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위·검찰 출입 막고 전산자료 삭제···서버 통째로 빼돌리기도
“공권력 무시하는 분위기 팽배···봐주기 없는 엄정한 수사 필요”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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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조5000억원대 분식회계 의혹으로 검찰 수사를 받는 삼성바이오로직스(삼성바이오)가 공용서버 저장장치 등 핵심증거물을 공장 마룻바닥에 숨긴 것으로 드러났다.

검찰은 삼성바이오 안아무개 대리를 증거인멸 혐의로 지난 8일 구속하고, 증거인멸 교사 등 혐의를 적용해 삼성전자 임원들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한 상태다. 분식회계 수사가 증거인멸 수사와 병행해 이뤄지는 모양새다.

그런데 삼성그룹의 조직적인 증거인멸 등 불법행위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삼성은 과거부터 공정거래위원회의 조사와 검찰 수사 시 법과 공권력을 무시하는 무법자적인 태도를 보여왔다.

◇공정위 조사관 출입 막고 몸싸움까지···대응방안 문건도 만들어

공정위는 지난 1998년 사원들에게 삼성자동차 판매를 부당하게 지원했다는 이유로 삼성그룹 계열 4개사에 총 1억1190만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계열사 제품 판매를 높이기 위해 차량 대금 일부를 회사 지원하는 불공정거래행위에 대한 조처였다. 이 과정에서 삼성자동차 직원들이 공정위 직원들과 몸싸움을 벌이고 증거를 빼앗아 파기하는 일이 벌어졌다. 삼성자동차는 관련 자료 제출을 거부한 것으로도 알려졌다. 결국 삼성자동차 법인은 1억원을, 몸싸움에 관계된 직원 2명은 각 1000만원의 과태료를 부과받았다.

▲2000년 4차 삼성기업집단 부당내부거래 검사 당시 삼성카드 직원들이 공정위 조사관들의 출입을 막고 조사를 방해한 사례(직원 2명에게 1000만원 과태료 부과) ▲2004년 삼성생명이 금융감독원 정기검사를 피하기 위해 내부자료 6만여건을 파기하고, 주전산기 작동을 중지시킨 사례(과태료 1000만원 및 임원 1명 정직 처분) ▲2005년 삼성토탈에 대한 부당공동행위 조사과정에서 직원들이 공정위 조사관에게 증거자료를 빼앗는 사례(임원 1인 5000만원 과태료, 직원 3명 각 4500만원 과태료)도 있었다.

삼성전자는 2005년, 2008년, 2012년 공정위 조사를 방해했다가 각각 5000만원, 4000만원, 4억원의 과태료를 부과받기도 했다. 2012년 과태료는 2011년 3월 휴대전화 가격문제를 조사하기 위해 수원 사업장을 방문한 공정위 조사관의 출입을 방해한 뒤, 전산자료를 파기했다는 이유로 부과됐다. 당시 삼성 측 직원들은 “대통령도 사전 약속이 안 되면 못 들어간다. 조사 대상 직원이 출장 중이다”며 출입을 방해했다. 입구에서 시간이 지체될 동안 전산자료는 폐기됐다.

삼성그룹의 노골적인 내부 자료 폐기를 의심할만한 사례는 또 있었다. 2006년 10월 국회 재정경제위원회의 재정경제부 국정감사에서 1999월 4월 19일 작성된 ‘공정거래 조사 관련 문제점 및 대응방안’이라는 문건이 공개된 것이다.

해당 문건에는 삼성전자가 1997년부터 1999년 3월까지 구조본부에 1226억원, 중앙일보에 323억원, 에버랜드에 221억원, 삼성SDS에 131억원, 제일기획에 10억원, 호텔신라에 11억원, 삼성시계에 58억원, 보광에 6억원 등 총 1986억원의 돈을 부당하게 지원한 내역이 담겨있었다. 구조본부는 부당지원 사실이 공정위 조사 과정에 드러날 것을 대비해 해당 계열사에 공문 및 지원결정 보고서를 폐기하고, 관련 자료를 은폐하라고 지시한 것으로 나타나 논란이 됐다.

