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금조달 계획·이해관계자 협의’ 없이 급하게 추진···현장서 혼란만 가중

박원순 서울시장이 공원화 사업에 단단히 꽂힌 모습이다. 서울시는 최근 용산과 종로, 성동 등에 위치한 노른자위 땅을 매입해 공원화하겠다는 계획을 잇따라 발표하고 있다. 

종로구 ‘송현동 부지’가 대표적이다. 면적만 1만평이 넘는 송현동 부지는 동서로는 서촌·경복궁·창덕궁이, 남북으로는 북촌·인사동이 위치해 서울 중심가에서도 입지가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는다. 서울시는 지난달 매물로 나온 이 땅을 매입해 공원으로 조성하겠다고 밝혔다. 서울시는 “부지를 공원으로 만들려는 서울시의 의지는 확고하다”며 “만약 대한항공이 제3자에게 부지를 매각할 경우에도 서울시는 이를 재매입해 공원으로 조성할 것이다”고 밝히며 공원화에 대한 강한 의지를 드러냈다.

문제는 돈이다. 송현동 부지의 추정 가치는 5000억원(3.3㎡당 4500만원)에 달한다. 하지만 서울시의 재정형편은 넉넉지 않은 편이다. 서울시는 ‘공원일몰제’로 불리는 ‘장기 미집행 도시계획시설 실효제’가 진행됨에 따라 지난해부터 2.33㎢ 규모 도시공원 사유지를 사들이고 있다. 지난해부터 올해까지 배정된 예산은 1조4900억원인데, 1조2900억원이 지방채 발행으로 마련됐다. 송현동 부지에 수천억원의 비용을 쏟아붓기에는 부담스러운 상황이다.

땅주인인 대한항공과 사전 협의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대한항공은 현재 송현동 부지를 서울시가 아닌 제3자에게 매각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회사가 생각하는 부지의 가치는 6000억원으로, 서울시가 생각하는 것보다 1000억원이나 더 높다. 대한항공은 매각 작업을 하기도 전에 서울시가 공원화를 언급해 불쾌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용산구 ‘한남근린공원’ 부지도 비슷한 상황에 놓였다. 해당 부지는 용산구 한남동에서도 금싸라기 땅으로 불린다. 주변에는 국내 최고가 아파트인 ‘한남더힐’과 ‘나인원한남’이 포진하고 있다. 서울시는 이 땅을 매입해 공원화하겠다고 나섰다. 6월까지 실시계획(공사 일정·공법·자금 조달 방법 등을 담은 구체적인 사업 계획)을 확정하고 2025년 상반기까지 공사를 마무리한다는 계획까지 세웠다. 하지만 현재 서울시는 용산구와 공원 매입비용 3400억원을 두고 비용을 누가 더 부담해야하는지 줄다리기 싸움을 하고 있다. 무엇보다 서울시가 제시한 비용을 땅 소유주인 부영이 받아들일지도 불투명하다.

이밖에도 서울시가 성수동 서울숲 인근 삼표 레미콘 공장 용지에 추진 중인 공원화 사업장에서도 잡음이 들려오고 있다. 2017년 서울시와 성동구는 현대제철, 삼표산업과 함께 2022년 6월까지 삼표 레미콘 공장 이전·철거를 내용으로 하는 4자 협약을 체결한 바 있다. 체결 내용에는 이전·철거 시기, 보상 방법 등을 담은 후속 협약을 체결한 뒤 이전을 위한 행정 절차 진행이 포함됐다. 하지만 삼표가 아직 이전 부지를 마련하지 못한 상황에서 서울시는 성수동 레미콘 공장 철거를 위한 행정절차에 돌입했다.

서울시의 결정 이후 근로자들은 생존권 보장을 외치며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레미콘 기사 등 삼표산업 성수공장 근로자 500여명으로 구성된 비상대책위원회는 “서울시가 구체적 공장 이전 대책 없이 철거를 강행하면 2000명이 넘는 공장 직원과 가족의 생계가 끊긴다”는 입장이다. 반면 서울시는 “이전·철거 시한이 불과 2년 앞으로 다가왔기 때문에 더 이상 기다릴 수 없다”며 강행하겠다는 뜻을 고수하고 있어 갈등은 격화될 전망이다. 아울러 서울시는 3000억~4000억원에 달하는 해당 용지의 취득 방안에 관해서는 아직 대책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일단 지르고 보는’ 식의 서울시의 행정은 각종 현장에서 혼란만 가중시키고 있다. 어떤 결정을 내리기 위해서는 명확한 전략과 철저한 계산이 먼저 실행돼야 한다. 하지만 서울시의 행정은 반대로 흘러가는 모양새다. 말은 내뱉었지만 구체적인 계획이 없다. 이렇다보니 계속해서 변수가 생기고 계획을 수정하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사업 지연은 불 보듯 뻔한 일이다. 

이해관계자들과의 소통보다 서울시의 일방적인 행정이 먼저 앞서고 있다는 점도 문제다. 서울시는 송현동부지 공원화에 앞서 대한항공과 협의를 추진하고 있다고 했지만, 대한항공은 금시초문이라는 반응이었다. 일각에서는 단순한 공원 만들기가 아닌 박 시장이 정치적 행보를 위해 무리수를 두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서울 시민들을 위해서’라는 명분도 과정과 절차가 없다면 퇴색될 수밖에 없다. 이제라도 박 시장이 한발 물러서 긴 호흡으로 임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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