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헌동 전 경실련 본부장, SH 사장 내정
토지임대부 통해 ‘강남 3억원대 아파트’ 약속
강남구 등 후보지 반발 “협의되지 않은 내용”
“국공유지 토지 한계, 대량 공급 어려워”

/ 그래픽=시사저널e DB
오세훈 서울시장은 15일 김헌동 전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부동산건설개혁본부장을 서울주택도시공사(SH) 사장으로 최종 임명했다/ 그래픽=시사저널e DB

[시사저널e=길해성 기자] 오세훈 서울시장이 서울시 안팎의 우려에도 김헌동 전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부동산건설개혁본부장을 서울주택도시공사(SH) 사장으로 임명했다. SH 사장 공석이 장기화되고 있는 데다 서울시 부동산 정책이 속도를 내야 하는 만큼 임명을 강행한 것으로 풀이된다. 다만 핵심 정책으로 내세운 ‘반값 아파트’를 두고 후보지들의 반발 등 우려가 적지 않아 험로가 예상된다.

◇김헌동 신임 사장 통해 오세훈표 ‘부동산 정책 모델’ 기대  

15일 서울시는 SH 사장에 김 전 경실련 본부장을 임명했다고 밝혔다. 임기는 3년이다. 김 신임 사장은 쌍용건설을 거쳐 1999년부터 20여년간 경실련에서 시민운동가로 활동했다. 국책사업감시단장, 아파트값거품빼기본부장, 부동산건설개혁본부장 등을 거쳐, 2016~2017년에는 정동영 국회의원실에서 보좌관을 지내기도 했다. 김 후보자가 취임하면서 김세용 전 사장이 물러난 지난 4월 7일 이후 비어있던 SH 사장 자리를 약 7개월 만에 메우게 됐다.

앞서 김 신임 사장은 서울시의회 인사청문회에서 ‘부적격’ 판정을 받았다. 시의회는 “분양원가 공개, 후분양제, 토지임대부 주택 등 부동산 정책을 주장하면서도 이 정책이 미치는 부작용에 대한 충분한 이해가 부족하고, 구체적인 실행방안을 명확히 제시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다만 오 시장이 김 후보자에 대해 여러 번 지지 의사를 밝혀왔던 만큼 청문회 결과와 상관없이 임명을 강행할 것이라는 관측이 많았다.

오 시장이 임명을 강행한 것은 집값 안정을 위한 부동산 정책 모델을 함께 만들 수 있는 적임자라고 판단해서다. 두 사람이 손발을 맞추는 것은 이번이 두 번째다. 인연은 오 시장이 서울시장에 당선된 2006년 5월로 올라간다. 오 시장은 집값 상승을 해결하기 위해 당시 경실련에서 일하던 김 신임 사장에게 조언을 구했다. 김 신임 사장은 후분양제와 분양가 원가 공개, 분양가 상한제 등의 정책을 제안했다.

오 시장은 이를 받아들여 시장에 적용했고 분양가가 낮아지는 등 효과를 톡톡히 봤다. 건설업계 투명성 확보와 서울 집값 안정화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최근 들어 김 신임 시장은 오 시장이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서울시장 오세훈TV’에 수차례 출연해 오 시장의 정책을 적극 지지하기도 했다.

특히 오 시장은 김 신임 사장이 줄곧 주장해 온 ‘토지부임대 주택’에 대한 기대감이 크다. 토지임대부 주택은 토지 소유권은 공공이 갖고 건물만 분양하는 주택이다. 아파트 원가에서 60%를 차지하는 토지 가격이 제외되기 때문에 분양가를 절반 이하로 낮출 수 있어 최근 집값 폭등을 막을 대안 중 하나로 부상하고 있다.

김 신임 사장은 이른 시일 내에 ‘반값 아파트’ 공급하겠다고 예고했다. 그는 인사청문회에서 “SH 사장이 될 경우 토지임대부 주택을 활용해 강남에서도 30평형대 아파트를 3억원에 공급하겠다”며 “빠르면 내년 초 예약제를 실행할 것이다”고 말했다. 김 신임 사장의 공약이 실현된다면 오 시장 역시 ‘서울 반값 아파트 공급’이라는 새로운 부동산 정책 모델을 확보하게 된다. 장기적으로는 오 시장의 정치적 행보에 도움이 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후보지 반발·반전세 인식, 풀어야···“또 다른 형태 로또 아파트 될 수도”  

다만 풀어야 할 숙제도 적지 않다. 당장 토지임대부 아파트 공급 후보지로 거론된 지역 주민과 구청장들이 잇따라 반발하고 나섰다. 김 후보자는 인사청문회에서 ▲은평구 서울 혁신파크 ▲용산구 정비창 ▲강남구 옛 서울의료원∙세택(SETEC)∙수서동 공영주차장 부지 등을 후보지로 거론했다. 이후 은평구에선 “혁신파크에는 서울시립대 캠퍼스와 혁신기업, 상업·업무시설 등 복합개발이 예정돼 있다”며 “해당 부지에 반값 아파트를 공급하는 것은 도시 기능은 외면한 채 주택 공급에만 급급한 잘못된 발상이다”고 반대 뜻을 표명했다. 강남구 역시 “협의되지 않은 내용이다”며 선 긋기에 나섰다. 과거 이 같은 반발로 반값 아파트 공급이 중단되고, 박근혜 정부 들어 토지임대 건물분양법도 폐지된 사례가 있다.

토지부임대 주택이 ‘반쪽자리 내 집’이라는 인식도 넘어야 할 과제로 꼽힌다. 토지부임대 주택은 매달 별도의 토지 임대료를 내야 해 사실상 ‘반전세’ 주거형태다. 향후 건물이 노후화되면 재건축도 어렵다. 한 업계 관계자는 “토지는 제외한 채 건물만 소유하는 것은 자산으로서 가치가 떨어진다”며 “노출된 여러 단점을 어떻게 보완하느냐에 따라 실수요자들의 호응을 이끌어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전문가들도 실현 가능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활용 가능한 토지가 한계가 있고 또 다른 유형의 로또 아파트가 될 가능성을 주의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책임연구원은 “현재 제시된 토지임대부 주택은 국공유지에 짓는 것이다”며 “하지만 서울에선 가용토지가 한계가 있어 대량 주택 공급이 어려운 실정이다”고 말했다. 이어 “‘반값 아파트’라고 불렸던 기존의 토지임대부 주택도 입주 이후의 시세 상승이 적지 않았다”며 “선례를 답습하게 된다면 국지적인 시장안정 효과를 가져오더라도 일시적이거나 한정적일 수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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