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 정부, 산업안전보건법 하위 법령 개정안 입법예고···도급승인·원청 책임 강화 적용되는 범위 ‘협소’
작업중지 해제심의위에 노조 추천 전문가 배제도 지적···경영계는 “작업중지 해제 결정 지연” 우려

지난 12월 19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태안화력 비정규직 청년노동자 고(故) 김용균 3차 촛불 추모제 '청년 추모의 날'에서 참석자들이 손팻말과 국화꽃을 들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지난해 12월 19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태안화력 비정규직 청년노동자 고(故) 김용균 3차 촛불 추모제 '청년 추모의 날'에서 참석자들이 손팻말과 국화꽃을 들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정부가 발표한 산업안전보건법(산안법) ‘하위 법령’ 개정안이 위험의 외주화를 막겠다는 당초 산안법 개정 취지를 후퇴시켰다는 지적이 나왔다. 도급승인 대상과 원청 책임 강화가 적용되는 건설기계 범위가 지나치게 협소하다는 것이다. 중대재해 발생 사업장의 작업중지를 해제하는 심의위원회에 노조 추천 전문가가 배제됐다는 지적도 있다. 반면 경영계는 정부의 산안법 하위 법령으로 기업 경영의 어려움이 생길 수 있다고 반발했다.

22일 고용노동부는 산안법 시행령과 시행규칙 등 하위법령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이는 지난 1월 15일 이른바 '김용균법'으로 불린 산안법 전부개정에 따른 후속 조치다. 당시 산안법 개정안은 유해·위험작업의 도급 전면금지, 사업장 내 근로자 안전에 대한 원청업체 책임 확대, 고용노동부 장관의 작업중지 명령권 신설, 안전 및 보건조치를 위반한 사업주에 대한 처벌 강화 등을 담았다. 고(故) 김용균 씨는 지난해 12월 11일 충남 태안화력발전소에서 하청 비정규직으로 일하다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다.

이날 고용부가 발표한 산안법 하위법령 개정안 내용은 다음과 같다. ▲‘농도 1% 이상의 황산·불산·질산·염산 취급 설비를 개조·분해·해체·철거하는 작업’을 사내 도급에 승인이 필요한 작업으로 규정 ▲설치·해체 과정에서 사고가 잦은 타워크레인, 건설용 리프트, 항타기, 항발기 등 임대 사용 기계로 발생한 산재에 대해 원청 책임 강화 ▲개정 산안법에 따라 보호대상으로 포함된 특수고용노동자 범위를 보험설계사, 27종 건설기계 운전사, 학습지 교사 등 9개 직종 지정 ▲중대재해 발생으로 작업중지 조치 받은 사업장의 사업주가 작업중지 해제 신청 시 지방노동관서가 4일 이내 심의위원회 열어 논의 등이다.

이미지=이다인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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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하청 노동자들과 노동계는 이러한 산안법 하위법령 개정안이 위험의 외주화를 막겠다는 당초 취지를 무색하게 했다고 밝혔다. 도급승인 대상과 원청 책임 강화가 적용되는 건설기계 범위와 특수고용노동자 범위가 지나치게 협소하다는 것이다.

우선 도급승인 대상의 경우 구의역 고(故) 김 군이 했던 궤도사업법의 점검 및 설비 보수 작업과 태안화력 김용균씨가 했던 전기사업 설비의 운전과 설비의 점검정비 업무가 제외됐다. 조선업 하청 산재사망의 경우도 도급승인 대상에서 제외됐다.

도급승인 대상이란 원청이 고용노동부에 안전보건과 관련한 일정한 요건을 제출한 후 노동부의 승인을 받아 하도급을 주는 제도다.

도급승인 대상을 ‘농도 1% 이상의 황산·불산·질산·염산 취급 설비를 개조·분해·해체·철거하는 작업’으로 한정한 것도 문제라는 지적이 나왔다.

최명선 민주노총 노동안전보건실장은 “보수, 해체 작업 등이 사업장에서 수시로 발생한다. 화학물질 폭발사고는 대부분 잔류물질이 없다고 측정돼, 작업을 실시하다가 발생한다. 2013년 대림 사일로 폭발사고의 경우도 잔류물질 제거로 작업허가서를 발급한 상황에서 대형 폭발사고가 일어났다”며 “시행령 개정안처럼 황산·불산·질산·염산 취급 설비를 개조·분해·해체·철거 작업으로 한정하면 위험하다. 대상을 화학물질 취급 작업 전체로 확대해야한다”고 말했다.

