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급곡선 충격으로 경기침체와 물가상승이 겹치는 1970년대 재현 우려
금·원자재 시세 급등 가능성···개인은 상장지수증권(ETN) 통해 투자 가능

그래픽=김은실 디자이너
/ 그래픽=김은실 디자이너

[시사저널e=이승용 기자] 미국과 유럽은 물론 국내에서도 스태그플레이션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스태그플레이션은 ‘스태그네이션(stagnation)’과 ‘인플레이션(inflation)‘의 합성어로 경기침체 속에서 물가상승이 동시에 일어나는 현상을 말한다.

스태그플레이션의 시작은 1970년대 오일쇼크(석유파동)이었다. 1974년 1차 오일쇼크 당시 미국의 경제는 -0.5% 역성장했지만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무려 11.05%에 달했다. 국내외 경제전문가들은 이 같은 스태그플레이션 현상이 재현될 수 있다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스태그플레이션 시대가 온다면 투자 포트폴리오도 조정이 필요하다. 금이나 원자재 등은 스태그플레이션시대 가장 주목받는 투자 대상이기에 상장지수증권(ETN)을 적극 활용하는 것이 유리하다. 주가순자산비율(PBR)이 낮은 이른바 ‘자산주’ 역시 스태그플레이션 시대에 재조명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

◇ 스태그플레이션 우려 확산···우리나라도 진행중?

8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이달 초 미국 정부가 고용보고서를 발표한 이후 스태그플레이션은 글로벌 금융시장의 최대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미 노동부에 따르면 지난 8월 비농업부문 신규고용 증가자는 23만5000명으로 7월 105만3000명 대비 4분의 1에 불과했다. 지난 1월 23만3000명 이후 가장 낮은 수치로 다우존스 예상치인 72만명의 3분의 1 수준에 그쳤다. 주로 대면서비스를 하는 서비스업 분야에서 고용감소가 컸다.

반면 미국 근로자들의 노동 임금은 시간당 임금은 30.73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4.3% 상승했다. 임금은 오르는데 일자리가 줄어들면서 미국의 지난달 고용율은 61.7%로 코로나19 사태 이전인 63.3% 수준으로 회복하지 못했다.

이 같은 수치가 발표되자 각종 경제매체에서는 스태그플레이션 가능성에 대해 경고하는 전문가들의 전망이 쏟아졌다.

경제학에서 설명하는 ‘필립스곡선’에 따르면 세로축에 물가상승률, 가로축에 실업률을 놓고 그래프를 그린다면 단기적으로 실업률과 물가상승은 반비례 관계에 있다. 하지만 임금과 원자재 가격 등이 오르면서 전체 생산이 감소한다면 필립스곡선은 왼쪽으로 이동하면서 이전보다 경기상황 및 고용은 부진하고 상품 가격 등 물가는 상승하는 스태그플레이션 현상이 나타나게 된다. 인플레이션이 급격히 진행되고 있는 상황 속에서 미국 고용시장 부진은 이 같은 스태그플레이션 현상으로 해석됐다.

미국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도 비슷한 목소리가 잇따라 나오고 있다. 예일대 경제학 박사 출신이자 유럽 내 경제전문가로 꼽히는 마리오 몬티 전 이탈리아 총리는 최근 CNBC와의 인터뷰에서 스태그플레이션이 유럽 경제의 최대 위협이라는 견해를 밝혔다.

몬티 전 총리가 밝힌 스태그플레이션 원인은 아시아 지역의 공급망 타격이다. 코로나19가 델타 변이를 통해 빠르게 확산하고 있는데 각종 생산시설이 집중된 아시아 신흥국들이 백신 공급에 난항을 겪으면서 코로나19 이전보다 생산, 운송 부문 등 공급지표들이 감소하는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는 분석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미 스태그플레이션이 진행되고 있다는 견해가 나오고 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에 따르면 현재 우리나라는 물가가 급등하고 있는데 경제성장률은 낮아지는 스태그플레이션 상태다.

성 교수는 “물가급등은 인플레이션 지표로 증명되고 있다”며 “경제성장률이 올해 4% 수준으로 반등하고 있다는 수치들이 발표되고 있지만 이는 코로나19에 따른 기저효과를 감안해야 하는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공급 측면에서 코로나19 확산 이전부터 대면소비가 중심인 자영업이나 중소중견기업의 인건비 부담이 높아졌는데 코로나19 이후 글로벌 밸류체인이 약화되면서 생산비용 증가로 이어지는 이중의 충격이 발생했다”며 “현재 상황은 경기회복이 아닌 경기침체로 보는 것이 맞다”고 해석했다.

그래픽=김은실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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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원자재 투자가 대안 되나···주목받는 ETN

경제전문가들은 1970년대 오일쇼크 당시를 돌이켜보면 금이 최고의 투자처가 될 수 있다고 조언한다. 금은 당시 안전자산으로서 남다른 고유성이 부각됐고 금 시세는 1970년 1차 오일쇼크 이전 온스당 30달러대에서 1980년에는 800달러까지 육박했다.

스태그플레이션 시대에는 원자재 가격이 급등하기에 현물 상품 역시 매력적인 투자 대상이다. 글로벌시장에서 현물투자는 주로 미국 시카고 상품거래소 등에서 이뤄지는데 이런 현물시장에 국내 개인투자자들이 참여하기에는 접근성이 떨어진다.

개인투자자들로서는 한국거래소에 상장되어 주식종목처럼 실시간으로 거래할 수 있는 상장지수증권(ETN)이 대안으로 꼽힌다. ETN은 증권사가 발행하는 파생상품으로 금, 은, 원유, 천연가스, 원자재, 농산물, 환율, 주가지수 등 기초자산의 가격 변동에 따라 수익을 얻을 수 있도록 설계됐다. 원자재로는 니켈, 아연, 알루미늄, 구리, 철광석 등이 가능하고 콩, 옥수수, 밀 등 농산물 가격 변동에 따라 투자 수익을 얻을 수도 있다.

직접 상장기업 주식에 투자한다면 원가 상승에 대한 부담을 가격에 이전시킬 수 있는 업종에 속한 회사들이 스태그플레이션 시대에 주목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 특히 구리, 알루미늄 등 비철금속 원재료를 제련, 가공해 다시 파는 회사들은 원가에 따라 제품판매가가 정해지는 사업구조를 보유한 경우가 많아 원자재 가격 상승시 이익이 늘어난다.

스태그플레이션 시대에는 주가순자산비율이 낮은 이른바 ‘자산주’에 대한 재평가가 이뤄질 가능성도 있다. 화폐의 실질 가치는 떨어지는 반면 해당기업이 보유하고 있는 실물자산의 가치는 상승하기 때문이다.

스태그플레이션에 대한 정책적 해법으로는 금리 인상이 꼽힌다. 금리가 상승하면 은행이나 보험사는 이익이 늘어나면서 주가도 상승할 가능성이 높기에 은행주나 보험주가 주목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

성태윤 교수는 “최근 글로벌 밸류체인 관련 공급감소 문제는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지만 정책적으로 금리를 올려서 유동성을 축소시킴으로써 비용충격을 완화하는 방향으로 가는 것이 맞다”며 “다만 급격한 금리인상은 경기 악화 부담이 크기에 점진적 조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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