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일그룹, “150조원 가치 단정 못해” 사과…코인장사·주가조작 등 해명에도 의혹 여전

울릉도 앞바다에 침몰한 러시아 순양함 돈스코이호를 발견한 신일그룹의 최용석 대표이사 회장이 26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세종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러시아 침몰함정 ‘돈스코이호’를 인양하겠다는 신일그룹이 돈스코이호의 가치가 150조원에 달한다는 주장을 철회하며 사과했다. 코인장사 및 주가조작 등 각종 의혹은 전면 부인했다. 신일그룹은 돈스코이호의 역사적 유물 가치를 강조하며 ‘인양’에 최선을 다하겠다는 입장으로 선회했다. 인양에 성공하더라도 소유권을 둘러싼 분쟁은 불가피할 전망이다.


◇“150조 인용은 잘못” 사과…파일럿도 “금괴상자 못 봤다”

신일그룹은 지난 26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세종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각종 의혹을 해명하고, 돈스코이호 인양 계획을 설명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 자리에 신일그룹을 둘러싼 각종 의혹에 등장하는 류상미씨(신일그룹 설립자 및 최대주주)는 나오지 않았다. 대신 류씨와 최근 제일제강 지분을 인수한 최용석 신임 신일그룹 대표가 회견을 주재했다.

신일그룹의 기자회견은 ‘돈스코이호가 150조원의 가치가 있다고 단정할 수 없다’라는 사과부터 시작됐다. 최 대표는 “‘돈스코이호 150조원 보물’이란 문구는 이전부터 사용됐던 문구로 검증 없이 내용을 인용해 사용했던 것”이라며 “무책임한 인용에 대해 국민들께 사과의 말씀을 올린다”고 말했다.

이어 “200t의 금괴가 있다고 하더라도 현재의 금 시세를 감안하면 돈스코이호의 가치는 약 10조원”이라며 “역사적 유물적 가치를 더한다고 하더라도 150조원이라는 금액이 어떤 방식으로 추론돼 제시됐는지 알 수 없다”고 발을 뺐다.

이 같은 최 대표의 주장은 인양보증금으로 15조원(매장 추정가의 10%)이 필요하다는 해양수산부의 지적이 있은 후 선회한 것이다. ‘국유재산에 매장된 물건의 발굴에 관한 규정’에 따르면 매장물의 발굴 승인을 얻고자 하는 자는 ▲매장물 위치 도면 ▲작업계획서 ▲인양 소요 경비에 대한 이행보증보험증권 또는 재정보증서 ▲발굴보증금(매장물 추정액의 10%) 등의 첨부자료를 관장기관에 제출해야 한다. 해양수산부는 최근 신일그룹이 제출한 발굴 신청서를 ‘서류가 제대로 구비되지 않았다’며 반려했다.

최 대표는 또 금괴의 존재 여부도 확언하지 못했다. 다만 역사자료, 그동안 많은 업체가 자본을 투입한 정황, 현장 탐사원이 단단한 밧줄로 고정된 여러 개의 상자묶음을 확인했다는 보고 등을 총합했을 때 ‘재산적 가치가 충분한 무언가가 있을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간접사실에 의한 추측이라는 말이다.

신일그룹 측이 주장하는 역사자료는 러시아 국립문서보관소 사료다. 여기에는 ‘발트함대의 회계함인 나히모프호가 1905년 5월 27일 울릉도 저동항 앞바다에서 돈스코이호에 접근한 뒤 1시간동안 기록이 없다’라는 내용이 적시돼 있다고 사측은 주장한다. 사측은 또 일본과 러시아가 당시 나히모프호에 있던 금괴 및 금화를 돈스코이호에 옮겼다는 ‘설’이 있다고 부연했다.

신일그룹 측은 또 동아건설 등 여러 회사가 과거 돈스코이호의 인양사업을 추진했기 때문에 ‘무언가 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밖에 이번 탐사에 참여한 파일럿들이 ‘상자묶음’을 육안으로 봤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상자묶음과 관련된 주장은 수 분 만에 반박됐다. 실제 잠수에 참여했다는 잠수정 파일럿들이 금괴 상자를 보지 못했다고 발언하면서다.

잠수정 파일럿 제프리 엘 히톤(Jeffery L. Heaton)과 어글라스 제이 비숍(Douglas J. Bishop)은 간담회 중간에 “어떤 박스도 보지 못했다(I did not see any boxes)”고 말했다. 간담회 직후 기자들이 재차 ‘금괴 상자를 보지 못했느냐’고 물었지만 같은 답변이 돌아왔다.

이날 사측이 공개한 영상에서도 상자나 상자를 묶고 있다는 밧줄 등은 확인되지 않았다.
 

서울 공항동에 위치한 신일그룹 돈스코이호 국제거래소 모습. /사진=뉴스1


◇코인장사 의혹에 “이름만 같을 뿐 다른회사”…질문 이어지자 대꾸 못 해

신일그룹은 유물 발굴을 미끼로 코인 장사를 한 게 아니냐는 의혹을 전면 부인했다. 싱가포르에 주소를 둔 신일그룹이 신일골드코인(SGC)을 발행하고 있는데, 발굴을 진행하는 신일그룹과는 이름만 같을 뿐 다른 회사라는 주장이다.

