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매출 비중 높은 한국 대기업들에게 불리한 판 짜이고 있어
수소차 등 한국 기업만의 강점 지닌 '경쟁력 있는 제품' 확보가 대안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왼쪽)과 정의선 현대차 수석부회장. / 사진=연합뉴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왼쪽)과 정의선 현대차 수석부회장. / 사진=연합뉴스

세계적으로 각국마다 무역에서 자국 보호주의를 앞세우고 수입국을 배척하는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다. 사실상 수출로 먹고사는 우리에겐 달갑지 않은 흐름인데, 특히 이미 글로벌 기업이 돼 해외 시장에서 선전하는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의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자국 보호주의 분위기가 본격화된 것은 미국 트럼프 대통령 당선 이후라 할 수 있다. 한 증권사 임원은 “트럼프 대통령의 행보를 보면 사실상 자유무역에서 자국 보호 무역주의로의 전환을 시도하는 것”이라며 “문제는 이런 흐름이 미국에서 그치지 않고 전세계적으로 확산되는 조짐을 보인다는 것”이라고 전했다.

한국 기업에 대한 일본 아베 정부의 무역보복 조치도 큰 의미에서 보면 반(反)세계화 바람의 일환으로 해석된다. 물론 양국 간 정치적 갈등이라는 배경이 있지만, 자유무역 분위기가 강했던 과거였다면 무역보복 카드는 아예 꺼내기도 힘들었을 것이란 분석이다.

이 같은 흐름은 한국 경제를 이끄는 두 견인차 삼성전자와 현대차에겐 특히 달갑지 않은 현상이다. 한국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삼성전자의 해외 매출 비중은 86%, 현대자동차와 기아자동차는 각각 62%, 66%로 파악됐다. 한국 기업이지만 이미 국적을 넘어선 글로벌 기업으로 자리 잡았다. 한국 내수시장 자체만으론 더 클 수가 없는 만큼 경쟁력을 키워 해외로 뻗어나갈 수밖에 없었고, 그 결과 지금의 삼성전자·현대차가 됐다.

우리에게 수출 효자 기업은 외국 기업 입장에선 위협적인 존재다. 그렇다 보니 두 기업은 숙명적으로 자국 보호 무역 조치의 주 표적이 될 수밖에 없다. 트럼프 정부는 여전히 한국차에 대한 관세 부과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삼성전자는 애플 등 미국 경쟁 업체들에게 불편한 존재다. 일본의 무역보복 조치도 사실상 삼성전자를 겨냥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국제정세가 당분간 이어질 것이라고 보고 있다. 이에 두 기업이 근본적인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데 그중 하나가 '현지화'다. 주요 시장에 생산기지를 지음으로써 현지 정부와 관계도 개선하고 각종 혜택도 얻을 수 있는 장점이 있다. 한 4대 그룹 인사는 “해외에 공장을 지으면 노사분규도 없고 온갖 세제 혜택을 누릴 수 있다”고 전했다.

삼성전자의 경우 이번 일본 수출규제 사태 이후 미국에 진출할 가능성을 두고 끊임없이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일본의 규제 대상에서 비켜남과 동시에 미국 트럼프 정부의 관세도 피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현대차의 경우 인도네시아를 교두보로 삼아 동남아 생산기지 구축에 나섰다.

하지만 이 같은 현지화 방식도 반세계화를 넘어설 근본적 대안은 되기 힘들다는 지적이 나온다. 결국엔 어떤 식으로든 자국 산업을 보호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 예로 팀 쿡 애플 CEO가 “무관세인 삼성전자와 경쟁하기 힘들다”고 토로하자 트럼프 대통령이 생각해보겠다고 말한 것을 들 수 있다. 애플은 아이폰을 중국에서 만들기 때문에 향후 미국이 중국 제품에 관세를 부과하면 곤란한 상황을 맞게 된다. 삼성전자는 이에 해당하지 않는다.

따라서 어쩔 수 없이 선택할 수밖에 없는 '경쟁력 있는 제품', 혹은 꼭 필요한데 한국 기업이 아니면 대안이 없는 제품이나 서비스를 개발하는 것이 근본적 해결책이 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물론 그저 한국 기업만 만들 수 있다는 점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꼭 써야 하는데 한국기업만 만들어내는 제품이나 서비스가 필요하다. IT(정보기술) 제품을 만들기 위해선 어쩔 수 없이 사야 하는 삼성전자의 D램이 그 예가 될 수 있다. 세계는 한국과 일본의 외교전쟁엔 별 관심 없지만 삼성전자 반도체 생산이 타격을 입는 것에는 관심이 많다. 결국 기업 경쟁력이 국력인 시대가 되어 있는 것이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전 세계적으로 민족주의·반세계화 분위기가 강해지고 있고, 이는 어쩔 수 없는 흐름”이라며 “여기에 근본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선 현대차의 수소차 등 한국 기업 제품이 아니면 대안이 없는 상품을 많이 확보해 놓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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