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원구성 논의 ‘협치 전제조건’ 제시···“협지 여건 사전에 만들어줘야”
민주, 소모적 정쟁 반복 우려···예산안 등 협조·‘독주’ 이미지 전환 등 고심도

야당이 원구성 재논의 카드를 꺼내들면서 국회는 협치와 파행의 기로에 선 분위기다. /사진=이창원 기자
야당이 원구성 재논의 카드를 꺼내들면서 국회는 협치와 파행의 기로에 선 분위기다. /사진=이창원 기자

9월 정기국회가 재차 ‘원구성 블랙홀’에 휘말리지 않을까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야당이 ‘협치’(協治)의 조건으로 원구성 재논의 카드를 꺼내들었기 때문이다.

현재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국회 상임위원장을 모두 가져간 상황에서 합리적인 논의가 불가하다는 것이 야당의 주장이지만, 민주당 입장에서는 사실상 ‘법제사법위원장 쟁탈전’이 되풀이 될 뿐이라며 난색을 표하는 분위기다.

다만 향후 국회에서 ‘4차 추가경정예산안’, 2021년도 예산안 등의 처리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출범 등에도 야당의 협조가 필요한 상황이고, ‘민주당 독주 국회’라는 이미지를 전환시키기 위해서도 원구성을 다시금 논의할 필요도 있다는 의견도 제시되고 있다.

◇野 “협치, 여건이 조성돼야”···법사위 포함 7개 상임위원장 요구할 듯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지난 10일 국회 사랑재에서 박병석 국회의장 주재로 열린 이낙연 민주당 대표와의 오찬 회동에서 “협치를 강조하려면 첫째로 힘을 가진 분들이 협치할 수 있는 여건을 사전에 만들어주셔야 하지 않느냐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어 “협치를 하려면 할 수 있는 그러한 여건이 조성이 돼야 한다”며 “21대 총선이 끝나고 원구성을 하는 과정 속에서 종전에 지켜오던 관행이 지켜지지 않았기에 여야 사이에 상당한 균열이 생겼고, 아직도 봉합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앞서 여야는 지난 5월 30일 21대 국회 출범 이후 6월 30일까지 약 한달 동안 원구성 문제를 논의했지만 끝내 불발된 바 있고, 이에 따라 현재 민주당 소속 의원이 18개 국회 상임위원장을 모두 맡고 있다.

여야 합의 불발 당시 유력한 안으로 꼽히던 ‘11:7(민주당:국민의힘)’ 정도의 상임위원장 배분이 전제돼야 협치가 가능하다는 주장인 것이다. 21대 국회 상임위원회에서 야당 의원들의 퇴장, 보이콧 사태 등이 잇따른 것도 ‘힘의 불균형에 따른 협상 불가’ 상황이었다는 점을 강조한 발언이기도 하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민생경제 법안, 예산안, 추경안 등 모두 국회에서 치열하게 논의하고 심사해야 할 과제”라며 “현재 상임위원회 구조상에서는 민주당 생각대로 모든 것이 일사천리로 처리될 수밖에 없다. 실질적인 국회의 기능을 살리기 위해서는 상임위원장 배분이 꼭 필요하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무엇보다 ‘거여야소 정국’에서 야당이 야당의 역할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법제사법위원장은 야당 의원이 맡아야 한다”며 “다소 여야 간 힘겨루기나 정쟁 등으로 비춰질 수 있겠지만, 행정부에 대한 견제라는 국회의 제1기능 수행을 위해서는 이 부분이 반드시 전제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21대 국회 출범 이후 여야의 대립 속에 대부분의 상임위원회는 잇따라 파행을 겪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21대 국회 출범 이후 여야의 대립 정국 속에 대부분의 상임위원회는 잇따라 파행을 겪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與, 빠듯한 국회일정 속 재논의 ‘불가’ 분위기···협치 ‘마중물’ 필요 주장도

반면 민주당은 원구성 재논의는 어렵다는 분위기다. 재논의 시 법제사법위원장 자리를 둔 야당의 ‘몽니’가 반복되면서 향후 국회 일정에 모두 차질을 빚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올해 국회 일정이 약 4개월 밖에 남지 않았고, 국정감사 등 일정을 진행하면서 ‘4차 추경’, 예산안 등을 처리하기에만도 빠듯하다는 주장이다. 또한 산적한 법안 관련 논의, 처리 등에도 시간이 부족해 정쟁을 재차 반복할 수 없다고 지적하고 있다.

특히 문재인 정부 하반기 개혁 드라이브에 힘을 쏟고, ‘거여야소 정국’ 속 변화된 국회의 모습을 보이기 위해서도 원구성 재논의는 불필요하다는 것이 민주당 당내 다수의 목소리다.

민주당 관계자는 “국민의힘이 원구성을 다시 논의하자고 하는 것은 연말, 길게는 내년까지 민주당에 ‘독단 프레임’을 이어가겠다는 말”이라며 “‘일하는 국회’를 표방하며 21대 국회가 시작된 것은 이제 3달 남짓이다. 불필요한 정쟁을 줄이고 ‘국회의 일’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결국 국민의힘은 지난 협상에서 가져가지 못한 법제사법위원장을 달라고 하는 것”이라며 “지난 협상 때도 민주당은 법제사법위원회가 다른 상임위원회의 상원으로 군림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 기본 입장이다. 국민의힘의 주장은 상원 권력의 법제사법위원회를 통해 모든 정부, 여당의 법안, 정책 등을 저지하겠다는 것으로 받아들이기 힘든 부분”이라고 말했다.

다만 민주당 일각에서는 원구성 재논의에 대한 검토도 해볼 수 있다는 목소리도 흘러나온다. 원구성 재논의 자체보다는 현재 첨예한 대립 정국을 해소하고, 산적한 현안 처리를 위한 마중물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문재인 대통령과 민주당 지도부가 일제히 협치를 강조하고 나선 것도 이와 같은 맥락이라는 것이다.

앞서 문 대통령은 지난 9일 민주당 지도부와의 간담회에서 “국가적으로 아주 위중하고 민생경제와 국민들 삶에 있어서도 아주 엄중한 상황이기 때문에 과거 어느 때보다 협치가 중요하게 됐다”며 “여야 간 협치, 또 나아가 여야정 간 합의 또는 정부와 국회 간 협치를 지금처럼 국민들이 절실히 바라는 시기가 없었다”고 밝힌 바 있다.

정치권 한 관계자는 “냉정하게 판단하면 총선에서 참패하고, 이후 국회에서도 무기력한 모습을 확인하면서 야당이 코너에 몰린 것이다. 원구성을 재논의하더라도 야당의 뜻대로 될 수 없다는 것은 사실상 모두가 알 것”이라며 “하지만 민주당이 향후 예산안, 공수처 출범, 개혁입법, 개헌 등을 문재인 정부 하반기 차근차근 진행해나가기 위해서도 어느 정도의 ‘야당 달래기’는 필요하다”고 말했다.

아울러 그는 “민주당도 사실관계는 별개로 하더라도 ‘독주’ 이미지가 구축돼 가고 있다는 것은 부담스러운 점”이라며 “야당과의 협상에서 유연한 모습을 보이며 원하는 방향으로 이끄는 것이 거대여당의 정치적 덕목”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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