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인정되는 사유만으로도 징계 타당···서장·간부 맡기기 곤란”
직권남용·강요 혐의로 재판 중···1심 징역형 뒤집고 2심서 무죄 판결

/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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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사개입과 사건관계자와의 부적절한 접촉, 부하직원에 대한 욕설 등을 이유로 강등의 중징계를 받았던 김경원 전 용산경찰서장(총경)이 징계를 취소해 달라며 낸 행정소송에서 패소했다.

법원은 김 전 총경에 대한 징계사유 상당부분이 사실로 인정된다고 봤다. 다만 그는 직권남용과 강요 혐의로 기소된 형사사건 2심에서 무죄 판결을 선고받은 상태다.

서울행정법원 행정11부(재판장 박형순 부장판사)는 김 전 총경이 경찰청장을 상대로 “강등의 징계 처분을 취소해 달라”며 낸 소송에서 원고의 청구를 기각했다고 1일 밝혔다.

김 전 총경은 지난 2016년 12월까지 크게 4가지 징계사유로 총경에서 경정으로 1계급 강등됐다.

판결문에 따르면 그는 ▲고소인의 청탁을 받고 소송사기 사건을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하도록 지시하고, 관할권이 없는 사건(친형 고소 사건)에 대해 수사를 지시하는 등 사건에 부당하게 개입한 사유 ▲수사과장에게 사건관계자를 소개시켜주거나, 수사 중인 사건 관계자와 식사하는 등 부적절 접촉하고, 사건 진행사항을 알려주는 등 수사공정성을 훼손한 사유로 징계를 받았다.

또 ▲소송사기 사건 관련해 자신의 지시를 따르지 않은 직원에게 욕설 등을 하고, 경제범죄수사팀 회식 시 변호사로부터 접대 등을 받은 부적절 처신 사유 ▲자신과 경무과장·경무과 7명·청문 5명 등 총 14명이 체력검정 점수를 부정하게 취득하는 것을 방지하지 못한 사유 등도 징계내용에 포함됐다.

재판부는 첫 번째 징계사유와 관련해 “사실관계를 종합해 보면 사건개입 및 수사공정성 저해 행위가 있었음을 넉넉히 인정할 수 있다”며 “원고의 비위 행위는 청탁의 존재를 배제하더라도 강등의 징계처분을 하기에 충분하다”고 밝혔다. 그가 사건관계인을 만나고 전화통화를 한 것을 단순히 사교행위로 볼 수 없고, 수사팀장을 통해 팀원이 고소인에게 유리한 결론을 내도록 지시했다고 볼 정도의 행위를 했다는 이유에서다.

두 번째 징계사유에 대해서도 재판부는 “고소대리인과 점심식사를 하면서 수사업무 관리자인 수사과장을 소개시켜주고, 담당 수사관에게는 과장을 통해 고소인에게 유리하게 수사를 진행할 것을 지시했는데, 이는 명백히 수사공정성을 훼손하는 행위에 해당 한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세 번째 징계사유에 대해 “직원을 질책하게 된 배경과 의도가 결코 정당하지 않았고, 설령 정당한 질책을 하는 경우라도 모욕적인 폭언은 사회통념상 허용될 수 있는 범위를 상당히 벗어났다”며 “징계사유가 존재 한다”고 밝혔다. 김 전 총경은 담당 수사관에게 ‘수사 경력도 없는 나부랭이’ ‘언제부터 우리가 검사 X구멍 닦아줬어’ ‘나대지 말고 잠자코 있어’ ‘다른 곳에 빽 쓰지 마라, 그러면 너 죽어’ 등의 폭언을 한 것으로 조사됐다.

네 번째 징계사유에 대해서는 “부정행위로 체력검정 점수를 취득한 인원이 총 14명으로서 다수이며, 해당 인원들의 소속부서가 모두 경무과 및 청문감사관실 소속이다”며 “집단적 부정행위가 일어난 것을 각 개인의 일탈로 치부하기 어렵고, 조직관리의 문제점이 드러난 것으로 보아야 하는 점을 종합하면 원고가 관리감독책임을 다하지 못한 책임이 인정되고, 공무원으로서 성실의무를 위반한 것에 해당 한다”고 판단했다.

다만 재판부는 김 전 총경이 고소인 측의 청탁을 받았다는 부분, 일부 폭언 부분, 자신의 체력검정 점수를 부정하게 취득했다는 부분 등의 징계는 사실로서 인정하기 어렵다고 봤다.

그러면서도 재판부는 “수 개의 징계사유 중 일부가 인정되지 않더라도 다른 징계사유만으로 이 사건 징계처분이 타당하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김 전 총경의 재량권 일탈·남용 주장에 대해서도 “원고의 의무위반 정도가 결코 가볍다고 볼 수 없다. 수사개입 행위, 불공정 행위, 품위유지의무위반 행위를 장기간 반복해 이는 고의에 의한 것으로 중과실이 인정된다”며 “이 사건 징계는 징계양정 규칙상 처분 가능한 범위에 있는 점 등을 종합하면 징계처분에 재량권 일탈·남용의 위법이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했다.

재판부는 이례적으로 김 전 총경의 행위를 꾸짖기도 했다. 재판부는 “원고의 비위 행위는 국민의 형사사법에 대한 신뢰를 뿌리부터 흔들고, 사법경찰의 수사결과를 지켜보고 있는 수많은 사건관계인들에게 좌절감을 안겨줄 수 있는 매우 노골적인 수사개입행위이자 인사보복행위다”며 “수백명의 경력을 지휘하는 경찰서장의 언행으로는 심히 부적절하다. 원고에게 경찰서장으로서의 직책은 물론 경찰조직의 중간간부로서 실질적 경력지휘자인 총경 계급의 보직을 맡기기는 매우 곤란해 보인다”고 했다.

한편, 김 전 총경은 소송사기 사건과 관련해 지난 2017년 11월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 및 강요죄 혐의로 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다.

수사결과에 따르면, 김 전 총경은 고소인 측에 유리한 방향으로 사건을 처리해 달라는 부탁을 받은 상황에서 담당 수사관 A씨가 불기소 의견으로 사건을 검찰에 송치하자 A씨에게 욕설을 하고 파출소로 전보신청을 하지 않으면 불이익을 줄듯 한 태도를 보인 혐의를 받는다. A씨는 구두로 김 전 총경에게 전보신청을 했고, 김 전 총경은 A씨를 파출소로 발령받게 한 것으로 조사됐다. 검찰은 김 전 총경이 인사 및 징계에 관한 경찰서장의 권한을 남용했고, 동시에 협박으로 의무 없는 일을 했다고 결론 내렸다.

그는 1심에서 징역 8월 및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지만, 지난해 9월 2심에서 무죄 판결을 선고받았다. 2심은 “공소사실을 인정하기 어렵고, 그러한 사실관계가 인정된다고 하더라도 원고의 행위와 A씨의 전보신청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이 사건은 검사가 상고해 상고심이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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