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들 대법원 강제동원 배상 판결 두고 의견 분분
“강제동원 문제 ‘진상규명’ 통해 양국 국민 공감대 확산해야” 의견도

일제 강제징용 피해 생존자인 이춘식 할아버지가 강제징용 손해배상청구 소송 재상고심 판결을 위한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열린 2018년 10월 30일 오후 서울 서초구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하던 중 미소짓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일제 강제징용 피해 생존자인 이춘식 할아버지가 강제징용 손해배상청구 소송 재상고심 판결을 위한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열린 2018년 10월 30일 오후 서울 서초구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하던 중 미소짓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한국 대법원의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 판결 이후 일본이 보복성 수출 규제 조치에 나섰고 한국도 대응을 검토하고 있다. 한일 양국 갈등이 강대 강 상황으로 가면서 한일 관계에 대한 해법 찾기가 주목받고 있다.

정부는 지난 6월 19일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 판결에 대한 해결 방안으로 한일 양국 기업이 자발적으로 자금을 출연해 피해자들에게 배상하자고 일본에 제안했다. 그러나 일본 아베 정권은 이를 거부했다.

이후 일본 정부는 7월 4일 플루오린 폴리이미드, 고순도 불화수소 등 반도체 소재 3개 품목의 수출 규제에 나섰다. 이어 지난 2일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 주재로 각의(국무회의)를 열어 한국을 수출절차 간소화 혜택을 인정하는 백색국가(화이트 리스트) 명단에서 제외하는 수출무역관리령 개정안을 의결했다.

한국 정부도 이에 대응해 일본을 백색국가 수출 우대국에서 제외하는 방안, WTO(국제무역기구)에 제소,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지소미아·GSOMIA) 폐기 등에 대해 검토하고 있다.

일본이 우리나라에 수출하는 반도체 소재를 규제한 지 한 달여 만에 1건의 수출을 승인했고 정부가 일본을 백색국가에서 제외하는 방안을 미뤘지만 산업부 당국자는 한일 간 경제 전쟁이 유화국면이 아니라고 밝혔다.

이 상황에서 외교 및 한일 관계 전문가들은 한일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여러 방안들을 제시했다.

우선 갈등으로 치닫는 한일 관계와 직접적 원인이 된 강제동원 판결에 대해 한국 정부가 새 대책을 내놔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다.

이원덕 국민대 국제학부 교수는 지난 8일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에서 열린 한일 관계 해법 관련 포럼에서 정부와 강제동원 피해자가 일본 기업에 배상을 포기하고 한국 정부가 피해자들을 구제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다만 식민지배 불법성과 이에 대한 일본의 사죄와 반성을 요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정부가 일본에 대해 식민지배 불법 강점과 일본에 사죄와 반성을 요구해야 한다. 그리고 화해와 관용의 정신으로 대일 배상과 보상 등 물질적 요구는 영원히 포기해야한다”며 “모든 식민지배와 연관된 피해자의 구제 문제는 한국 정부의 책임 아래 수행해야한다”고 말했다.

이어 “다만 이 방식은 정부가 사전에 피해자들과 사전 조율을 반드시 해야 한다”며 “이러한 창의적 발상에 의해 한일 관계의 갈등 국면을 극적으로 전환시키는 해법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이 교수는 또 다른 해법으로 국제사법재판소(ICJ) 공동제소 방법도 제안했다. 이 교수는 “국제사법재판소에 공동제소하면 최종 결론이 나올 때까지 3~4년 이상의 시간이 걸린다. 이는 일종의 한일 간 전쟁을 휴전시킬 수 있는 효과가 있다”며 “양국의 최고법원 판결이 다르므로 제 3의 국제사법기관의 판결로 최종 결론 내는 것은 평화적 분쟁 해결방식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반면 정부가 한국 대법원의 판결을 무력화하거나 부정하는 방향의 해결책을 제시해선 안 된다는 의견도 있다.

도시환 동북아역사재단 일본군‘위안부’연구센터장은 시사저널e와의 지난 9일 통화에서 “정부가 강제동원 피해자들을 일본 기업 대신 구제하는 방식은 한국 대법원의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 판결을 부정하는 것이다. 이 방식은 문제의 원인을 우리 내부의 문제로 돌리는 것으로 우리에게 문제가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라며 “2005년 12월 유엔총회 결의에서 만장일치로 ‘피해자 권리 기본원칙’을 채택했다. 이는 국가 간 우호를 위해 개인의 희생을 강요해서는 안 되며 피해자 중심 접근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라는 것이다. 한국 대법원 판결은 2005년 피해자중심주의에 입각한 사법 판단으로서 국제인권법에 충실했다”고 말했다.

도 센터장은 국제사법재판소 제소에 대해서는 “중재위, 국제사법재판소 모두 사법적 해결로 한국 대법원 판결을 흔들겠다는 일본의 의도에 동의하는 것”이라며 “일본은 2011년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는 재교섭 조차 거부했다”며 “2011년, 2012년 헌재와 대법원 판결은 모두 2005년 UN총회 결의인 피해자권리 기본원칙상 피해자중심주의에 입각한 것으로 이를 부정하는 것은 일본의 정책 기조에 따른 것이다”고 했다.

도 센터장은 “일본 아베 정권이 제일 부담스러워 하는 것은 WTO제소다. 일본은 2014년 위안부 문제를 논의하는 원포인트 회담 자리에서 후쿠시마 방사능 수산물 수입을 규제하고 있는 한국에 철폐를 요구했다. 일본은 기어이 이 문제를 WTO에 제소했으나 올해 4월 최종 패소했다”며 “한국 정부는 일본의 부당한 수출 규제 조치에 대해 WTO 제소에 나서야 한다. 일본의 수출 규제 강화 조치는 GATT(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 협정) 위반이다”고 말했다.

이어 “일본의 국제법 위반조치에 상응한 긴급 대응조치로 관세 인상, 일본산 상품 또는 서비스에 대한 시장 접근 제한, 대일본 수출제한 등의 대응조치도 가능하다”고 했다.

김민석 더불어민주당 일본경제침략대책특별위원회 부위원장도 “정부가 한국 대법원 판결을 무력화하는 방향의 타협점을 제시하면 안 된다”고 밝혔다.

최철영 대구대 법학부 교수는 한일 갈등이 출구를 찾는 방향으로 갈 것으로 예상했다.

최 교수는 “한일 중간에 미국도 있고 갈등은 어느 일방의 승리로 끝나지 않는다. 그렇기에 양국 정부 모두 출구를 고민하고 있을 것”이라며 “앞으로 양상은 갈등 확산보다는 축소 방향으로 갈 수 있다”고 말했다.

최 교수는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 판결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한일 양국의 신뢰성을 가진 기관들이 만나서 강제동원 문제의 본질 등에 대해 진상을 규명하고 이 과정을 통해 양국 국민들의 공감대를 확산해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며 “시간이 걸리지만 이러한 방법을 통해서야 양국 정부가 해법을 찾아야 한다. 한국 정부가 강제동원 피해자들을 대신 구제하는 방안은 본질적인 해법이 아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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