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사회보장기본계획에도 반영 안 돼··· 기초생활보장법 시행령만 바꿔도 해결 가능
전문가 "정부 의지 문제"

지난 10일 서울 낙원악기상가 인근에서 어르신들이 장기를 두고 있는 모습.  / 사진=연합뉴스
지난 10일 서울 낙원악기상가 인근에서 어르신들이 장기를 두고 있는 모습. / 사진=연합뉴스

“나는 76세로 기초생활수급을 받고 있다. 원래 기초생활수급으로 생계급여 51만원을 받아야 한다. 그러나 기초연금 25만원을 받고 있다고 해서 생계급여에서 25만원이 삭감돼 26만원만 받는다. 나처럼 어렵게 사는 노인들이 기초연금 25만원을 받지 못하는 것과 같다. 줬다가 뺏기 때문이다. 이러니까 잘사는 사람은 더 잘 살고 못사는 사람은 더 어려워 지는 것 아닌가.”

서울시 용산구 후암동에 사는 김아무개 씨 이야기다. 22일 김 할아버지는 “4월이면 다른 사람들은 정부 정책으로 기초연금이 30만원으로 오르는 데 나는 기초연금만큼 기초생활수급에서 삭감되니 상관없는 일이 돼버렸다”고 말했다.

기초생활수급을 받는 노인들은 매달 25일 기초연금으로 25만원을 받고, 그 다음 달 20일 생계급여에서 25만원을 삭감 당한다. 기초연금 수급액 만큼 기초생활수급액에서 삭감당하는 노인들은 40만명에 달한다.

정부는 오는 4월부터 소득 하위 20% 이하 대상자에게 기초연금을 기존 월 25만원에서 최대 30만원으로 올리기로 했다. 그러나 이들에게 기초연금 인상은 남의 일이다.

이는 소득 양극화가 점점 악화되는 상황과 관련해서도 문제가 된다. 지난해 4분기 소득 양극화는 2003년 관련 통계 작성 후 가장 나빴다. 지난해 4분기 균등화 처분가능소득 5분위 배율(전국 2인 이상 가구)은 5.47배로 1년 전 4.61배보다 올랐다.

5분위 배율은 5분위 계층의 평균소득을 1분위의 평균소득으로 나눈 값이다. 그 수치가 클수록 소득분배가 불균등한 상태다. 처분가능소득은 소득에서 세금이나 사회보장부담금 등 비소비지출을 뺀 부분이다.

자료=통계청
자료=통계청

특히 기초생활수급자들이 주로 속하는 은퇴연령층의 소득 양극화 문제는 더 크다. ‘2017년 소득분배지표’에 따르면 근로연령층(18~65살)의 가처분소득 지니계수는 0.338이었다. 은퇴연령층(66세 이상)의 처분가능소득 지니계수는 0.419였다. 지니계수는 소득분배의 불평등도를 나타내는 수치로 ‘0’에 가까울수록 평등하고 ‘1’에 근접할수록 불평등하다는 것을 나타낸다.

가처분소득 기준 5분위 배율도 근로연령층은 6.12인 반면에 은퇴연령인구는 8.8로 더 컸다. 소득5분위 배율은 소득상위 20%의 소득을 하위 20% 소득으로 나눈 값이다. 소득 5분위 배율의 값이 클수록 소득분배의 불균등 정도가 크다는 의미다.

특히 기초생활수급 노인들은 기초연금을 삭감당하지만 기초생활수급 대상자가 아닌 노인들은 기초연금을 받기에 역차별 문제도 있다.

김 할아버지는 “못사는 기초생활수급 노인들은 기초연금만큼 삭감당해서 다른 노인들보다 소득이 더 적다. 잘사는 사람은 더 잘살고 못사는 사람은 더 어려워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이러한 문제에 대해 외면하고 있다. 지난 12일 정부는 2차 사회보장기본계획(2019~2023)을 발표해 사회보장에 332조원을 투입하기로 했다. 그러나 이 계획에서도 기초생활수급자 노인들의 기초연금 삭감 문제는 다루지 않았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이번 2차 사회보장기본계획에서는 비수급빈곤층을 줄이기로 했다. 기초생활수급자 노인의 기초연금 삭감 문제는 다음 기회에 다룰 사안이다”고 말했다.

이에 이상호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사무총장은 “기초생활수급 노인들의 삶이 대단히 어렵다”며 “정부가 기초연금을 가지고 가난한 노인과 조금 덜 가난한 노인들의 우선 순위를 저울질해선 안 된다. 둘 중 무엇을 먼저 해결해야 할 문제가 아니고 둘 다 함께 해결해 가야 할 문제다”고 말했다.

이 총장은 “기초연금 삭감 문제를 해결하는데 1년 예산이 1조원 정도 필요하다. 초과세수가 늘어난 상황에서 예산이 부족하다는 것도 이유가 될 수 없다”며 “양극화가 심화되는 상황에서 가난한 노인들이 더 가난해지고 있다. 정부는 포용국가를 지향한다면서도 이들을 포용하지 않고 있다”고 했다.

특히 기초생활수급 노인들의 기초연금 삭감 문제는 관련 법을 고치지 않아도 국민기초생활보장법 시행령을 바꾸는 것만으로 해결이 가능하다.

이 총장은 “이 문제는 법을 바꾸지 않아도 된다. 시행령만 바꾸면 된다”며 “대통령의 의지만으로 가능하다”고 말했다.

현재도 기초연금을 제외한 아동수당, 양육수당, 장애인연금 등은 생계급여와 별도로 지급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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