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원화 의지 확고···제3자에 부지 매각되면 재매입할 것”
정부에 손 벌렸지만 자금 조달 쉽지 않을 듯

대한항공이 소유한 서울 종로구 송현동 부지 전경 / 사진=길해성 기자
대한항공이 소유한 서울 종로구 송현동 부지 전경 / 사진=길해성 기자

서울시가 대한항공이 매물로 내놓은 서울 종로구 ‘송현동 부지’에 매입 의사를 나타냈다. 송현동 부지는 서울 중심부에 위치한 덕분에 금싸라기 땅으로 꼽히지만 각종 규제로 개발이 막히면서 수십년간 방치돼 왔다. 서울시는 해당 부지를 매입해 공원화 한다는 방침이다. 다만 서울시의 자금 조달 계획이 아직 뚜렷하지 않고, 대한항공과의 협상도 남아 있어 매입 과정은 순탄치 않을 전망이다.

22일 부동산업계에 따르면 서울시는 서울 종로구 송현동 49-1번지에 위치한 대한항공 소유 ‘송현동 부지’(3만6642㎡)를 매입해 공원으로 조성할 계획이다. 매입가는 5000억원(3.3㎡당 4500만원)대로 추정하고 있다. 진희선 서울시 2부시장은 지난 18일 “대한항공 측과 송현동 부지 매입을 위한 협상을 진행하고 있다”며 “우선 올해 안에 도시계획시설공원으로 지정하고 2022년에 매입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밝혔다.

송현동 부지는 경복궁 바로 옆에 위치했을 뿐만 아니라 광화문, 인사동, 안국동 등과 인접해 서울의 몇 안 되는 금싸라기 땅으로 불린다. 하지만 이 부지는 각종 규제로 개발이 어려워 국방부에서 민간으로 소유가 넘어간 이후 23년째 공터로 남아 있다.

특히 서울시는 송현동 부지에 그동안 꾸준히 관심을 나타내 왔지만 공식적으로 매입 의사를 밝힌 건 이번이 처음이다. 진 부시장은 “부지를 공원으로 만들려는 서울시의 의지는 확고하다”며 “만약 대한항공이 제3자에게 부지를 매각할 경우에도 서울시는 이를 재매입해 공원으로 조성할 것이다”고 밝혔다.

앞서 지난해 6월 박원순 서울시장은 “송현동 부지는 도심에서 이렇게 큰 유휴부지가 있을 수 없는 곳인데 대한항공에서 박근혜 정부 시절 이곳을 관광호텔을 만들려고 해서 말썽이 있었다”며 “일부는 공원화하고, 일부는 우리 전통문화를 함양시키는 시설이 들어오는 게 적절할 것이다”고 말한 바 있다.

관건은 자금 조달이다. 서울시는 현재 재정 형편이 넉넉지 않은 편이다. ‘공원일몰제’로 불리는 ‘장기 미집행 도시계획시설 실효제’가 진행됨에 따라 지난해부터 올해까지 2.33㎢ 규모 도시공원 사유지를 사들여야하기 때문이다. 서울시는 땅 주인들이 올해 7월부터 공원 예정지에 건물을 올릴 수 있는 만큼 해당 토지 매입을 서두르고 있다. 지난해부터 올해까지 배정된 예산은 1조4900억원이다. 이마저도 1조2900억원을 지방채 발행으로 메우는 상황이라 송현동 부지에 수천억원의 비용을 쏟아붓기에는 부담스러운 상황이다.

정부에 도움을 받아 자금을 확보한다는 계획도 쉽지 않을 전망이다. 서울시는 인근 국립민속박물관을 비롯해 국가시설을 유치하면 부지 매입비용 일부를 국비로 지원받을 근거를 마련한다는 방침이다. 다만 정부가 서울시의 요청을 받아들일지는 미지수다. 서울시에 들어서는 공원 하나를 위해 수천억원을 지원하기에는 다른 지방자치단체의 눈치가 보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편 서울시의 강한 매입 의사는 이제 막 매각 계획에 나선 대한항공에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한 투자은행(IB) 업계 관계자는 “송현동 부지는 한 때 가치가 1조원까지도 평가됐다”며 “그런데 서울시가 5000억원이라는 매입 예상가를 먼저 제시하면서 대한항공은 당초 매각 계획에 차질을 빚는 등 상당한 압박을 느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사전에 관심을 갖고 접촉했던 사업자들도 있을텐데, 개발 인허가권자인 서울시가 송현동 부지를 점 찍으면서, 제3자에게 매각한다는 건 사실상 불가능해진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송현동 부지는 과거 조선 시대 고위 관리들의 사저로 사용되는 등 유서가 깊은 땅이다. 일제강점기에는 조선식산은행 사택으로, 해방 이후에는 미국 대사관 직원 숙소로 쓰였다. 1997년 국방부가 삼성생명에 매각하면서 민간으로 넘어갔다. 삼성생명은 송현동 부지를 1400억원에 매입한 이후 복합문화시설을 짓기 위해 10년 가까이 시도했다. 하지만 역사·문화적 가치가 높다는 이유로 개발이 불허되면서 계획은 무산됐다.

2008년 대한항공 역시 2900억원에 땅을 매입한 이후 ‘7성급 한옥호텔’ 건립을 추진했다가 교육당국의 반대에 부딪혔다. 교육청은 카지노 등 각종 유해시설이 들어올 수 있다는 이유로 호텔 건립을 불허했다. 현재 송현동 부지 주변에 풍문여고와 덕성여중·고 등 3곳이 인접해 있다. 대한항공은 이후 벌어진 행정소송에서도 2012년 대법원으로부터 최종 패소판결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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