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드파더스 관련 ‘허위 제보’ 보도에 진실로 오해···한부모 심정 세심히 살필 것

우리나라에서는 진실한 사실을 말해도 처벌받을 수 있다. 법조계 말로는 ‘사실적시 명예훼손’이라고 하는데, 이는 케케묵은 논쟁거리다. 폭로나 고발 활동을 하는 언론인들 사이에서는 이 처벌 규정을 없애자는 주장이 우세한 것 같다.

그러나 나는 사실적시 명예훼손 폐지를 선뜻 동의하지 않는 입장이다. 내가 공개를 원하지 않는 사실이 타인을 통해 알려져 내 명예가 훼손된다면 참 힘들 것 같기 때문이다. 내 동의 없이 은밀한 사생활이나 가족사 등이 공개된다고 생각하면 끔찍하다.

그런데 최근 생각을 달리해 본 일이 있다. 양육비 채무자의 신상을 공개했다가 법정에 선 한 활동가의 이야기를 보도하면서다. 배드파더스 활동가로 알려진 구본창씨의 이야기다. 세 편의 기획보도를 포함해 지난해 11월부터 현재까지 총 12건의 기사를 작성했으니, 제법 시간과 노력을 투자했다고 자평한다.

구씨는 양육비 채무자의 얼굴, 이름, 나이, 거주지역 등을 공개하고 양육비 채권 해결을 촉구하고 있다. 양육비는 아동의 생존권과 직결돼 있고, 양육비를 미지급한 부모의 초상권 등 명예보다 아동의 생존권이 더 비교우위에 있다고 주장한다.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는 헌법에서 보장한 ‘표현의 자유’와도 상충한다. 표현의 자유의 핵심은 타인이 듣기 싫어하는 말도 할 수 있는 자유인데, 현행법이 이를 막고 있는 아이러니 한 상황이다. 오로지 공익 목적이 인정되면 처벌을 면할 수는 있지만, 이를 입증하는 것은 어렵고 복잡한 일이다.

법원은 전향적인 판단을 내놓았다. 구씨의 활동에 공익성을 충분히 인정할 수 있다며 무죄를 선고한 것이다. 구씨가 대가성의 돈을 전혀 받지 않았고, 구씨와 양육비해결총연합회(양해연)의 활동이 양육비 관련 여론 형성과 관련 입법에 영향을 끼쳤다는 것을 판단의 근거로 삼았다.

구씨의 변호인단도 무죄 판결에 놀라는 눈치였다. 현행법상 한계를 이유로 ‘선고유예’가 최선이라고 전망했기 때문이다. 무죄 판결에 여성가족부와 행정안전부 등 관계부처 관계자들도 양육비 문제를 전향적으로 재검토하겠다는 취지의 ‘액션’을 했다. 잠잠하던 국가에 구씨와 양해연이 파문을 일으켰다.

양육비 미지급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쏠리는 시점에서, 앞으로의 기사 방향을 고민하는 순간이 다가왔다. 12편의 기사를 작성하는 동안 받았던 제보를 털어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구씨 개인을 공격하는 취지의 내용이었다. 내가 아니더라도 누군가는 ‘논란’으로 만들 수 있었다. 선제적으로 이 문제를 해소하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제보 내용은 구씨가 배드파더스 제보자들로부터 돈을 요구했다거나, 수익사업을 목적으로 이 활동을 시작했다는 것이 주를 이뤘다. 그러나 이 제보들은 아무런 근거가 없는 일방적인 주장에 불과했다. 휴대폰을 통해 들려오는 제보자들의 목소리는 제법 확신에 차 있었으나, 메일로 보내준다던 증거 자료들은 끝내 오지 않았다.

구씨에게 취재 방향과 그 취지를 잘 설명하고 해명을 들었다. 제보자들은 과거 배드파더스 사이트 활동으로 구씨와 감정의 골이 남아있는 사람들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허위사실 유포를 멈춰달라”는 구씨의 말을 인용해 보도했다. 제보 내용들이 허위사실이라는데 방점이 찍힌 기사였다.

그러나 오해의 여지를 제법 남겼던 것 같다. 근거 없는 소문을 기사화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이례적으로 많은 댓글이 달렸다. 진위를 확인할 수 없는 주장이 대부분이었다.

기사의 취지를 이해한다던 양해연 관계자분들도 뒤늦게 우려를 표했다. 근거 없는 허위 주장을 비판한 기사인데, 마치 그 허위 주장이 사실인 것처럼 보도한 상황이 돼버렸다는 것이다. 상처를 받으신 분들도 제법 된다고 했다. 기사를 잘못 읽은 데서 비롯한 오해였다.

처음엔 답답한 심정이었다. ‘펜이 칼이 될 수 있다’는 댓글이 가장 마음을 쑤셨다. 내 펜의 방향은 그쪽이 아닌데... 그러나 이제는 오해가 생기지 않도록 기사를 더 잘 세심하게 작성해야 했다는 생각도 든다. 내 서운함은 양육비 문제로 수 년 또는 수 십년 간 절박해야 했던 한부모들의 마음에 비할 것이 아니었다.

저작권자 © 시사저널e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