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성수 “1차 책임 은행에 있어”···면책 기준 마련 요구도 거부
은행권 “계좌 내주지 말라는 소리”···시장 위축 시 금융권 충격 우려

은성수 금융위원장이 지난 1일 국회 정무위원회 전체회의에 참석해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은성수 금융위원장이 지난 1일 국회 정무위원회 전체회의에 참석해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시사저널e=이기욱 기자]금융위원회가 암호화폐 거래소 구조조정에 대한 책임을 은행에 떠넘기려는 모습을 보이자 은행권이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은행이 암호화폐 거래소 심사의 모든 책임을 지게되면 암호화폐 시장은 급격하게 위축될 수밖에 없으며 이는 금융 시장 전체에 큰 충격을 가져다 줄 것으로 우려된다. 이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금융당국이 구체적으로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등 보다 적극적으로 노력해야한다는 주장들이 나오고 있다.

◇금융당국, 실명계좌 발급 심사 기준 ‘모르쇠’···은행, 보수적 심사 불가피

2일 업계에 따르면 전일(1일) 은성수 금융위원장이 국회 정무위원회 전체회의에서 한 암호화폐 관련 발언은 은행권에 큰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은 위원장은 이날 암호화폐 거래소 신고 절차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윤창현 국민의힘 의원의 질의에 “자금세탁과 같은 부분의 1차적인 책임은 은행에 있다”고 답했다.

그는 “암호화폐 거래소의 자금세탁 위험을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실명계좌 발급 제휴를) 받아주는 것이고 아니면 못하는 것”이라며 “그 판단은 은행이 하는 것이지 금융당국이 할 수는 없는 일이고 그 정도도 할 수 없으면 은행 업무를 안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는 특정금융정보법 시행으로 현실화되고 있는 암호화폐 거래소 줄폐쇄의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발언으로 비판받고 있다. 특금법에 따라 국내 암호화폐 거래소는 9월까지 은행권과 실명계좌 발급 제휴를 맺어야 한다. 100여개 이상으로 추정되는 암호화폐 거래소 중 현재 은행권으로부터 실명계좌를 발급받고 있는 곳은 빗썸과 코인원(이상 NH농협은행), 업비트(케이뱅크), 코빗(신한은행) 등 단 4곳 뿐이다.

일각에서는 4곳의 거래소도 제휴 연장을 장담하기 힘들다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실명계좌 발급에 대한 명확한 기준들을 금융위가 제시해주지 않고 있기 때문에 은행권에서도 보수적으로 심사에 나설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만약 4대 거래소에 대한 계좌 발급 중단 사태까지 발생하게 되면 암호화폐 시장 위축과 투자자 혼란이 불가피해진다.

최근에는 이러한 사태를 방지하기 위해 은행연합회 차원에서 금융위에 특금법상 면책 기준을 마련해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암호화폐 거래소에서 자금세탁 문제가 생기더라도 실명확인 입출금 계좌 심사 과정에서 은행의 고의 또는 중과실이 확인되지 않으면 은행에는 책임을 묻지 말아 달라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하지만 은 위원장은 이마저도 단호하게 거부하고 있다. 그는 “전 세계적으로 자금세탁을 규제하고 있는데 한국 금융당국만 면책을 해준다고 해서 그게 가능하다고 생각하는가”라며 “자금세탁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된 요구”라고 지적했다.

◇수수료 수익 대비 위험부담 높아···“책임, 부담 나눠 가져야”

은 위원장의 이러한 태도에 은행권 관계자들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한 은행권 관계자는 “은행에서 무엇을 어떻게 책임지라는 말도 없이 1차적인 책임이 은행에 있다고 하니 황당하다”며 “결국 실명계좌 발급을 해주지말라는 말로 들리고 심사를 까다롭게 할 수밖에 없다”고 평가했다.

이어 “은행 입장에서는 굳이 거래소와의 제휴 연장을 할 이유가 없어진다”며 “은행들이 제휴를 통해 얻는 수수료 수익은 많아야 수십억원 정도인데 은행 입장에서 큰 돈이 아니다”라고 진단했다. 그는 “문제가 생겼을 때 물어야하는 과태료 등은 이보다 훨씬 클 것”이라고 불만을 토로했다.

또 다른 은행권 관계자는 “백번 양보해서 은행들에게 면책 기준을 줘버리면 너무 (실명계좌 발급을) 남발할까봐 그랬다고 이해해볼 수는 있다”면서도 “그런 부작용은 추가적으로 기준을 마련하든지 다른 장치들을 통해서 방지하면 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은행과 거래소, 금융당국들이 책임과 부담을 나눠야지 적극적인 의사결정이 가능해지고 산업이 활성화 된다”며 “은행이 모든 것을 책임지면 금융당국은 도대체 왜 필요한가”라고 반문했다. 또한 “다른 (핀테크·빅테크) 기업들의 책임에는 관대하면서 은행에만 유독 엄격하다”고 지적했다.

암호화폐 시장의 위축은 개별 은행들을 넘어 전체 은행권에도 충격을 미칠 것으로 우려된다. 김병욱 더불어민주당 의원에 따르면 지난 1분기 기준 국내 은행권의 가상화폐 계좌 입출금액 규모는 64조원에 달한다. 입금액이 34조9000억원, 출금액이 29조3000억원 수준이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정확한 수치가 어떻게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신용대출 등을 통해 암호화폐에 투자한 규모도 상당할 것”이라며 “암호화폐 시장이 한 번에 위축되면 그 부실 위험은 전 금융권이 떠안게 된다”고 설명했다.

그는 “부실 거래소를 정리해 투자자를 보호하하는 조치는 반드시 필요하지만 그로 인한 충격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법도 함께 고려해봐야 한다”며 “심사 가이드라인만 구체적으로 제시해줘도 은행들은 거래소 제휴에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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