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드 리뉴얼·신사업 진출’ 건설사들 체질개선 나서
호반건설, 10대 건설사 진입···중견사 중앙언론사 인수 나서
라돈 검출 논란·건설현장 사망사고 등 안전불감증 여전

/ 사진=연합뉴스

국내·외 건설업황이 악화되고 있는 가운데 2019년 건설사들은 다사다난한 한해를 보냈다. 수주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브랜드를 리뉴얼 하고 새 먹거리를 찾기 위해 신사업에 진출하는 등 대대적인 체질 개선에 나섰다. 중견건설사인 호반이 10대 건설사에 진입하는 등 시공능력평가순위에서도 지각변동이 일어났다. 다만 올해도 라돈 아파트 논란, 건설현장 사망사고 등 건설업계의 안전불감증은 여전했다. 시사저널e는 2019년 건설업계를 달군 주요 이슈를 정리했다.

◇전국에 퍼진 ‘라돈 아파트 공포’

올해 포스코건설, GS건설 등 대기업 건설사가 시공한 아파트에서 기준치를 초과한 라돈이 검출되면서 전국의 입주민들은 라돈 공포에 휩싸였다. 라돈은 폐암을 일으키는 1급 발암물질이지만 무색·무채를 띄고 있어 ‘침묵의 살인자’로 꼽힌다. 국회와 환경부에 따르면 2015년부터 올해까지 전국 16개 단지, 1만8682가구가 라돈신고를 접수했고, 최근 1년 사이 준공된 신축 아파트 10곳 중 6곳에서 라돈이 기준치를 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사회적 문제로 떠오른 라돈 문제는 올해 국정감사에도 등장했다. 이영훈 포스코건설 사장은 건설사 대표로는 이례적으로 국감 증인 신청 명단에 올랐다. 포스코건설을 증인으로 신청한 정의당에 따르면 라돈 검출 피해가 접수된 전국의 아파트 17곳 가운데 11곳을 포스코건설이 시공한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이 사장의 국감 채택은 불발됐고, 김학용 포스코건설 경영지원본부장이 대신 참석했다. 이밖에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도 국감에서 “조만간 라돈 아파트와 관련한 가이드라인을 곧 발표할 것”이라고 밝히는 등 정부도 라돈 검출 아파트 관리대책 마련에 본격적으로 나선 모습이다.

◇중앙언론사 인수 나선 ‘호반·중흥’

건설업계에서는 중견건설사들의 언론사 인수나 지분 투자가 눈에 띄었다. 중흥건설은 헤럴드경제 지분 47.8%를 684억원에 인수해 최대주주로 올라섰고, 호반건설도 서울신문 지분 19.4%를 인수해 3대주주가 됐다. 특히 중흥건설과 호반건설은 지역 언론사에서 중앙 언론사로 언론사업 영역을 확대한 것이다. 호반건설은 이미 KBC광주방송의 지분을 40% 보유한 최대주주이며, 중흥건설은 2017년 광주전남지역 언론사인 남도일보를 인수해 언론사업에 발을 들인 바 있다. 두 건설사들은 언론사업 확대가 사업 다각화의 일환이라는 설명이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건설사들이 언론사를 보유함으로써 본업인 건설업 운영을 수월하게 하려는 의도가 깔려있다는 지적도 있었다.

◇‘항공업부터 장비대여업까지’···새 먹거리 찾는 건설사들

올해는 신사업을 추진하는 건설사가 유독 많았다. 국내외 건설업황이 악화됨에 따라 새로운 먹거리를 찾아 나선 것이다. HDC현대산업개발은 지난달 업계 2위 항공사인 아시아나항공을 인수해 항공업에 뛰어들었다. 또 올해 8월 한솔오크밸리 리조트의 운영사인 한솔개발 경영권을 인수해 레저사업도 본격화할 전망이다. GS건설은 신규 사업에 스마트팜(Smart Farm)을 추가해 농장 사업에 진출했다. 스마트팜은 사물인터넷(IoT), 빅데이터 등의 기술을 이용해 농작물이나 가축이 자랄 수 있도록 환경을 자동으로 제어하는 농장을 말한다. 대우건설은 장비대여 사업에 뛰어들었다. 항만공사를 할 때 사용하는 바지선 같은 선박을 다른 건설사에 대여할 예정이다. 또 대우건설은 최근 국토부로부터 리츠 자산관리회사(AMC) 인가를 받아 부동산 간접투자인 리츠(REITs) 산업에 진출할 채비를 마쳤다.

