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확장 재정 편 일부 선진국 신용등급 하향···“우리나라는 상대적으로 선방”
“저출산 문제로 장기적 빚 상환 능력 저하···증가 수치보다 사용 용도에 주목해야"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일 정부서울청사에서 관계부처 장관들과 함께 2021년 추가경정예산안 발표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일 정부서울청사에서 관계부처 장관들과 함께 2021년 추가경정예산안 발표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시사저널e=최성근 기자] 최근 국가부채 비율이 높아지면서 국가 신용등급에 영향을 미치는 게 아니냐는 주장이 제기된다. 전문가들은 현 상황에서 하향 조정될 가능성은 낮다면서도 부채 상환능력을 고려한 재정정책이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2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이날 현재 국제 신용평가사인 무디스와 스탠더드 앤드 푸어스는 우리나라에 AA, 피치는 AA-를 각각 부여하고 있다. 이는 1986년 이후 최고 수준이다. 특히 외환위기 이후 우리나라의 신용등급은 단 한 번도 떨어진 적이 없다.

기획재정부는 올해 우리나라의 국가부채와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 채무 비율을 각각 956조원과 47.3%로 예상하고 있다. 이날 약 15조원 규모의 1차 추가경정예산안이 국무회의에서 의결된 데 이어 향후 추가로 추경이 집행되면 부채 비율은 더 높아지게 된다. 정부는 현재 코로나19 사태 장기화로 확장재정 기조를 쉽게 바꾸기 어려운 상황이다. 

지난해 피치는 우리나라의 채무 비율이 2023년 46%까지 증가하면 국가 신용등급에 하방압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우리나라는 이미 올해 국가 채무 비율이 46%를 넘어서지만, 전문가들은 대체로 당장 국가신용등급이 떨어질 가능성은 낮게 봤다.

정규철 한국개발연구원(KDI) 경제전망실장은 “국가 신용등급 하향 가능성은 당장은 높지 않지만 지금처럼 계속 국가부채가 빠르게 쌓이는 상황으로 가면 하향 조정될 수 있다”며 “신용등급이 내려가면 자금조달 비용이 높아지고 대외적으로 불확실성이 높아질 때 자금 유출도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박성욱 한국금융연구원 거시경제연구실장은 “당장 신용등급 하향 가능성은 거의 없다”며 “국가부채가 늘어나면 신용도에 마이너스가 되는 건 사실이지만 코로나19 이후에 우리나라 외에 대부분의 국가가 정부부채가 늘어났다”고 전망했다.

이어 “과거에 비해 우리나라 정부부채가 크게 늘어났지만 다른나라에 비해서는 크다고 보기 어렵다”며 “국가 부채가 늘어났다고 신용등급이 조정될 것이라고 보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한순구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확률이 얼마냐 높은지는 따져봐야겠지만 신용등급 하향 가능성은 있다고 본다”고 예상했다. 한 교수는 “현재 상황이 과거 외환위기처럼 심각하다고 보지는 않지만 저출산 문제와 맞물려 있다”며 “젊은 사람이 자꾸 줄어 부양해야 할 인구가 늘어나는데 빚이 쌓이면 갚기가 더 어렵다”고 진단했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예산을 대폭 풀어 국가 채무가 늘어난 선진국 중 영국과 이탈리아, 캐나다가 국가 신용등급이 하향 조정됐다. 미국과 일본, 프랑스, 스페인 등은 국가신용등급 전망이 하향 조정됐다.  

이에 대해 박성욱 실장은 “영국은 브렉시트 이후 성장이 나빠진 측면도 있고 코로나19 백신 접종이 빨랐지만 그 전까지 타격이 매우 컸다. 이탈리아도 코로나 사태 초기 타격이 극심했다”며 “각 나라의 사정과 상환능력 등 여러 부분들이 반영돼 신용등급이 조정된 것이기 때문에 국가 부채 증가 만으로 국가신용등급이 내려갔다고 보기엔 무리가 있다”고 말했다.  

정규철 실장은 “신용등급 결정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국채 등을 잘 갚을지 여부”라며 “국가채무 증가, 경제 펀더멘털(주요 거시경제지표)의 건전성을 통해 부채상환능력을 판단한다”고 말했다.

박 실장은 우리나라의 부채 상환능력이 문제가 있는 수준은 아니라고 봤다. “상환능력 여부는 결국 정부의 세금 징수 능력인데 이는 경제 전반적인 성장 상황에 달려있다”며 “우리나라는 코로나 위기 이후 경제 성적이 전 세계적으로 봤을 때 나쁘다고 할 순 없다”고 분석했다. 부채가 늘어나는 것 자체는 당연히 국가 신용도에 마이너스 요인이지만 지금 상황에서 국가 신인도가 등급을 낮출 정도로 영향이 크지는 않다는 것이다.

/ 표=김은실 디자이너
/ 표=김은실 디자이너

 

신용평가사의 국가 신용등급 기준은 빚을 갚을 수 있는지 여부다. 경제 성장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건 아니지만 빌려준 돈을 다시 돌려받을 수 있느냐에 관한 문제이기 때문에 빚이 많이 늘어나는 것에 대해서는 경계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우리가 경제 생활하는 목적이 빚을 줄이고 신용등급을 높이는 것이 전부는 아니라는 지적이 있다. 

익명을 요구한 거시 경제 전문가는 “모든 경제는 어두운 면과 밝은 면이 동시에 있다. 금리가 올라가면 예금자는 좋아지지만 대출자는 부담으로 다가오는 식”이라며 “빚이 늘어난다고 했을 때 늘어난 빚을 유용하게 쓰면 좋지만, 탕진해버리고 신용등급만 떨어지면 나쁜 것이기 때문에 어느 한 가지를 좋다 나쁘다 단정해서 판단하는 건 무리”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경제 정책에 있어 신용등급 하락을 막는 것이 최후의 목적은 아니”라며 “우리 경제가 잘 되는 게 최후의 목적으로 두고 신용등급과 정부 부채에 관한 정부 정책을 결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신용등급이 하향을 감수하고 재정을 풀어 경제 회복에 쓸지, 신용등급 하락을 막는 걸 최우선 정책으로 할지 판단의 문제라는 조언이다. 

전문가들은 현재 코로나 상황으로 인해 확장 재정이 불가피한 측면이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국가 부채 관리도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정 실장은 “지금은 코로나 때문에 국가 채무가 많이 늘었는데 위기가 조금 더 해소되는 국면에서는 국가채무도 정상화 시키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것”며 “경제 전반에 있어서는 새로운 산업이 많이 등장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부실기업 구조조정이 병행돼야 한다. 이런 측면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한 교수는 “지금은 코로나 때문에 확장 재정이 불가피한 면이 있지만 국가부채로 인한 부담 증가는 예상보다 훨씬 앞당겨질 것”이라며 “현재 정부 재정으로 정말 어려운 사람을 돕는 것도 쉽지 않은 데 정략적인 예산 집행은 정말 하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재부 관계자는 “국가부채는 신용평가사들이 국가 신용등급을 결정하는데 중요하게 살펴보는 기준 중 하나”라며 “이러한 관점에서 정부도 국가 부채 증가에 대해 주의 깊게 살펴보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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