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해연 집계한 10건 중 2건 혐의없음 결론···“촉구 시위 바라보는 분위기도 달라져”

이혼 전 배우자에게 양육비지급을 촉구하며 1인 시위 중인 A씨 모습. / 사진=양육비해결총연합회 제공
지난 3월12일 이혼 전 배우자에게 양육비지급을 촉구하며 1인 시위 중인 양육비 채권자 A씨. / 사진=양육비해결총연합회 제공

2018년 협의 이혼한 양육자 A씨는 지난 1월부터 양육비를 받지 못하자 비양육자 B씨의 사무실 앞에서 ‘OOO씨 당신의 아이를 위한 양육비 지급을 촉구합니다’라는 문구와 함께 B씨의 사진을 넣은 피켓을 들고 서 있었다. 그러자 B씨는 양육비 미지급과 명예훼손은 별개의 사안이라며 A씨를 사실적시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다.

A씨는 지난 4일 인천지방검찰청으로부터 불기소이유 통지서를 전달받았다. 처분의 요지는 증거불충분에 따른 혐의없음이다.

검찰은 불기소이유통지서에서 “명예훼손죄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구체적인 사실적시가 인정되어야 하는데 ‘당신의 아이를 위한 양육비 지급을 촉구합니다’라는 내용은 의견표현을 넘어 사실의 적시에 이르렀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검찰은 또 “고소인(채무자 B씨)이 피의자(채권자이자 양육자 A씨)에게 양육비를 정상적으로 지급하지 않은 것은 사실인 점, 피의자는 이 사건에 앞서 고소인에게 수회 걸쳐 양육비 지급을 독촉했던 점을 고려하면 명예훼손의 고의가 있었다고 단정하기도 어렵다”고 했다.

유사한 이유로 고소를 당한 양육자 C씨 역시 최근 수원지방검찰청으로부터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C씨의 전 배우자는 그를 명예훼손, 모욕, 협박, 무고 혐의로 고소했지만 검찰은 모두 증거불충분을 이유로 혐의없음 처분을 내렸다.

양육비 미지급자의 얼굴을 공개하며 지급을 촉구하는 시위를 명예훼손을 볼 수 없다는 수사기관 판단이 줄줄이 나오고 있다. 채무자의 신상을 온라인에 공개한 배드파더스 활동가 구본창씨에 대한 무죄 판결 이후 유사 촉구 사례들이 영향을 받는 것으로 분석된다.

5일 시민단체 양육비해결총연합회(양해연)에 따르면 양육비를 요구하는 시위로 고소를 당한 양육자는 10여명으로 집계됐으며, 이 중 2건에 혐의없음 결론이 나왔다. 나머지 8건은 수사가 진행 중이다.

집계된 사례들은 대부분 구본창씨 무죄판결 이후 나온 것들이다. 구씨는 피해자들의 신상정보를 동의 없이 인터넷에 공개해 재판에 넘겨졌지만, 법원은 양육비 문제는 공공의 이익과 관련된 사안으로서 ‘비방할 목적’이 인정되지 않는다는 결론 내렸다. 공공의 이익에 관한 것인 경우 정보통신망법상 명예훼손죄의 구성요건인 ‘사람을 비방할 목적’이 부정된다는 판례에 근거한 결론이었다.

1심인 수원지방법원 형사11부(재판장 이창열 부장판사)는 판결문에서 “게시된 내용을 보면 양육비 미지급자를 비하했다거나 악의적·공격적·모욕적인 표현을 찾아볼 수 없다”며 “양육비 미지급자가 스스로 명예훼손적 표현의 위험을 자초한 사실이 있다”고 판단했다. 또 “양육비 채무자의 인적사항을 공개함으로써 채권자의 고통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나아가 양육비 지급을 촉구하는 행위는 그 동기와 목적에서 공공의 이익과 관련이 있다고 할 수 있다”며 “일부 사적인 동기가 포함되더라도 전체적으로 비방의 목적이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했다.

구씨의 무죄 판결 이후 수년간 국회에서 체류하던 양육비 이행 강화법도 20대 국회 막바지에 통과됐다. 양육비를 주지 않을 경우 운전면허 제재 등 불이익이 커졌다. 실효성 있는 양육비 이행 방안이 마련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구씨 무죄 판결과 양육비 이행 강화법 통과 이후 촉구 시위를 바라보는 시선도 달라졌다고 한다. 양육비 채권자이자 활동가 손민희씨는 “시위를 통제하는 경찰들의 태도가 달라졌다. 양육비를 요구하기 위해 거리로 나설 수밖에 없었던 절박함을 이해해주신다”며 “구본창씨 무죄 사례와 최근 양육비 이행강화법 입법으로 여론이 환기됐고, 양육비는 꼭 지급돼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된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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