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자연의 경이로움을 이야기하는 작가
  • 하은정 우먼센스에디터 / 글 박사(북 칼럼니스트)(brandcontents@sisajournal-e.com)
  • 승인 2019.05.12 11: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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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메리 올리버는 읽고, 쓰고, 숲을 걷는다. 언제 어디서나 음악에 가까운 언어로 자연을 그린다.
사진=김정선
사진=김정선

 

지인이 3:1의 경쟁을 뚫고 텃밭에 당첨됐다며 기쁜 소식을 알렸다. 텃밭 이야기에 먼저 떠오른 것은 상추, 가지, 호박, 오이였고, 그다음에야 나무 그늘, 흙냄새, 포슬포슬한 흙이 물에 젖어들 때 나는 작고 보드라운 소리, 새잎의 연한 초록빛 같은 것이 떠올랐다. 반성했다.

나는 수많은 어리석은 인간이 그렇듯이 자연을 슈퍼마켓처럼 생각했구나. 돈이든 노력이든 지불하면 뭔가를 당연히 집어 올 수 있는 그런 곳.

메리 올리버는 자신을 자연에 대한 ‘리포터 시인’이라 불렀다. 매일 숲과 바닷가, 들판을 산책하며 보고 들은 것을 시로 옮겼다고. 그는 시 ‘상상할 수 있니?’에서 이렇게 말한다. “예를 들어, 나무들이 무얼 하는지/ 번개 폭풍이 휘몰아칠 때나/ 여름밤 물기를 머금은 어둠 속에서나/ 겨울의 흰 그물 아래서만이 아니라/ 지금, 그리고 지금, 그리고 지금-언제든/우리가 보고 있지 않을 때./ 물론 넌 상상할 수 없지.” 그리고 그는 우리가 상상하지 못했던 바로 그 부분을 조곤조곤 이야기해준다.

상상할 수 있으면, 볼 수도 있게 된다. 그렇게 우리는 시를 통해 자연을 알게 된다.

그의 이력을 요약하면 길지 않다. 1935년에 미국 오하이오에서 태어나 14세 때부터 시를 쓰기 시작했다.

대학을 다니고 런던 모바일 극장에서 아이들을 위한 연극 대본을 쓰던 그는 1960년대에 “그 땅과 물의 기묘한 만남, 지중해의 빛, 놀랍도록 작은 배로 억척스럽고 힘들게 일해 먹고사는 어부들, 많은 예술가와 작가”에 매혹돼 프로빈스타운에 정착한다. 그 후 그의 이력은 화려하면서도 단조롭다. 수상, 시집 출간, 펠로십 선정, 또 수상, 또 시집 출간…. 날마다 자연 속을 산책하고 시를 썼던 그는 “단연코 미국 최고의 베스트셀러 시인”이라는 찬사가 어색하지 않은 영광을 누렸지만, 삶은 단순 소박했다.

그가 세상의 인정을 쉽고 빠르게 얻었다는 말은 아니다.

28세에 첫 시집을 낸 그가 퓰리처상을 받은 것은 40대 후반이었다. 그의 대표작으로 수많은 이에게 즐겨 암송되는 ‘기러기’가 발표된 것은 1986년, 50세가 넘어서다. 삶에 대한 혜안으로 가득한 이 시는 2009년조 바이든 미국 부통령이 9.11 테러 희생자 추모식에서 낭독하기도 했다.

우리나라에 메리 올리버의 이름이 본격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소설가 김연수가 이 시의 한 구절인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을 제목으로 삼은 장편소설을 출간한 2007년 이후다. “거기 서서 매 순간을, 새들이나 비어 있음을,/ 천천히 소리 없이 늘어가는 검은 나이테를,/ 마음에 바람이 불지 않는 한/ 아무것도 달라질 게 없음을/ 사랑하는 나무 한 그루.”

나는 어쩔 수 없이 그가 산책하는 자연의 풍경보다 그의 노트가 궁금하다. 몸에서 떼어놓지 않고 들고 다니며 산책하는 도중 서서 메모를 남기는 노트. 펜이 없어 당황한 경험을 한 이후, 숲의 나무들 사이에 숨겨놓곤 했다는 펜도 궁금하다. 펜에서 가지가 자라고 아주 작은 잎들이 조랑조랑 달리는 것을 상상한다. 사실 어떻게 보면 그가 낸 시집들이 바로 그 나뭇잎들이리라. 그가 나무 한 그루이듯이.

메리 올리버는 프로빈스타운에서 함께 살았던 평생의 반려자, 몰리 멀론 쿡을 2005년에 먼저 보내고, 혼자 남아 10여 년을 더 시를 쓰며 지내다 올해, 2019년 1월에 83세의 나이로 타계했다.

그는 거의 매년 시집을 내놓는 부지런한 시인, 그리고 자연의 리포터로 평생을 살았다. 자연의 소리에 귀기울이고 보고 들은 것을 쉼 없이 옮기던 그가 드디어 자연의 품으로 들어가던 날은 또 얼마나 아름다웠을 것인가. “바람 없는 날 단풍나무들이 천개를 길게 드리우고 푸른 하늘이 끝도 없이 펼쳐져 있을 때, 어느 향기로운 들판에서 불기 시작한 지 한 시간도 안 된바람이 살그머니 우리를 스치고 지나갈 때, 우리가 하는 건 무엇인가? 너그러운 땅에 누워 편안히 쉬는 것이다.”(<완벽한 날들>) 그의 명복을 빈다.

 

◆글쓴이 박사

문화 칼럼니스트. 현재 SBS 라디오 <책하고 놀자>, 경북교통방송의 <스튜디오1035>에서 책을 소개하는 중이며, 매달 북 낭독회 ‘책 듣는 밤’을 진행하고 있다. 저서로는 <도시수집가> <나에게 여행을> <여행자의 로망 백서> <나의 빈칸 책> 등이 있다.

 

우먼센스 2019년 5월호

https://www.smlounge.co.kr/woman

에디터 하은정 박사(북 칼럼니스트) 사진 김정선

 

하은정 우먼센스에디터 / 글 박사(북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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