◇건설업계 브랜드 리뉴얼 바람···아파트 이름 바꾸고 로고 새 단장

올해 건설업계에서는 아파트 브랜드 리뉴얼 바람이 거셌다. 주택 사업 먹거리가 부족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앞으로는 브랜드의 가치가 결정적 역할을 할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시공능력평가 순위 15위권 내 건설사 중 절반이 아파트 브랜드 리뉴얼이나 교체를 진행했다. GS건설의 자회사인 자이S&D는 중소규모의 아파트 단지를 대상으로 한 프리미엄 아파트 브랜드 ‘자이르네’를 런칭했다. 현대건설과 현대엔지니어링은 함께 사용하는 브랜드 ‘힐스테이트’ 의 BI(브랜드 아이덴티티)와 자사 로고를 함께 표기하기로 수정했다.

한화건설도 지난 2001년부터 사용해 오던 ‘꿈에그린’ 브랜드를 버리고 새 주거 브랜드 ‘포레나’ 선보였다. 롯데건설은 ‘롯데캐슬’ 디자인을 업그레이드한 롯데캐슬3.0을 공개했다. 대우건설도 ‘푸르지오’를 16년 만에 리뉴얼했다. 호반건설은 주상복합단지에 적용한 ‘호반 써밋플레이스’를 ‘호반 써밋’으로 리뉴얼하는 한편 아파트 브랜드 ‘베르디움’의 BI 디자인을 변경했다.

◇연초부터 이어진 ‘인재’(人災)···건설업계 안전불감증 여전

올해도 건설사들의 안전불감증은 여전했다. 올 초 현대건설이 시공을 맡은 김포 고촌읍 힐스테이트 리버시티 공사현장에서는 근로자 1명이 추락사, 대우건설의 경기 시흥 건설현장에서는 타설된 콘크리트의 건조와 보호를 위해 숯탄 교체작업을 하던 근로자 2명이 질식사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GS건설이 시공한 경북 안동 경북 북부권 환경에너지종합타운 공사 현장에서는 지상 약 20m 높이에서 콘크리트 타설 작업 중이던 근로자 3명이 추락해 숨졌다.

이어 7월 양천구 목동의 빗물 배수시설 공사 현장에선 깊이 40m 수로에서 현장점검 작업 중이던 현대건설 직원과 협력업체 직원 등 3명이 지상에서 쏟아져 내린 빗물에 휩쓸려 사망했다. 특히 이 사고는 안전불감증으로 인한 전형적인 인재였다. 국지성 호우가 예고됐는데도, 시공업체인 현대건설 측은 별 대비 없이 작업을 강행했고, 사고 직전 두 차례나 수문을 개방하겠다는 신호를 받았는데도, 시공업체는 작업 중단 요청을 하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

이밖에도 8월 서희건설이 시공을 맡은 속초 서희스타힐스더베이 주상복합아파트 공사 현장에서는 15층 높이에서 작업용 승강기가 추락해 근로자 3명이 목숨을 잃었다. 10월엔 현대엔지니어링·한신공영·에스앤아이코퍼레이션·한진중공업·경동건설·혜림건설 등 6개 건설사의 시공 현장에서 총 6명이 사망했다. 이밖에 중소기업들까지 하면 올 한해 건설현장에서는 무수히 많은 근로자들이 목숨을 잃었다.

◇시공순위 지각변동···호반 건설 10대 건설사 진입

올해 건설사 시공능력평가 순위에선 지각변동이 일어났다. 중견건설사인 호반건설이 10대 건설사 반열에 오른 것이다. 호반건설은 지난해 16위에서 올해 10위로 단숨에 올라섰다. 반면 10대 건설사에 줄곧 이름을 올렸던 SK건설은 지난해(9위)보다 두 계단 내려간 11위를 기록하며 굴욕을 맛봤다. 삼성물산은 6년째 1위를 수성했고, 2위 현대건설과 3위 대림산업의 순위는 지난해와 같지만 격차는 크게 줄어 2·3위 간 경쟁이 더욱 치열해졌다. GS건설은 대우건설(5위)을 제치고 4위에 이름을 올렸고, 포스코건설이 현대엔지니어링(7위)을 제치고 6위에 올라섰다. 롯데건설(8위)과 HDC현대산업개발(9위)이 그 뒤를 이었다.

