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취업, 생활에 환상 갖는 청년들…전문가들 “구체적 계획 없는 도피성은 경계해야”

최근 한국 사회의 비정상적 경쟁구도, 빈약한 사회안전망에서 벗어나려는 2030 청년층이 해외로 눈길을 돌리고 있는 가운데, 온·오프라인 공간에서 ‘이민 스터디’를 구성해 해외 취업을 준비하는 청년층이 증가하고 있다. / 그래픽=조현경 디자이너

 

최근 한국 사회의 비정상적 경쟁구도, 빈약한 사회안전망에서 벗어나려는 2030 청년층이 해외로 눈길을 돌리고 있는 가운데, 온·오프라인 공간에서 ‘이민 스터디’를 구성해 해외 취업을 준비하는 청년층이 증가하고 있다. 하지만 청년들의 해외 취업 사기, 피해 등은 여전히 개선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양질의 일자리가 마련될 수 있는 정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한국산업인력공단의 연도별 해외 취업자 통계에 따르면, 2013년 1607명이던 해외 취업자는 2015년 2903명, 2016년 4811명으로 급증했고 지난해에는 5118명에 달했다.
 
또 한국산업인력공단과 잡코리아가 공동 실시한 구직자 대상 취업 선호도 조사에 따르면, 전체 응답자 중 90% 이상이 해외 취업에 관심을 보였다. 특히 청년들은 해외 취업을 하려는 이유로 ‘해외 기업의 워라밸(Work and Life Balance·일과 삶의 균형)과 조직 문화의 자유로움’ 등을 꼽았고, 해외 기업의 전반적인 근무환경이 국내 기업보다 좋을 것으로 기대했다.

청년층이 해외로 눈길을 돌리는 데는 주 52시간 근무제가 본격 시행됨에 따라 발생되는 혼란 때문인 것으로 나타났다. 근무시간 단축으로 업무 시간은 줄었지만, 남은 업무를 해결하기 위해 퇴근 후에도 비공식적으로 추가 업무를 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아울러 근무시간이 줄어 회사의 요구대로 성과를 내고 업무를 마무리하기 위해선 결국 추가 인력이 필요한데, 정부의 한시적인 지원으로는 인건비 충당이 어려워 기존 인력들의 월급이 깎이는 등 악순환이 이어진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인터넷 이민 관련 커뮤니티들은 이미 해외 정보를 주고받는 공간으로 자리 잡은지 오래다. 청년들은 각국별 비자나 영주권, 이민 제도, 해외 취업 정보 등과 관련한 정보를 공유하면서 스터디원들과 오프라인 모임을 갖기도 한다.

독일 이민을 준비 중인 박아무개씨(26)는 “인터넷에서 스터디원을 모아 해외 취업 관련 기사, 정보 등을 공유하고 있다. 이민 스터디원들과 취업 이민을 위한 영문 자기소개서를 써서 돌려보거나 첨삭을 해주고 있다”며 “해외 취업을 준비하는 사람들끼리 모여 이민 박람회 등에 참석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호주로 취업을 준비 중인 이아무개씨(28)는 “현재 다니는 국내 회사도 만족하지만 일부 선진국들이 한국 기업보다 복지가 좋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무엇보다 해외 경험을 해보고 싶다”며 “매달 월급의 40% 정도를 저축하며 이민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 해외 취업 사기·출국 지연 등 피해는 여전

정부는 청년들의 해외 취업을 위해 일본에서 베트남, 대만 등 동남아로 영역을 확대했고 최근 중남미까지 범위를 넓혀 청년들의 해외 취업을 독려하고 있다.

문제는 정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중개업체가 취업 성공률만을 끌어올리기 위해 이른바 ‘블랙 기업(장시간 노동·잔업 등을 요구하거나 부실한 기업)’을 소개하고 있어 청년들이 중도 직장을 그만두는 사례가 증가하고 있다는 점이다. 또 해외 취업 노동조건도 한국보다 열악한 경우가 많아 청년들이 기대하는 좋은 일자리와도 거리가 멀다.

실제 한국노동연구원이 올해 상반기 조사한 해외 일자리 보고에 따르면, 최근 칠레는 노동시장의 유연화로 고용 불안이 높아졌고 멕시코는 외주·하청 노동 부문이 큰 폭으로 증가했다. 미국·호주·유럽 등 선진국은 실질적으로 외국인에 대한 까다로운 비자 정책 등으로 취업 문턱 자체를 넘기 힘든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청년들이 해외 취업을 꿈꾸는 데는 해외에 대한 환상 때문이라면서 구체적인 계획이 없는 현실 도피성 유학과 이민은 경계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해외 취업전문 업계 관계자는 “언어적인 부분이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한국에서와 똑같은 일을 하려고 하면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미국·캐나다 등 인기가 많은 지역으로 가더라도 생활이 맞지 않아 중간에 포기하고 돌아오는 사람들도 많다”며 “눈높이를 낮춰서라도 제대로된 취업을 할 수 있도록 준비를 갖춘 뒤 떠나야 한다”고 지적했다.

박남기 광주교대 교육학 교수는 “해외에 대한 환상이 크기 때문에 청년들이 해외로 취업하려는 것인데, 사실 이민가서 성공한 케이스는 많지 않다”며 “이민 자체가 한국과 제도 등이 많이 다르기 때문에 기대 수준을 낮추고 최소한 5년~10년의 시간을 두고 해외 기반을 잡는다는 각오로 떠나야 한다”고 지적했다.

박 교수는 이어 “국내 대기업 임금은 선진국보다 높기 때문에 두뇌고갈현상이 많지는 않은데, 해외로 인재 유출이 이어진다면 향후 국내 경제, 사회발전 문제는 분명 존재하게 될 것”이라며 “고용노동부, 외교부 등 정부기관이 해외 취업 사례를 지속적으로 조사하고 공공기관 등을 통한 해외 취업 자료 등을 만들어 해외 취업, 양질의 일자리를 개선하는 데 돕는 것도 방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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