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들 세금, 시간 소요 되도 안전한 승계의 길 택해
상대적으로 감시 덜한 중견기업 및 성장한 스타트업에서 악습 되풀이될 가능성 남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 / 사진=연합뉴스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 / 사진=연합뉴스

[시사저널e=엄민우 기자] 수사, 세무조사 등 대기업 사정과 관련해 오너 수사가 사실상 사라지고 있다. 오너들이 세대교체를 거치며 과거 악습들을 버리게 됐고, 기업들도 더욱 조심하게 되면서 생긴 풍토라는 분석이다.

10일 재계 및 사정기관에 따르면 최근 몇 년 간 검찰, 국세청, 경찰 및 공정거래위원회가 계속해서 대기업에 대한 사정을 진행해 왔지만 크게 주목할 만한 사안은 없었다. 가장 큰 이유로 오너일가가 연루된 수사가 거의 없다는 것이 꼽힌다.

과거 사안으로 구속 중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사례가 사실상 마지막이었다. 한 사정기관 인사는 “최근 몇 년 눈에 띠는 오너 관련 수사가 잘 보이지 않고 있는데, 일시적 현상이라기보단 하나의 흐름이 되지 않을까 싶다”고 전했다.

오너의 비리 시도 자체가 줄어들고 있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오너수사는 기업사정의 핵심으로 여겨져 왔다. 향후 판결을 떠나 대기업 회장이 출두하는 모습 자체가 이슈가 됐다. 사정기관 내에서도 오너 이슈까지 수사나 조사를 이어가면 능력을 인정받기도 했지만 최근 이런 모습 자체가 사라졌다.

최근 몇 년 새 재계는 세대교체를 이뤄왔다. 4대 그룹만 놓고 봐도 삼성은 이재용 부회장, 현대차는 정의선 회장, LG는 구광모 회장 체제로 변모했다. 61년생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그나마 4대그룹 오너 중에선 가장 연장자다. 세대교체 한 오너들은 선대 회장들이 교도소 담벼락을 들락거리는 모습을 보며 반면교사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또 오너 범죄는 크게 비자금과 승계 이슈와 연관돼 이뤄지는데, 부정을 저지르기 어려운 환경이 된 것도 이유 중 하나다. 기술발달로 정보가 쉽게 유통되고 있고 주주들의 감시도 심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여론 역풍이 거셀 경우 홍원식 전 남양유업 회장처럼 오너가 회사를 떠나야 하는 상황이 생길수도 있다. 한 재계 관계자는 “이제 우회적으로 지배력 강화 및 승계를 하려고 하는 것을 시도하는 곳 자체가 없을 것”이라고 전했다.

그러다 보니 기업들이 정공법을 택하기 시작했다. 이재현 CJ회장은 지난해 CJ그룹 장녀 이경후 CJ ENM부사장과 장남 이선호 CJ제일제당 부장에게 CJ신형우선주를 증여했다. 지난 2019년 증여했다가 취소하고 이듬해 다시 증여하며 ‘절세’했지만 과정은 투명했다. 두 남매는 지난달 2029년 보통주로 전환되는 CJ4우를 추가매입하며 승계를 위한 지배력을 차근차근 키우고 있다.

구광모 LG회장도 적지 않은 세금을 내야했지만 정공법으로 승계 받았다. 한화그룹의 김동관김동원김동선 3형제도 아직까진 무리한 초고속 승진 없이 그룹 내 영향력을 확장해가고 있다는 평가다. ‘돈과 시간이 들더라도 안전한 길이 낫다’는 것이 최근 대기업 승계 트렌드다. 시민단체 등 오너경영에 부정적인 이들이 ‘승계를 하려면 합법적으로 하라’고 주장하곤 했는데 실제로 그렇게 하고 있는 것이다.

다만 상대적으로 주목과 감시를 덜 받는 중견기업이나 급성장한 스타트업 오너, 창업자들 사이에서 악습이 되풀이될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있다는 분석도 있다. 한 재계 인사는 “이전 세대 총수 일가들은 세상이 달라진 것을 모르고 과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던 행태를 반복하다 문제가 될 가능성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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