최 실장은 “시행령에 포함되지 않은 반도체 공장의 세정작업, 삼성반도체 불산 누출 사고 등 라인작업, 일상적 수리 정비업무 등도 위험하다. 이 부분도 도급승인 대상에서 제외됐다”고 밝혔다.

산안법 시행령의 건설기계에 대한 원청 책임 강화 분야에서도 한계점이 드러났다. 시행령은 건설기계 27개 기종 가운데 4개 기계에만 원청 책임을 적용했다. 건설현장에서 사고가 많이 나는 덤프, 굴삭기, 이동식 크레인 기계 등은 제외됐다.

산업안전보건공단과 민주노총에 따르면 굴삭기, 트럭류, 고소작업대(차), 이동식크레인, 지게차 등 5대 건설기계와 장비에 의한 사망자는 최근 5년간(2011∼2015년) 693명에 달했다.

개정 산안법에 따라 보호대상으로 포함된 특수고용노동자 범위도 협소하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고용부가 하위법령 개정안을 통해 학습지 교사, 보험 설계사, 골프장 경기 보조원, 택배원, 퀵 서비스 기사, 대리운전 기사, 건설기계 운전사 27종, 카드 모집인, 대출 모집인 등 9개 직종의 특수고용노동자에 대해 보호조치 등 규정을 새로 만들었다. 그러나 화물운송 노동자와 예술 노동자는 배제됐다.

이에 고용노동부는 “법 시행초기인 점을 고려해 보호되는 특수고용종사자의 범위를 현행 ‘산업재해보상보험법’상 직종 9개와 동일하게 정했다”고 밝혔다.

반면 최 실장은 “산재보험 제도는 보험료 징수의 문제 등으로 제한적용 하고 있지만 산업안전보건 조치는 현장 일반의 포괄 조치로 폭넓게 적용돼야 한다”며 “그럼에도 고용부는 산안법 하위법령 개정안에서 산재보험 적용직종만을 특수고용노동자의 대상으로 했다”고 말했다.

이어 “화물운송 물류센터 등은 안전보건의 기본적 조치도 되지 않고 방치되면서 사고발생으로 이어지고 있다. 물류센터의 집하, 상하차 과정에서의 위험도도 높아 사고 발생이 지속되고 있다”며 “이에 대한 안전보건조치 의무 부여가 즉각 시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예술 노동자의 경우도 영화나 드라마 촬영현장, 셋트 공사 등에서 소규모 건설공사와 동일한 작업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특수고용노동자 범위에서 배제돼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이외에도 중대재해 발생 사업장 중지를 해제하는 심의위원회에 노조 추천 전문가가 배제됐다는 문제 제기가 나왔다. 고용부가 작업 중지 명령에 대해 입법 예고한 시행규칙은 사업주의 작업중지 해제 신청 이후 4일 안에 해제심의위원회를 열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해제심의위원회에 당사자 중 하나인 노동자 추천 전문가는 배제됐다.

박세민 금속노조 노동안전보건실장은 “현대중공업, 태안화력, 한화 대전 공장 등 동일 사업장에서 계속 반복적인 산재사망이 지속되고 있다”며 “중대재해 발생 시 작업 중지 명령은 사업주의 안전조치와 재발방지 대책 수립을 강제하는 조치다. 현장 노동자들의 입장에서 사업주가 제시하는 조치와 대책의 적정성에 대한 판단이 가장 중요함에도 노동자의 참여를 막았다”고 했다.

박 실장은 이어 “특히 전면 작업중지 명령의 경우 사업장 규모도 크고, 취해야 할 안전조치, 보건조치 등 제시되는 대책도 광범위하다. 그런데 이를 무조건 4일 안에 작업중지 해제에 대해 심의 결정하라는 것은 형식적 심사만 하겠다는 것”이라고 밝혔다.

하위법령 개정안에 대해 노동계뿐만 아니라 경영계에서도 반발하고 있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이날 정부의 산안법 하위법령 개정안과 관련해, 기업의 경영 차질에 대한 우려를 밝혔다.

경총은 “개정안은 작업중지 해제심의위원회를 4일 이내 개최하도록 규정해 작업중지로 해당 기업과 관련 산업에 막대한 피해를 줬던 작업중지 해제 결정의 지연 문제가 지속할 것”이라며 “또 법률에 규정한 중대 재해 발생 시 작업중지의 범위와 명령의 요건인 ‘동일한 작업, 산업재해가 발생할 급박한 위험’ 등에 대한 구체적 기준이 마련되지 않았다. 고용부 감독관의 자의적 판단으로 명령을 내리는 문제가 일어날 수 있다”고 밝혔다.

이어 “도급승인 대상 화학물질의 농도 기준인 1% 이상은 화학물질관리법과 비교해 과도하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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