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유가 기조 장기화될 경우 수주 취소·지연 우려
“경기 회복 모멘텀 無···유가 반등 가능성 미미”

코로나19 사태에 이어 산유국 간 갈등으로 국제유가가 급락하면서 중동 건설시장에 먹구름이 드리우고 있다. 국내 건설업계는 저유가 기조가 장기화 될 경우 신규 발주와 기존 사업 현장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는 모습이다.  / 그래픽=조현경 디자이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에 이어 산유국 간 갈등으로 국제유가가 배럴당 30달러 초반대로 폭락하면서 건설업계에 비상이 걸린 모습이다. 저유가 기조가 장기화될 경우 중동 국가들의 재정이 악화돼 신규 발주 연기는 물론, 기존 사업의 지연 사태가 발생할 수 있어서다. 여기에 코로나19 여파로 경기 회복 가능성이 작아 유가 반등 속도도 더딜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면서 중동 수주 시장에 먹구름이 드리우고 있다.

10일 업계에 따르면 국제유가는 코로나19 사태로 소비가 위축된 가운데 주요 산유국들 간 추가 감산 합의가 불발되면서 최근 크게 하락했다. 9일(현지 시각)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4월 인도분 서부 텍사스산 원유(WTI)는 전 거래일보다 배럴당 24.6%(10.15달러) 떨어진 31.13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이는 1991년 걸프전 이후 약 30년 만의 최저치다. 런던 ICE 선물거래소의 5월물 브렌트유도 배럴당 23.83%(10.79달러) 급락한 34.48달러에 거래됐다.

앞서 석유수출국기구(OPEC)와 러시아 등 10개 주요 산유국은 코로나19가 전 세계에 확산하면서 원유 수요가 감소하자 지난주 추가 감산을 논의했지만 러시아의 반대로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이후 세계 최대 산유국인 사우디아라비아가 시장점유율을 높이기 위해 원유 공식 판매가격을 대폭 낮추고 증산 정책을 폈고, 국제유가는 배럴당 30달러 초반까지 곤두박질쳤다. 골드만삭스는 올 2·3분기 브렌트유 전망치를 배럴당 30달러로 하향 조정하고, 몇 주 안에 20달러까지 추락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유가 하락 소식에 건설업계는 바짝 긴장한 모습이다. 유가 하락으로 재정 압박을 받은 중동 국가들이 신규 발주는 물론, 이미 발주해놓은 플랜트 건설의 일정을 연기하거나 취소할 가능성이 있어서다. 송유림 한화투자증권 연구원은 “원유 가격이 20~30달러까지 내려오게 되면 산유국들의 재정 악화, 발주처의 경영 상황 악화, 프로젝트의 수익성 하락 등으로 신규 프로젝트 발주가 취소·지연될 가능성이 존재한다”며 “아울러 기존 공사 진행이나 공사비 수령에도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과거 건설사들은 국제유가가 급락하면서 해외 실적이 크게 악화된 바 있다. 2015∼16년 사우디아라비아와 러시아는 미국의 셰일가스 생산에 대응하기 위해 원유를 증산하면서 공급 과잉을 유도했다. 그 결과 2014년 8월 배럴당 100달러를 넘었던 두바이유는 2015년 2월 50달러까지 떨어졌고, 2016년 1월에는 25달러로 최저치를 찍었다. 그 사이 자금 사정이 어려워진 중동 국가들은 대규모 건설 프로젝트를 줄줄이 취소하거나 연기했다. 2015년 국내 건설사들의 중동 수주액은 전년(313억5000만 달러) 대비 절반 수준인 165억 달러에 그쳤다.

더 큰 문제는 앞으로 유가 회복 가능성이 불투명하다는 점이다. 2016년 초 경기가 살아나면서 국제유가가 반등하기 시작했지만, 지금은 경기 회복에 필요한 모멘텀을 찾기 어렵다는 분석이 나온다. 원민석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과거 국제유가 급락 당시에는 2016년 경기 회복을 기반으로 국제유가가 반등하고 정유·화학 업종의 업황이 개선됐던 반면 현재는 코로나19 확산으로 경기 회복이 지연되고 있다”며 “국제유가가 반등하려면 경기 회복이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건설업계는 유가 하락이 장기화될 경우를 대비해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현대건설 관계자는 “유가 하락으로 중동 국가들이 가시화된 발주를 급박하게 취소할 수는 없을 것이다”며 “다만 유가 하락 사태가 장기화될 경우 중동 국가들이 대기 물량 발주를 다시 검토하게 되면 문제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GS건설 관계자는 “중동 국가 중 사우디는 재정이 풍부하고 유가를 조정할 수 있는 만큼 발주에 큰 영향이 없겠지만, 그 외 국가들은 저유가 기조가 장기화될 경우 재정에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다”며 “지난해부터 중동 지역에 집중한 건설사들이 타격을 입을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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