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상무부, 무역확장법 232조 적용 검토···최고 25% 관세, ACES 기술 제한 등 고려
현대·기아차, 올해 미국시장에 신차 6종 출시···팰리세이드·쏘울 등 수출 공급
"통상압력 지속 작용할 듯···장기적으로 수출 다변화 해야"

그래픽=조현경 디자이너
그래픽=조현경 디자이너

 

올해 미국시장 회복을 공언한 현대·기아자동차가 신차 수출길에 도사린 관세폭탄에 대한 불안은 덜어내지 못한 모습이다. 해를 넘겨 지속되는 통상압력은 현대·기아차의 수출 전략에 불확실성을 더하고 있다. 연중 미국 정부가 수입차 및 부품에 고율 관세 적용 여부를 결정할 것으로 관측되는 가운데 국내 업계에 미칠 파급력을 인식, 정부도 분주하게 대응에 나선 상태다.

29일 전국경제인연합회는 전경련회관 컨퍼런스센터에서 웬디 커틀러 전 USTR 한미FTA 협상대표를 초청해 아시아 소사이어티 코리아, 법무법인 광장 국제통상연구원과 함께 ‘2019 글로벌 통상전쟁 전망과 대응과제 세미나’를 개최했다.

이날 세미나에 참석한 웬디 커틀러 전 USTR 한미FTA 협상대표는 수입차에 대한 미국 무역확장법 232조 적용과 관련해 “미 상무부가 여러 옵션을 검토 중에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고 설명했다. 커틀러 전 대표가 언급한 옵션은 ▲최고 25% 관세 부과 ▲ACES(자율주행차, 커넥티드카, 전기차, 공유차량) 관련기술에 대한 제한, 그리고 이 두 가지 방안의 중간 정도의 제한을 가하는 방안이다. 그러면서 그는 “232조 적용제외를 요청하고 있는 한국 입장에선 면제 여부와 함께 최종적으로 어떤 방식이 될 지에 대해서는 아직 알 수 없어 모든 가능성에 대비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미국 정부는 수입차가 국가 안보 위협할 수 있다는 이유로 고율관세 부과 방안을 검토하는 중이다. 미 상무부는 올해 5월 23일 수입산 자동차·부품에 대한 ‘무역확장법 232조’ 국가안보영향 조사에 착수했고, 관세 대상 국가와 업체들로부터 의견서를 받았다. 행정명령 이후 조사를 마쳐야 하는 법정기한은 내달 17일(현지시각)로, 미 상무부는 내달 중순 이후 조사 결과를 백악관에 제출할 것으로 관측된다. 다만 일각에선 최근 발생한 셧다운으로 발표 시기가 다소 미뤄져 내달 중순을 넘길 것이란 전망도 함께 나온다. 

해를 넘긴 수입차 ‘관세폭탄’ 리스크에 국내 자동차 업계 표정이 어둡다. 수입차 및 부품 고율 관세가 실현될 경우 발생할 파급력이 크다보니 정부도 고율 관세 실현을 막기 위해 분주하다. 이날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도 미국으로 출국, 내달 6일까지 미국 정부 및 의회 주요 인사를 만나 자동차 관세 부과 대응에 나섰다. 앞서 지난해 7월 정부는 미국에 자동차 관세 적용을 반대하는 의견서를 제출한 동시에, 민관합동 사절단을 꾸려 민간 업체들과 공동 대응에 나선 바 있다.

미국 등 주요국 시장 의존도가 높은 현대‧기아차의 표정은 보다 어둡다. 지난해 정의선 현대차그룹 수석부회장도 취임 이후 미국 행정부 및 의회 고위인사들과의 면담 일정을 진행하며, 통상 문제 해결에 적극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수입차 고율 관세가 실현될 경우 미국에 수출하는 차량들의 가격 경쟁력이 현저히 낮아지는 까닭이다. 이에 현지 시장 점유율을 지키기 위해 가격을 낮출 경우 수익성 타격이 불가피하다. 미국 현지 생산을 강요하는 미국 정부 의도대로 해외 공장으로 수출 물량을 돌려 생산할 경우, 국내 공장 가동률이 낮아지는 문제가 걸려있다. 물량 생산에 변동이 있을 경우 노사 협의를 거쳐야 하는 점도 사안에 복잡함을 더한다. 

올해 신차 효과를 발판으로 ‘V자 반등’을 이뤄내겠다고 공언한 현대차그룹에겐 결코 녹록치 않은 통상환경이다. 현대‧기아차는 올해 북미 지역 판매 목표를 전년 실적 대비 각각 1.6%, 3.4% 증가한 88만6000대, 61만대로 올려 잡았다. 양사는 미국 시장에서 신차 효과를 통해 실적을 만회할 방침으로, 올해 미국에서 총 6개 가량 차종을 출시하기로 했다. 지난 24~25일 연간 경영실적 발표를 통해 밝힌 신차 출시 계획에 따르면, 연중으로 현대차는 미국시장에 대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팰리세이드, 엔트리급 SUV, 신형 쏘나타를 내놓고, 기아차는 대형 SUV 텔루라이드, 신형 쏘울, 소형 SUV SP2(프로젝트명)을 출시한다. 

그러나 양사가 흥행 기대를 걸고 있는 팰리세이드, 신형 쏘울 모두 수출용 물량은 당분간 국내서 생산될 전망이다. 팰리세이드의 경우 상반기 미국 출시를 앞두고 4~5월경 울산공장에서 수출용 물량 양산을 검토하는 중이다. 국내 사전계약대수가 당초 내수 판매목표를 초과하면서 수출용 물량이 미국공장에 배정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왔지만 물량 배정을 두고선 노사 협의가 필요해 우선 국내 생산을 검토하겠다는 입장이다. 신차는 물론 기존 현지 시장 판매 중 수출을 통해 공급하는 물량도 적지 않은 상태다. 지난해 현대차는 미국 앨라배마 공장에서 생산된 차 중 29만9722대를 현지시장에 판매했는데, 이는 같은 해 현대차의 미국 현지시장 판매량 67만8000대 중 44% 가량 해당하는 수치다. 

전문가들은 장기적으로 통상압력이 지속되는 미국시장 의존도를 낮춰야 한다고 조언하지만, 언제 터질지 모르는 관세 위협에 대해 단기적 방책은 사실상 전무하다고 보고 있다. 김필수 대림대 교수는 “트럼프 정부 의도대로 생산 물량을 미국 공장으로 이전할 경우 국내 일자리가 줄어드는 것은 물론 당장 생산직의 유동성이 커질 수 있다. 장기적으론 수출 다변화를 통해 미국 의존도를 낮춰야 하지만 미국시장은 해외 사업 샘플을 제공해 놓칠 수 없는 주요국 시장이기도 하다”며 “사실상 정부의 조치가 결정적인 상황이다. 한미 FTA 요소를 강화해 관세 부과대상에서 제외될 수 있는 방안을 만들거나, 마지노선으로 쿼터제식으로 적용해서라도 타격을 줄일 수밖에 없다. 수출량은 감소하더라도 손실은 최소화해야 하는 까닭”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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