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은이 한진에 8000억 투입해 아시아나 인수키로
정부·지자체 의도 관철 위해 압박 반복···“反기업정서 활용 지양해야”
[시사저널e=김도현 기자] 한진그룹이 아시아나항공을 인수하기로 결정했다. 글로벌 10위권 대형항공사 탄생의 마중물이 됐다는 해석이 대두됨과 동시에, 기업가에서는 우려의 목소리도 감지된다. 정부·지자체가 입맛에 맞는 의사결정을 기업에 종용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아시아나 빅딜 특혜시비도···“최대수혜 한진 아닌 산은”
16일 정부는 산업경쟁력 강화 관계장관 회의를 통해 아시아나항공 정상화 방안을 논의하고 한진그룹에 산은이 보유한 아시아나항공 지분 30.77%를 매각하는 방안을 확정했다. 산업은행이 한진칼에 제3자 배정 유상증자(5000억원) 및 교환사채 인수(3000억원) 등을 실시하고, 자금을 확보한 한진칼이 산업은행 보유 아시아나항공 지분을 사들이는 방식이다.
현재로서는 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의 합병 대신 각사의 별도 운영이 유력시된다. 대한항공의 진에어와 아시아나항공 산하 에어부산·에어서울 등 두 회사 저비용항공사(LCC)들은 단계적으로 통합될 계획이다. 한진칼 산하에 국내 1·2위 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을 비롯해 초대형 LCC 업체가 차례로 이름을 올릴 전망이다.
공적자금을 투입해 특정기업에 혜택을 몰아준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반면 재계에서는 정반대로 여기는 분위기다. 100% 한진이 원하는 빅딜이 아니라는 뜻이다. HDC현대산업개발과의 계약불발 후 계륵이 된 아시아나항공 매각을 추진했다는 점에서, 이번 빅딜의 최대 수혜자로 산업은행이 지목받는 것 역시 이 같은 해석에 힘을 싣는다.
빅딜추진 소식이 처음으로 알려진 것은 지난 12일이다. 기자들의 질문이 쇄도하자 최초 한진 측은 사실이 아니란 반응을 보였다. 항공업계 일각에서는 경영권 분쟁을 겪고 있는 한진칼 주주로 산업은행이 참여할 경우 현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 체제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는 측면을 부각해, 아시아나항공을 매각하려는 산업은행의 움직임으로 해석했다.
이후 아시아나항공 매각은 급물살을 탔다. 불과 주말을 포함해 불과 나흘여 만에 인수계획이 확정됐다. 기업가에서 우려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시장을 보호하고 육성해야 할 의무가 있는 정부의 움직임이 대형 M&A(인수합병)를 추진하는 기업과 닮아있다는 것이다. 합의 방식을 취하지만, 정부가 원하는 답을 기업이 선택할 수밖에 없는 환경을 만든 것 아니냐는 것이다.
◇송현동·상암동 부지 좌지우지한 서울시···이대로 괜찮을까
근래 들어 이 같은 정부와 지자체의 움직임은 다수 감지됐다. 서울 종로구 송현동 부지 매각계획이 대표적이다. 당초 이곳에 한옥호텔을 건립하려던 한진그룹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코로나19) 여파로 여행업계의 자금난에 봉착하자 송현동을 포함한 주요 자산매각에 속도를 냈다. 복수의 업체들이 이에 관심을 보였지만 이내 쓴맛을 맛봤다.
서울시가 돌연 해당 부지를 공원화하겠다며 매입계획을 밝히며, 한진 측에 인수의향을 제시했다. 부지개발의 인·허가권을 쥔 서울시의 돌발행동에 인수의향을 보였던 업체들이 속속 응찰을 포기했다. 매각을 염두했던 한진 입장에선 인수주체가 서울시가 된다 할지라도 별다른 문제가 없었지만, 인수대금을 분납하겠다는 서울시 계획에는 동의하기 어려웠다.
한진은 서울시의 이 같은 행보가 부당하다며 갖은 방법을 동원해 최초 의향대로 매각을 추진하고자 했으나 실패했다. 결국 송현동 부지 소유주인 대한항공과 서울시는 오는 26일 매각 조정합의에 서명할 계획이다. 현재는 매각가격·시점·지불방식 등을 놓고 세부조율이 이뤄지고 있다. 서울시도 일부 양보하겠지만, 최초 계획대로 기업을 움직인 사례를 남기게 됐다.
2013년 서울시는 상암동 시유지 일부를 롯데그룹에 매각했다. 인수주체는 롯데쇼핑이었다. 당초 롯데는 이곳에 2017년 오픈을 목표로 롯데몰을 건립할 계획이었다. 원활한 매각과 순탄한 개발을 위해 양측은 개발이 지연되면 원소유주 서울시가 롯데에 배상금을 주는 조건부 계약을 단행했다. 2015년 7월 서울시는 돌연 전통시장과의 상생합의안을 요구했다.
롯데 측도 판매시설 축소, 전통시장 개선비용 지원, 지역주민 우선채용 등을 내걸었으나 계획안은 보류됐다. 급기야 지난해 감사원은 서울시가 롯데몰 개발 승인관련 업무를 부당하게 처리했다며 조속한 처리를 지시하기도 했다. 당초 계획의 절반수준의 판매시설을 들이는 조건으로 최근에서야 개발 재추진이 이뤄지고 있다. 이 과정에서 서울시의 입장번복보다, 전통시장과의 상생위반이라는 롯데를 향한 지탄이 커졌다.
◇“특정 정치세력만의 문제 아냐”···정부입김 좌지우지 언제까지
재계에서는 특정 정권의 문제라 치부하지 않는다. 투표를 통해 행정부의 수장이 교체되지만, 좌우막론하고 민심을 얻기 위해 반기업정서를 활용하고, 정책적 효과보다 대중적 인지도를 높이려는 규제가 만연한다고 입을 모은다.
이상호 한국경제연구원 고용정책팀장은 “전체적인 경제효율성을 저하시키는 규제만능주의 행보는 기업의 발목을 잡아 한국경제를 도태시킬 수밖에 없다”고 우려한 바 있다. 한 재계 관계자도 “신조어 중에 ‘답정너’라는 말이 있다”면서 “답은 정해놓고 너는 선택만 하라는 의미인데, 정권은 교체되지만 기업을 향한 권력의 고압적 자세는 여전하다”고 토로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정부·지자체가 기업을 좌지우지 할 수 있는 환경이 지속될 경우 또 더 큰 문제들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사상 초유의 대통령 탄핵을 야기했던 ‘박근혜-최서원(최순실) 국정농단 사태’가 재현될 수 있는 여지를 남기게 된다는 뜻이었다.
그는 “주요 재벌들이 광범위하게 연계된 국정농단의 본질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지위를 이용해 기업을 압박하고, 이에 따른 실익을 대통령과 그 측근들이 나눴다는 것”이라면서 “권력과 정부가 기업의 의사결정에 과도한 개입을 반복한다면, 권력의 입맛에 따라 언제든 재현될 수 있다는 데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고 시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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