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백화점 콜스 1200억원 규모 주문 취소에 국내 중견업계 직격탄
정부 정책자금 받기도 어려워···일부 패션업계는 구조조정까지 단행

서울 중구 롯데백화점. (사진 기사와 무관) / 사진=연합뉴스
서울 중구 롯데백화점(사진은 기사와 무관). / 사진=연합뉴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전 세계적으로 확산하면서 국내 패션업계가 직격탄을 맞았다. 특히 미국·유럽 등지에 대한 수출에 의존했던 중소·중견기업들로선 선적 지연과 오더 부진이 불가피해질 전망이다. 여기에 미국 대형 백화점 콜스(Kohl’s), JC페니 등의 파산 위기로 생산기지 가동이 멈추는 등 국내 패션업계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맞게 됐다.

국내 주문자상표생산(OEM) 방식의 수출로 성장해 온 국내 의류 벤더사 입장에선 타격이 더 클 수밖에 없다. 한세실업·한솔섬유 등이 글로벌 의류 브랜드에 제조업자개발생산(ODM) 형태로 제품을 공급하는데, 전체 매출의 92%가 미국에서 발생한다.

다행히도 국내 패션업계는 동남아·중남미 생산 구조 덕분에 1분기까지는 버틸 힘이 남아 있었지만, 지난달부터 미국과 유럽에 코로나19 확산이 본격화되면서 2분기 실적 악화가 우려되는 상황이다.

실제 한국섬유산업연합회가 잠정 집계한 3월 국산 섬유 수출은 9억9100만 달러에 머물러 지난해 동월에 비해 8.8% 감소했다. 올 3월 말 기준 섬유류 수출은 31억 달러로 지난해 동기 대비 1.9% 줄어들었다.

미국·유럽 등 현지 매장이 연달아 휴점하면서 바이어들은 국내 패션업계에 주문 취소, 선적 지연을 요청하고 있다. 또 월스트리트저널(WSJ)과 블룸버그통신 등의 17일 보도에 따르면 코로나19 여파로 113년 전통의 미국 고급 백화점 니만마커스와 JC페니가 파산 위기에 놓였다.

특히 미국 대형 백화점 콜스는 지난달 한국 중견 의류기업들에 발주했던 주문을 취소했다. 취소한 규모는 약 1억 달러(한화 약 1200억원) 수준이며, 1000만 달러 이상 피해를 입은 기업 3곳을 비롯해 10여 곳의 국내 패션기업이 피해를 본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콜스는 코로나19로 경영 상황이 악화돼 구조조정에 들어갔다. 자사주 매입 프로그램을 중단하고, 배당을 축소하는 등 현금 확보 방안을 강구하고 있다. 국내 중견 패션기업에 따르면 콜스 백화점은 주문 취소에 따른 수수료도 부담하지 않기로 했다. 코로나19는 천재지변이어서 주문 취소에 따른 법적 책임도 없다는 이유에서다.

이로써 국내 패션업계는 해외 수출 부문에서 직격탄을 맞았다. 한솔섬유는 이달부터 일부 사업부를 대상으로 희망퇴직을 실시할 예정이고, 의류 제조·수출 기업인 세아상역은 일용직을, 학생복 제조업체 형지엘리트는 계약직을 감축했다. 신성통상은 수출사업본부 직원 25여 명에게 최근 해고를 통지한 데 이어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 해외 지사 파견 직원들에게도 권고사직을 유선상으로 전달한 상태다.

익명을 요구한 패션업계 직원 A씨는 “생산 준비 단계에서 주문을 취소한 사례도 늘어나고 있다”면서 “최근 들어 무급휴직을 확대하는 패션기업이 많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패션업계 직원은 “일부 기업에서 구조조정을 했고, 코로나19로 경영 상황이 악화되고 있어 최악의 경우 하반기에도 구조조정이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섬유류 수출도 큰 타격을 입고 있다. 코로나19의 전 세계적 확산에 따른 수요 감소와 각 국가별 봉제공장 폐쇄 또는 봉쇄 정책에 따른 원부자재 조달과 물류 운송 차질, 비즈니스 미팅 무산이 원인으로 꼽히고 있다.

상황이 악화되자 국내 패션업계 및 한국섬유산업연합회는 업계 차원에서 대응책을 마련 중이다. 그러면서 패션업계는 코로나19 타격이 불가피한 업종임에도 특별고용지원업종에서 제외돼 정부의 정책자금 지원을 받기 어렵다는 점을 호소하고 있다.

정부에서 전 업종을 대상으로 고용유지지원금 신청 접수를 받았지만 이는 패션산업의 특성상 적합하지 않은 지원책이라고 패션계는 입을 모았다. 고용유지지원금을 신청하면 코로나19 상황을 돌파하기 위한 신사업을 진행하더라도 신규 인력 채용이 어렵다.

고용유지지원금을 받으려면 ▲고용유지 실시 전월 매출이 15% 이상 감소 ▲신규 근로자 채용 불가 ▲고용유지 실시 기간과 추가 1개월간 전체 근로자의 회사 사정으로 인한 권고사직 불가 등의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이 기간 중 신규 채용이 발생하면 지원금 지급도 제한될 수 있다.

패션업계 관계자는 “계절마다 트렌드에 민감하게 반응해야 하는 업종이어서 단기적으로 봤을 땐 지원금이 도움이 된다”면서 “하지만 신청 조건을 세부적으로 보면 회사에 필요한 지원금을 받기가 어렵고, 받게 돼도 정부의 지원금은 턱없이 부족하다”고 호소했다.

산업부 관계자는 “코로나19 사태 확진 초기부터 국내외 섬유·패션업체 조업 상황, 계약 이행, 수출 상담 등에 대해 유선 또는 현장조사를 통해 업계와의 소통을 지속해 왔다”면서 “코로나19 대응 데스크를 설치해 정책금융 지원, 수출보험 감면 등 섬유·패션기업이 활용 가능한 지원 정책을 마련하기 위해 노력 중”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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