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 겨냥 하이엔드 브랜드, 비강남권으로 우후죽순 확대
수주 위해 적용 기준 바꾸기도···“고급화·희소성 사라져”

최근 리모델링 시장에선 건설사들의 컨소시엄 참여가 늘고 있다. / 그래픽=시자저널e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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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e=길해성 기자] 하이엔드 브랜드를 갖춘 건설사들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경쟁이 과열되는 상황에서 수주를 위한 유인책으로 하이엔드 브랜드를 활용하면서도 희소성을 유지해야 하는 어려움에 빠졌다. 특히 서울·수도권 정비사업장은 하이엔드 브랜드가 아니면 명함을 내밀기 힘든 수준에 이르렀다. 새로운 브랜드가 나올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오지만 기존 하이엔드 브랜드 적용 단지의 반발을 생각하면 쉽지 않을 전망이다.  

25일 건설업계에 따르면 대형 건설사는 하이엔드 브랜드를 3~4년전 부터 강남3구(강남∙서초∙송파)나 한강변에 한정적으로 적용해왔다. 현대건설의 ‘디에이치’, DL이앤씨의 ‘아크로’, 대우건설의‘푸르지오 써밋’, 롯데건설의 ‘르엘’등이 대표적이다. 기존에는 사업성과 상징성을 갖춘 지역에서 시공권을 따내기 위해 '히든카드'로 내놓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최근 사업장이 줄고 수주전이 과열 양상을 나타내면서 적용 범위의 경계가 무너진 모양새다.

특히 올해 들어 하이엔드 브랜드는 비강남권에 적용되는 사례가 늘고 있다. DL이앤씨는 최근 강동구 명일동 ‘삼익그린2차’에 자사 최고급 아파트 브랜드인 아크로 적용을 제안했다. 시공사 선정까지 1년이란 시간이 남았지만 입주민들에게 브랜드 선점 효과를 노린 것으로 풀이된다. 앞서 DL이앤씨는 올해 들어 서대문구 ‘북가좌6구역’과 동작구 ‘노량진8구역’에서도 아크로를 내세워 시공권을 거머쥐었다.

대우건설 역시 영등포구 ‘신길10구역’과 동작구 ‘노량진5구역’에 일찌감치 하이엔드 브랜드인 ‘써밋’ 카드를 꺼냈다. 조합원들이 써밋을 선택할 경우 신길뉴타운 내 최초의 하이엔드 브랜드 아파트다. 동작구 ‘노량진5구역’·’흑석11구역’과 경기 과천 ‘과천주공5단지’ 등에서도 써밋을 통해 연이어 수주에 성공했다. 

현대건설은 수주를 위해 하이엔드 브랜드 적용 기준을 변경했다. 당초 디에이치를 론칭하며 브랜드 적용 단지 기준을 ‘일반 분양가 3.3㎡당 3500만원 이상의 고가 아파트에만 적용한다’고 명시했지만 분양가 기준을 삭제해 적용 범위를 넓혔다. 최근 수주한 마천4구역의 경우 분양가가 3.3㎡당 2700만원으로 기존 디에이치 적용 기준가보다 800만원 낮지만 단지명이 ‘디에이치 클라우드’로 확정됐다. 앞서 자체 규정을 바꿔 대전 ‘장대B구역’을 수주하기도 했다. 디에이치 적용 범위를 서울 강남에서 인구 100만 이상의 5대 광역시로 하는 자체 브랜드 심의위원회 규정을 변경했다.

조합원들의 눈높이가 올라간 점도 하이엔드 브랜드 적용이 늘어난 요인으로 꼽힌다. 조합원들 입장에선 일반 브랜드에 비해 희소성이 높고 단지를 고급화할 수 있어 추후 집값 상승도 노릴 수 있다. 실제로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자료에 따르면 서초구 반포 ‘아크로리버파크’는 지난달 전용 84㎡가 40억원에 거래돼 인근 아파트보다 시세가 5억원 가량 높다. 같은 기간 경기 과천 ‘과천푸르지오써밋’ 전용 59㎡는 인근 아파트 시세보다 3억원가량 높은 17억2000만원에 거래됐다. 이렇다 보니 일부 사업장에선 하이엔드를 적용해 주지 않는 기존 시공사를 교체하는 사례도 심심치 않게 등장하고 있다. 

업계에선 당초 강남권 위주로만 적용됐던 하이엔드 브랜드가 다른 지역으로 우후죽순 생겨나면서 희소성이 사라지고 있단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한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서울은 물론 수도권 주요 지역 정비사업장의 경우 이제 하이엔드 브랜드가 아니면 명함도 못 내밀게 됐다”고 “브랜드 가치가 훼손될 수 있지만 실적을 위해 울며 겨자 먹기로 진행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고 말했다.

이어 “기존 하이엔드 브랜드가 점차 하향평준화되면 또다시 새로운 고급 브랜드가 나올 수도 있다”며 “다만 이미 수주한 지역에서 반발이 있을 수 있는 만큼 건설사들의 고심이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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