◇해외건설 수주실적 13년 만에 최악

올해 해외 건설 수주액은 13년 만에 최저치로 떨어질 전망이다. 올해 해외 건설 수주액은 지난 19일 기준 190억 달러로(약 21조9735억원)로 집계돼 지난해 동기 268억 달러보다 42% 줄어들었다. 이는 2006년 165억 달러를 수주한 이후 최저치다. 역대 가장 높은 수주액을 기록했던 2010년 716억 달러와 비교하면 4분의 1 수준이다. 미·중 무역분쟁과 유가하락 등의 각종 대외적인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주요 매출처인 중동·아시아 지역의 발주가 감소한 것이 수주액 급감의 원인으로 꼽힌다.

수주실적만 줄어든 것이 아니다. 올해 한국 건설업체들이 진출한 국가 수는 작년 106개에서 99개로 줄었고, 진출업체 수도 386개에서 370개로 감소했다. 최초로 외국에 진출한 업체 수도 작년 50개에서 36개로 줄었다. 줄곧 해외건설 활성화를 추진해온 정부로서는 저조한 성적표를 받아든 셈이다. 문제는 내년에도 실적 부진 기조가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업계에서는 유가 안정 및 경제성장을 위한 인프라 수요 증가 등 내년 해외 발주환경은 개선될 것으로 예상되지만 중국 등 경쟁국의 공격적인 수주경쟁으로 인해 수익성을 확보할 수 있는 프로젝트 수주는 많지 않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분양가 상한제로 비상 걸린 건설사들···물량 밀어내기 혈안

지난 8월 정부가 민간 택지 분양에도 분양가 상한제를 적용하겠다고 발표 함에 따라 분양을 앞둔 건설사들은 비상이 걸렸다. 분양가 상한제 적용 시 분양가가 시세의 70~80%로 낮아지는데 그러면 건설사들의 수익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일반 분양 비중이 높은 재건축·재개발 지역 시공을 많이 따낸 건설사일수록 ‘승자의 저주’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왔다. 이에 따라 건설사들은 수익성 악화를 우려해 물량 밀어내기에 나섰다. 정부가 분양가 상한제 시행을 내년 4월까지 유예하면서 이 같은 분위기는 내년까지 이어질 전망이다.

◇건설사 전쟁터 된 ‘한남3구역’···또 다시 수주과열

올해 재건축·재개발 등 정비사업장은 그야말로 ‘총성 없는 전쟁터’였다. 일감 가뭄에 허덕이는 건설사들은 시공사로 선정되기 위해 혈투를 벌였다. 경쟁사에 대한 비방전부터 법 테두리를 넘나드는 공약까지 이어졌다. 올해 시공사 선정에 나선 정비사업장 중 단연 화제가 높은 곳은 단군 이래 최대 재개발 사업장이라 불린 ‘한남3구역’이다. 한남3구역에선 시공사 선정 과정에서 비방전과 금품제공 의혹 등 눈살을 찌푸리는 상황이 재현됐다.

입찰에 참여한 GS건설, 대림산업, 현대건설 3개사는 2조원에 달하는 한남3구역 시공권을 확보하기 위해 사업비와 이주비 등에 대한 무이자 지원, 분양가 보장, 임대주택 제로 등 파격적인 조건들을 제안하며 과열 경쟁을 벌였다. 이에 국토부와 서울시가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도시정비법) 위반 소지가 있다며 제동을 걸었고, 결국 한남3구역 조합은 기존 입찰을 무효하고 재입찰을 진행하기로 결정했다. 정부가 본보기를 보여주면서 전국의 정비사업장과 건설사들의 수주경쟁은 소강상태에 빠져들었다.

◇정부 규제·해외수주 부진 여파···건설사들 인원감축 뚜렷

정부의 고강도 부동산 규제와 해외수주 부진 등의 여파로 건설사들은 대규모 인원감축에 나섰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올해 3분기 기준 5대 건설사의 직원 수(기간제 근로자 포함)는 3만668명으로, 지난해 3분기(3만1858명)보다 1190명(3.7%) 줄었다. 인력을 가장 많이 줄인 곳은 대림산업이다. 대림산업의 직원수는 한 해 동안 528명이 감소했다. 이어 ▲현대건설 313명 ▲GS건설 196명 ▲삼성물산 134명 ▲롯데건설 115명 ▲HDC현대산업개발 41명 ▲대우건설 15명 순으로 인원 감축이 이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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