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8월 수석부회장에 올라선 데 이어 올해 본격적으로 경영권 확 틀어쥘 듯
현대차, 양웅철·권문식 부회장 물러서고 곧바로 기술개발에 4조5000억원 초대형 투자
전문가 "정의선 체제 변화 늦은 감 있지만 빨리 자리잡아야"

현대자동차그룹 시무식에서 정의선 수석부회장이 신년사를 발표하고 있다. / 사진=현대차그룹
현대자동차그룹 시무식에서 정의선 수석부회장이 신년사를 발표하고 있다. / 사진=현대차그룹

 

정의선 현대자동차 수석부회장은 시간이 흐른 뒤 2019년을 어떻게 돌아볼까. 예단하긴 힘들지만 정 수석부회장이 현대차그룹 경영권을 막 틀어쥐기 시작했다는 점은 사실로 남을 것이다. 이미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의 인물로 대표되던 양웅철, 권문식 부회장이 일선에서 물러났고, 50대 젊은 인물들이 새로운 얼굴로 떠올랐다.

지난해 세대교체를 통해 정 수석부회장의 경영권 확대 기반이 마련됐다면, 올해는 회사 전면에 나서 진두지휘하는 첫 해가 될 것으로 보인다. 현대차그룹도 신기술 개발및 혁신을 위한 대규모 투자 정책을 밝히면서 정의선 체제 구축에 본격 나섰다.

현대차는 내달 주주총회에서 정의선 수석부회장을 대표이사로 확정할 계획이라고 지난 26일 밝혔다. 정 수석부회장은 현대차 대표이사뿐 아니라, 모비스 대표이사에도 선임될 예정이다. 이에 앞서 기아차는 정 수석부회장을 사내이사로 선임하기로 의결했다.

정 수석부회장의 현대차 대표이사 추진 계획이 알려지고 단 하루만인 27일 현대차는 앞으로 5년간의 구체적인 로드맵을 제시했다. 오는 2023년까지 R&D(연구개발)와 경상투자에 30조6000억원, 모빌리티와 자율주행 등 미래 기술에 14조7000억원을 투자한다는 계획이다.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차종을 대폭 확대하고 프리미엄 브랜드 제네시스의 가치도 한껏 끌어올릴 방침이다. 동시에 그동안 따라가는데 급급했다는 비판이 제기되던 자율주행, 전기차, 공유경제 분야에 대한 투자도 늘린다.

현대차가 이번 계획에서 2022년까지 영업이익률 7%와 자기자본이익률(ROE) 9%의 목표를 못 박은 것은 정 수석부회장의 자신감인 동시에, 더 이상 물러설 수 없다는 절박함이 한 데 표현된 것으로 풀이된다. 현대차가 구체적인 수익성 목표를 밝힌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정 수석부회장의 경영권 확대는 지난해 하반기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특히 현대차는 지난해 8월 수석부회장이란 직급을 새로 만들고, 그 자리에 정의선 부회장을 올렸다. 기존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과 그 밑에 7명의 부회장이 보좌하는 체제에서, 정 수석부회장이 나머지 6명의 부회장 보다 한 단계 올라서 그룹 내 2인자를 맡는 형식이었다. 현대차는 이에 대해 “경영 승계와는 거리가 멀다”는 입장이었지만, 표면적으로 그룹 총괄 회장에 한 걸음 더 다가간 인사였다.

무엇보다 정 수석부회장의 경영 승계가 가시적으로 드러난 장면은 바로 지난해 정기인사 때였다. 그동안 정몽구 회장을 보좌하던 양웅철 부회장과 권문식 부회장이 고문으로 위촉되며 일선에서 물러났다. 대신 정 수석부회장은 50대 젊은 인사들을 주변으로 끌어올렸다. 이는 세대교체의 신호탄인 동시에, 정 수석부회장 체제 초석을 다지는 개편이었다.

현대차그룹 한 직원은 “그동안 정 수석부회장이 추진하려던 사업도 양 부회장이 ‘NO’라고 하면 중간에 엎어지는 경우가 많았다”며 “올해야말로 정 수석부회장이 실질적으로 경영권을 쥐고 나가는 해라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양웅철 부회장과 권문식 부회장이 신기술과 혁신에 대해 거부감을 나타냈었다는 지적도 나온다. 또 다른 현대차 직원은 “자세히 말하긴 어렵지만 연구소 내부에서도 불만스런 목소리가 많았다”며 “특히 두 부회장은 다른 업체와의 협업에 대한 두려움이 컸던 것 같다”고 했다.

양 부회장과 권 부회장이 물러나자마자 곧바로 5년간 45조3000억원이라는 초대형 투자 계획이 나온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는 평가도 나온다.

전문가들은 정의선 수석부회장으로의 체제 전환이 빨리 자리 잡아야 한다고 조언한다. 김용진 한국자동차산업학회 회장(서강대 경영대 교수)은 “변화가 너무 늦었다. 내부적으로 지난 2~3년간 정몽구 회장 체제에 있던 인물들이 계속 자리에 있으면서 의사 결정 과정에서 문제가 있었다”고 지적했다. 이어 “4차 산업혁명 시대와 디지털 변혁 시대를 이끌어 나갈 사람들은 가능한 참신하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가진 사람들이 좋다. 경험 있는 사람들은 뒤에서 지원해주는 역할을 하면 안정적인 체제 변환이 이뤄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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