◇검찰 수사에 물증 빼돌리고 “증거 안 돼” 주장도ㆍ“엄정한 사법처리 필요”

삼성그룹에서 법무팀장을 지낸 김용철 변호사가 2007년 증언한 ‘비밀금고’가 검찰 수사과정에서 발견되지 않은 것도, 조직적 증거인멸 행위라는 지적이 있었다. 당시 김 변호사는 삼성본관 27층 경영지원팀 가운데 극소수만이 접근 가능한 비밀금고가 있고 그 안에 비자금 명목으로 각종 유가증권 및 의류권, 상품권 등이 들어있다고 주장했다. 이 금고는 2003년 검찰의 불법대선자금 수사 당시 삼성그룹 김인주 전략기획실 사장도 존재를 시인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검찰은 압수수색과정에서 이 비밀금고를 발견하지 못했다.

2008년 삼성그룹 비리 의혹을 수사한 조준웅 특별검사팀은 1998년부터 2002년 사이 삼성화재 미지급보험금을 지점에 내려준 것처럼 회계장부를 조작하고, 실제로는 차명계좌를 이용해 9억8000만원의 비자금을 조성한 사실을 적발하면서 전산 책임자인 전무가 회계자료를 전산에서 삭제한 사실을 밝혀내기도 했다. 해당 전무는 증거인멸과 특검법상 직무수행방해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삼성그룹의 증거인멸 행위는 최근에도 이어졌다. 지난해 2월 이명박 전 대통령의 뇌물수수 혐의를 수사하던 검찰이 삼성전자 본사를 압수수색하자 삼성 측 직원이 컴퓨터 외장하드·하드디스크·USB 등 저장매체 7개를 지하주차장에 있는 자신의 차에 은닉한 것이다. 검찰은 인사팀 직원들이 사내 메신저로 이야기를 주고받은 흔적을 발견하고 가까스로 저장매체를 확보할 수 있었다. 이후 이 저장매체에서 나온 문건 등은 삼성전자서비스 노조와해 의혹 재판에서 증거물로 제출됐다. 그러나 삼성 측은 ‘적법한 증거수집 절차에 따르지 않았다’고 주장하며 증거능력을 문제 삼고 있다.

최근 삼성바이오의 ‘공장바닥 증거인멸’에 앞서 삼성바이오 자회사인 삼성바이오에피스(삼성에피스)의 불법행위도 검찰 수사를 통해 적발됐다. 검찰은 지난 3일 삼성에피스 팀장급 직원의 자택에서 공영서버를 압수했다. 이 서버는 삼성에피스 재경팀이 사용하던 대용량 공용 서버로 주요 문서를 작업하거나 저장하는 용도인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이 서버가 금융당국의 삼성바이오에 대한 감리가 마무리됐던 지난해 5~6월쯤 은닉된 것으로 보고 있다.

삼성이 반복적으로 불법행위를 하는 배경에는 공권력을 무시하는 인식이 내부적으로 팽배해 있고 총수 일가의 이익을 우선 시하는 후진적 기업문화에서 원인을 찾아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박찬운 한양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교수는 “삼성이 국가경제를 볼모로 치외법권적 특권을 누려온 역사가 있고 ‘어떠한 공권력도 삼성을 함부로 건드릴 수 없다’라는 의식이 삼성맨들 사이에서 뿌리 깊게 자리잡고 있다”면서 “이번 수사가 검찰의 거악척결이라는 시금석이 될 수 있도록 정치적 타협이 없는 수사가 이뤄져야 한다”라고 말했다.

김은정 참여연대 경제노동팀장도 “총수 일가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범죄행위도 용인되는 회사 분위기와 제대로 된 진상규명 없이 실무 직원이 책임을 지는 선에서 마무리되는 사례가 누적된 결과라고 본다”라며 “검찰이 ‘그룹차원의 증거인멸 지시가 있었다’라는 증언을 확보한 만큼 엄정한 사법처리를 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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