법령 위반이 아니라 세부 내용이 다소 미흡한 수준에 불과하다는 판단을 내린 것이다.

금융사와의 법정 분쟁에서 패소하자 금감원 안팎에서는 윤 전 원장 시절에 행해졌던 무분별한 CEO징계에 대한 비판 여론이 제기됐고 추가 패소의 위험성 등을 고려해 금감원이 항소에 나서지 않을 것이라는 예상도 제기됐다.

금감원이 항소 가능 기간이 다되도록 결정을 못내리자 참여연대와 금융정의연대 등 시민단체 측에서는 소비자보호가치 외면이라는 지적들을 내놓기 시작했다. 이어 이용우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비롯한 여당 의원들까지 항소를 촉구했고 결국 금감원은 항소를 제기했다. 손 회장과 금감원의 항소심 첫 공판은 내달 열릴 예정이며 어느 쪽의 승소로 결정나든 금감원의 정책 방향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대출대란 불러온 고강도 가계대출 규제···11월 은행권 가계대출 대폭 감소

정 원장과 같은 시기에 금융위원장 자리에 오른 고승범 금융위원장은 지난 4개월 동안 가계대출 총량 관리에 대부분의 역량을 집중해왔다. 금통위원 시절부터 ‘강성매파(긴축 선호)’로 분류돼왔던 고 위원장은 임명 당시부터 가계부채 문제의 소방수 역할을 수행할 것이라는 기대를 받았다.

고 위원장은 취임과 동시에 은행권에 고강도 대출 규제를 가했고 그 영향으로 NH농협은행을 시작으로 대부분의 은행들이 신규 주택담보대출과 일반 신용대출, 대환대출 등을 중단하기 시작했다. 이에 지난 10월부터 이달까지 약 3개월동안 대출 대란이 이어졌다. 은행들이 대출 문턱을 높이기 위해 우대금리들을 없애는 과정에서 대출금리가 가파르게 치솟았고 소비자들 사이에서는 ‘금융당국 책임론’이 거세게 불거졌다.

이를 의식한 듯 금융위는 지난달 총량 규제가 대출금리 상승의 원인이 아니라는 내용의 해명자료를 냈으나 소비자들의 불만은 여전히 가라앉지 않고 있다. 최근에는 금감원과 함께 시중은행들의 대출금리 산정 체계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면서 대출금리 상승폭을 축소시키기 위한 노력을 병행하고 있다.

고 위원장의 고강도 대출 규제 정책은 점차 실제 효과로 나타나고 있다. 금감원에 따르면 지난달 은행권의 가계대출 증가액은 2조9000억원으로 전월(5조1000억원) 대비 2조2000억원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고 위원장은 내년에도 가계부채 관리에 역점을 두고 금융정책을 이끌어나갈 것으로 전망된다. 그는 31일 ‘2022년 신년사’를 통해 “금융안정을 위해 전력을 다해야 한다”며 “우리 경제의 가장 큰 위험요인으로 지목되는 가계부채의 관리 강화를 일관되게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저작권자 © 시사저널e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