최 대표는 “신일골드코인은 싱가포르 신일그룹에서 운영하는 것으로 (우리 회사와) 전혀 다른 법인이다. 어떤 주주건의 관련도 없다”면서 “우리 회사는 지난 6월 1일 돈스코이호에 관한 다큐멘터리 제작을 목적으로 탐사를 하고, 탐사 후 돈스코이호가 발견되면 적법한 절차에 따라 인양까지 진행할 목적으로 설립된 회사”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 같은 해명에도 의혹은 여전하다. 그동안 신일그룹은 공식 홈페이지에 신일국제거래소와 신일골드코인 등을 계열사라고 표기해왔기 때문이다. 이에 최 대표는 “신일그룹 설립을 급하게 해서 웹페이지를 만들지 못한 상황이었고, 싱가폴 신일그룹의 웹페이지를 사용한 것으로 안다”고 해명했다. 취재진이 “그게 말이 되느냐”고 지적했고, 최 대표는 대꾸하지 못했다.

신일골드코인은 올해 5월부터 3차례 사전판매(개당 30원~120원)가 진행됐다. 모두 28억원 이상이 판매된 것으로 분석된다. 인양을 준비하는 신일그룹과 별개라는 또 다른 신일그룹은 오는 9월 30일 암호화폐 거래소에 코인 상장을 예고했다. 상장 예정 가격은 1만원이다. 사전판매금액과 비교해 100배 이상의 수익을 약속한 것이다. 

 

26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세종홀에서 울릉 해저 돈스코이호 보물선 탐사 관련 기자간담회가 열렸다. /사진=연합뉴스

◇제일제강 주가조작 의혹엔 “별개로 진행한 사업”

신일그룹은 제일제강 인수를 통한 주가조작 의혹도 부인했다. 두 회사의 최대주주가 동일하지만 별개로 진행한 사업이라는 주장이다. 앞서 제일제강은 지난 5일 최 대표와 류씨 등 개인들과 ‘최대주주 변경을 수반하는 주식양수도 계약’을 체결하며 1800원대에 머물던 주가가 5400원까지 올랐다.

최 대표는 “류상미씨와 제가 제일제강을 인수한 것은 맞지만 개인자격으로 한 것이다. 돈스코이호 인양과 별개로 진행된 사업이다”라며 “인수자가 신일그룹의 대표이사라는 이유만으로 ‘돈스코이호 사업을 위해 제일제강을 인수한 게 아니냐’라는 추측성 보도는 피해달라. 주주들이 확인되지 않은 발표로 인해 상당한 재산피해보고 있다”고 했다.

신일그룹 측에 따르면 최 대표는 조만간 제일제강 최대주주가 될 예정이다. 최 대표는 “제가 향후 주주총회를 통해 대표이사로 선임된다면, 기존 제일제강이 영위하는 목적사업을 최대한 활성화할 계획”이라며 “돈스코이호 인양 사업에 제일제강을 참여시킬지는 미정이다. 주주들의 의견을 듣고 결정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금융감독원은 신일그룹의 가상통화 발생과정에서의 사기 가능성과 주가조작 의혹에 대해 조사 중이다.

신일그룹 최용석 대표가 26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에서 돈스코이호와 가상화폐 거래소 및 신일골드코인 등에 대한 해명 기자회견을 가진 뒤 기자들에게 질문을 받고 있다. /사진=뉴스1


인양 가능성엔 ‘자신감’…소유권은 ‘글쎄’

신일그룹 측은 이날 기자회견 상당 시간을 인양 관련 설명에 투자하며 자신감을 보였다.

돈스코이호 인양 기술자문을 맡고 있는 하득복 탐사팀장은 “우리가 발견한 배는 수심 434m에 위치해 있지만, 시정이 8미터에 달하고 유속이 매우 느리다. 배가 두 동강 나 있어 톤수도 매우 적다”면서 “인양에 어려움을 겪었던 세월호와 비교하면 안된다”고 말했다.

그는 “세계적으로 수심 8000미터에 위치한 러시아 핵잠수함도 인양된 사례들이 있다”면서 “434미터가 낮은 수심은 아니지만 세월호보다 훨씬 수월한 인양을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돈스코이호는 6200톤급 군함이다.

기술적으로 인양이 가능하더라도 소유권이 온전히 신일그룹 측에 있는지는 의문이다. 이날 기자회견에 참석한 러시아 언론은 돈스코이호가 러시아 소유 군함이어서 인양이 아닌 약탈로 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최 대표는 “러시아 정부 관계자들은 유골이 남아 있어 (일종의) 국군묘지기 때문에 러시아 정부 동의가 필요하다는 주장 같다”면서 “하지만 돈스코이호는 스스로 가라 앉아 국제해양법과 조약이 적용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이어 “돈스코이호는 스스로 침몰한 것이고, 침몰한 지 100년이 지나 현재는 국제해양법이나 조약 등에 따른 소유권이 인정되지 않는다”면서 “스페인·콜롬비아 사례 등 해외에서 발견자의 손을 들어준 사례가 있다”고 강조했다.

최 대표는 또 앞으로 국내 법무법인을 통해 돈스코이호 최초발견자라는 지위를 확인받고, 우선발굴자 지위 확인을 위한 소송을 준비 중이라고 밝혔다.

한편, 신일그룹은 이날 법인명을 신일해양기술주식회사로 변경한다고 밝혔다. 싱가포르 법인 신일그룹과 이름이 같다는 이유만으로 기업이미지가 급격히 추락했다는 이유에서다. 또 류상미씨가 대표이사 자리에서 사임하고 최 대표가 새로 취임했다고 설명했다. 최대주주도 류씨에서 CPA파트너스로 변경됐다. 기자들 사이에선 혀를 차는 소리가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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