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 19주년 토크 콘서트 열려···“국제 연대 성과, 위안부 강제동원 전쟁범죄로 기소 안한 한계도”

22일 동북아역사재단 주최로 ‘2000년 여성국제법정 19주년 기념 토크 콘서트’가 열렸다. / 사진=이준영 기자
22일 동북아역사재단 주최로 ‘2000년 여성국제법정 19주년 기념 토크 콘서트’가 열렸다. / 사진=이준영 기자

지난 2000년 12월 7일부터 5일간 일본 도쿄에서는 ‘일본군 성노예 전범 여성국제법정(이하 2000년 법정)’이 열렸다. 일본군의 아시아지역 전시 성폭력 문제를 국제사회에 제기한 시민법정이었다.

2000년 법정에는 남한과 북한, 중국, 일본, 필리핀 등 10개국에서 참여했다. 법적 구속력이 없는 민간 법정이었지만 여러 국가에서 연대해 전시에 행해졌던 여성인권 유린 문제를 전 세계에 알리고 함께 대응해 나가는 시작이 됐다. 이 법정은 증거와 당시 국제법 기반 하에 진행됐다.

특히 이 법정에서 당시 개인 기소에 ‘히로히토’ 일왕을 포함시켰다. 법정은 일왕 히로히토에게 유죄를 선언했다. 

2000년 법정이 열린 지 19년 만인 22일 동북아역사재단 주최로 ‘2000년 여성국제법정 19주년 기념 토크 콘서트’가 열렸다. 이날 콘서트에서는 2000년 여성국제법정이 가지는 의미와 아직도 해결되지 못한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해결을 위한 과제 등이 논의됐다.

당시 2000년 법정은 히로히토 일왕에 대해 관련 범죄를 알고 있었거나 알았어야 함에도 그러지 못했다는 점에서 유죄판결을 했다. 도조 히데키 등 9명의 고위관료 및 장성들에게도 유죄 판결을 내렸다. 일본 정부에는 피해자 배상을 권고했다.

당시 법정에서 한국위원회 부대표를 맡았던 정진성 서울대 명예교수는 이날 토크 콘서트에서 “이 법정은 아직 해결되지 못한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범죄성에 대해 보다 체계적인 국제법적 판단을 시도한 장이었다. 민간법정의 법적 효력에 대한 이견에도 불구하고 2000년 법정은 법적 판결의 가치와 도덕적 강제성을 인정받고 있다”며 “이미 이 법정의 판결은 판례로 이용되기 시작했다. 동시에 이 법정은 지금까지 벌여 온 국제 운동을 종합한 장이기도 했다. 75명의 피해자를 포함한 세계 각국 시민들이 참석했다”고 밝혔다.

특히 정 교수는 “주목해야 할 부분은 이 법정의 효과로서 이뤄진 국내운동의 발전이다. 법정 기소를 위해 많은 국제법학자와 역사학자가 새롭게 운동에 합류했다”며 “시민운동뿐 아니라 대학생 사회로 운동이 확산된 것은 매우 중요한 결과다. 북한과의 공동기소는 시민사회 차원에서 이룬 남북 화합의 중대한 결실이었다”고 덧붙였다.

2000년 여성국제법정 준비위원회 국제관계 담당을 맡았던 나카하라 미치코 와세다대 명예교수는 “히로히토 일왕은 2차대전 이후 유일한 통치자였다. 전쟁 당시 육·해·공군의 총사령관은 일왕이었다. 그러나 이에 대해 일왕이 전혀 전쟁 책임을 지지 않은 것이 일본의 근대사다”며 “일본 사회는 지금도 일왕에 대한 비판은 금기시 되고 있다. 그렇기에 당시 2000년 국제법정을 준비하면서 위험했다. 일왕을 전쟁 범죄자로 심판 받게 하는 것이었기에 일본에서는 위험한 법정이었다”고 당시 상황을 밝혔다.

정 교수는 2000년 법정의 한계에 관해서도 밝혔다. 그는 “이 법정은 개인의 법적 책임을 인도주의에 반한 범죄로만 기소했다는 한계를 보였다. 2000년 법정의 판사들은 위안부 강제동원행위를 전쟁범죄로는 기소하기 않았다”며 “이에 남북한과 대만으로부터의 위안부 강제동원을 전쟁범죄로 기소할 경우 생길 문제의 소지를 없앴다. 또 식민지배에 대한 국제법적 공백을 뛰어넘는 시도를 포기한 것”이라고 말했다.

나카하라 미치코 교수도 “2000년 법정에서 식민지배의 불법성에 대한 심판을 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2000년 법정의 한국 실무책임자였던 양미강 당시 정대협 총무는 “2020년에는 2000년 법정의 성과를 통해 국제사회 전문가와 함께 일본 정부와 투쟁을 해 나가야 한다. 또 5.18 민주화운동과 한국전쟁 과정에서의 여성 성폭력 문제에 대해 연구를 이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이나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2000년 법정은 이미 국가 간 협정으로 마무리됐다는 정치적 이유에서 해결되지 않았던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를 전면 재검토했다. 여성과 시민의 힘으로 새롭게 역사를 쓰는 작업이었다”며 “엄청난 자료와 증거, 역사 사료, 당사자의 증언이 결합된 시민법정이었다”고 말했다.

도시환 동북아역사재단 일본군‘위안부’연구센터장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불법적 식민지배 피해 하에서 불법적으로 강제 동원된 문제다”며 “2015년 한국과 일본 간 위안부 합의 이후 일본은 위안부 문제가 최종적으로 해결됐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에 국제사회는 동의하지 않는다. 2005년 유엔총회에서 만장일치로 채택된 피해자권리 기본원칙상의 피해자중심주의가 배제된 국가 간 합의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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