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식구 감싸기’ 여론에 상당한 부담 느끼는 듯

지난 1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고영한·김창석·김신 대법관 퇴임식에서 참석자들이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재판거래는 없다”라며 사법농단 사건 의혹 초기부터 결과를 예단한 법원이 수사 단계에서도 노골적으로 예단을 드러내며 검찰이 청구한 영장을 기각했다. 법원은 검찰의 비판에 이례적으로 공식 입장까지 발표했다. ‘제 식구 감싸기’ 여론에 상당한 부담 느끼는 모양새다.

3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은 지난 1일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일제기업 상대 강제징용 피해자들 민사소송 불법 개입’ 등 사건과 관련해 검찰이 법원행정처와 문건 작성에 관여한 전·현직 판사 4명에 대해 청구한 영장을 기각했다.

반면 이 사건 ‘카운터 파트’에 해당하는 외교부 기획조정실과 동북아국에 대해서는 영장이 발부됐다.

검찰에 따르면 영장을 심리한 이언학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법원행정처가 압수수색 대상을 임의 제출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압수수색이 부적절하다고 판단했다. 특히 이 부장판사는 ‘일개 심의관이 작성한 문건에 따라 대한민국 대법관이 재판한다고 보기 어렵다’는 기각 사유도 밝혔다.

이 부장판사의 판단은 사법농단 의혹 사건에서 법원의 ‘예단’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것이다. 검찰이 재판거래 등 사법농단이 실재했는지 수사를 통해 확인하는 과정인데도, 대법관이 법원행정처 심의관이 작성한 문건에 따라 재판했다고 볼 수 없다고 미리 판단했기 때문이다.

검찰은 “이 사건에서 혐의자는 문건을 작성한 법원관계자들이고 외교부는 참고인에 불과하다”면서 “참고인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이 발부될 정도인데, 범죄 혐의자에 대한 압수수색이 모두 기각된 것은 이례적이다”고 비판했다.

법원의 예단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고영한 전 대법관 등 대법관 13명은 검찰 수사를 앞둔 지난 6월 15일 공동 입장문을 통해 “재판거래 의혹은 근거가 없다”고 주장했다. 특별조사단이 공개한 문건에서 다수의 재판거래 정황이 드러났고, 김명수 대법원장이 수사 협조를 표명한 직후다.

안철상 법원행정처장도 지난달 18일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재판거래 의혹은 없다’라고 예단 해 더불어민주당 박주민 의원의 질책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법원은 검찰 탓을 하며 ‘제 식구 감싸기’라는 비판을 외면하고 있다. 검찰의 영장에 흠결이 있기 때문에 기각된 것이지, 법원 구성원에 대한 영장이라고 해서 예외적으로 취급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법원 관계자는 특히 “추후 영장청구서와 소명자료의 내용이 가감 없이 공개되면 최근의 영장심사가 적정했는지 여부가 객관적으로 평가될 것으로 기대한다”면서 검찰에 오히려 영장과 소명자료를 공개하라는 식으로 주장하기도 했다.

법원의 입장 발표에 한 법조인은 “영장 발부와 관련한 검찰의 불만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닌데도 법원이 공개 비판한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면서 “법원이 여론에 상당한 부담을 느끼고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한편 검찰은 지난달 말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에 대한 강제수사에 본격 돌입한 이후 네 차례에 걸쳐 총 22건의 영장을 청구했으나, 법원은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주거지·사무실 및 외교부 등 단 2건만 발부했다. 매년 90% 안팎의 영장이 발부되는 것을 감안할 때 매우 낮은 발부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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