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베이트 근절 의지 대외적 표명…삭제 자료 복구에 디지털포렌식 활용, 서버 교체·PC 폐기 밖에 회피책 없어

서부지검 요원들이 지난 21일 저녁 안국약품에서 철수하고 있다. / 사진=시사저널e
최근 검찰의 안국약품 압수수색에서 현직 검사가 현장에 나가 진두지휘한 것으로 파악됐다. 또 검찰이 종이서류 압수보다는 디지털포렌식으로 삭제 자료를 복구해 확보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어 제약사들의 효율적 대응에 관심이 집중된다. 

 

서울서부지방검찰청 식품·의약조사부 소속 요원들은 지난 21일 오전 9시부터 저녁 7시 40분 경까지 안국약품을 압수수색했다. 현재로선 검찰이 리베이트 제공 혐의를 갖고 안국약품을 방문해 수사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문제는 서부지검 식품·의약조사부의 현직 검사가 요원들을 이끌고 현장에 직접 나가 압수수색을 진두지휘했다는 점이다. 현재 식품·의약조사부는 김형석 부장검사 휘하에 정영수, 김진용, 송한섭, 김미경 등 4명의 검사가 근무 중이다. 이중 의약품 리베이트 분야는 정영수 검사가 담당하는 것으로 알려져 정 검사가 현장에 갔을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다.  

 

이처럼 현직 검사가 압수수색 현장을 방문해 작업을 지휘하는 경우는 최소한 제약업계에는 흔치 않은 사례로 파악된다. 한 제약사 관계자는 “서부지검 식품·의약조사부가 지난 5월 경 개편된 이후 처음으로 진행하는 의약품 리베이트 수사라는 데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며 “사정당국이 리베이트 근절에 나섰다는 점을 대외적으로 보여주기 위한 측면도 있을 것”이라고 언급했다.  

 

안국약품 입장에서도 현직 검사가 직접 압수수색을 지휘하는 것에 대해 부담을 느낄 수 있어 여러 측면에서 검사의 지휘는 상징하는 바가 크다는 분석이다. 

 

또 이번 안국약품 압수수색은 검찰의 리베이트 수사가 종이서류 대신 디지털 자료 확보로 변경됐음을 확인하는 계기가 됐다는 의견도 나온다. 

 

실제 과거에는 검찰 요원 십여명이 압수수색을 종료하고 철수하면서 수십개 박스를 들고 나오는 장면이 연출되기도 했다. 이에 이날 오후 5시 경에는 연합뉴스TV가, 5시 30분 경에는 SBS가, 6시 30분 경에는 MBC가 안국약품 본사를 방문해 방송 촬영을 준비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미 검찰 요원 십여명은 개별적으로 1층 정문을 통해 철수했고, 7시 40분 경 검찰 요원 2명이 조용히 철수해 방송으로 내보낼 수 있는 장면은 건지지 못했다. 

 

실제 검찰의 리베이트 수사는 디지털포렌식 방식으로 진행된 것으로 파악된다. 디지털포렌식은 해당 제약사가 오해의 소지가 될 수 있는 자료를 삭제했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회사 서버나 직원 개별 컴퓨터에 접속한 후 삭제한 자료를 즉석에서 복구해 외장하드에 담아 분석하는 방식을 지칭한다. 

 

제약업종을 비롯한 전체 업종이 최근에는 대부분 종이서류를 사용하지 않고 있다. 특히 오해의 소지가 될 수 있는 내용이 담긴 종이서류를 쌓아놓고 있는 제약사는 거의 없는 상황이다. 

 

이날 오전 9시 경 안국약품을 방문한 검찰 요원들은 통상 오후 4시나 5시 경 철수할 가능성이 높았는데, 7시 40분 경까지 진행된 것도 주의 깊게 볼만한 부분이다. 

 

한 제약업계 소식통은 “안국약품 직원 이야기가 맞다면 대부분 요원들이 철수한​ 지 1시간 정도 경과된 후 7시 40분 경 마지막으로 안국약품에서 나온 요원 2명은 디지털포렌식으로 전산자료를 다운 받는 작업을 했을 것”으로 추정했다. 

 

또 다른 업계 소식통은 “통상 5년치 영업 관련 자료를 확보하는 것이 리베이트 수사의 관행”이라며 “안국약품 압수수색에서 시간이 많이 소요된 것은 검찰이 10년치 자료를 모두 가져갔기 때문”으로 분석했다. 

 

제약사들이 검찰이나 세무당국의 디지털포렌식을 회피하기 위해서 취할 만한 마땅한 방법이 현실적으로는 없는 것으로 파악된다. 사정당국이 철저하게 수사를 진행하게 되면 빠져나갈 수 있는 방법은 많지 않다는 뜻이다. 

 

제약사들의 회피책으로는 일단 회사 서버를 교체하는 방식이 우선 거론된다. 기존 서버에 있던 자료 중 오해의 소지가 될 수 있는 자료를 제외한 나머지 내용을 새 서버에 옮겨 놓는 방식이다. 과거 모 제약사는 회사의 공식 서버 외에 별도 서버를 운영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만만치 않은 비용이 필요해 최근 영업이익 부진에 빠져 있는 제약사 입장에서는 큰 부담이다.  

 

직원들이 개별적으로 사용하는 컴퓨터를 폐기하거나 교체하는 것도 회피책 중 하나다. 하지만 일괄 교체에는 큰 비용이 소요된다.  

 

복수의 제약업계 관계자는 “이제 한국제약바이오협회 명의의 공문을 방송사에 보내 압수수색 현장에 카메라 좀 보내지 말라고 당부해야 할 정도”라며 “연말까지 무슨 일이 발생할까봐 노심초사하고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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