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의 고발의무 규정한 형사소송법 위반” vs “사실상 고발한 것이고 검찰 수사 지켜봐야”

김명수 대법원장이 15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으로 출근하고 있다. / 사진=뉴스1


 

김명수 대법원장이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의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과 관련해 ‘형사고발’이 아닌 ‘수사협조’ 카드를 선택했다.

형사소송법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결정으로 직무유기라는 비판과 함께, 사실상 고발을 한 것과 마찬가지고 성역 없는 검찰 수사만 남았다는 평가들이 나왔다.

김 대법원장은 15일 대국민담화문을 통해 “최종 판단을 담당하는 기관의 책임자로서 섣불리 고발이나 수사 의뢰와 같은 조치를 할 수는 없다”면서 “수사가 진행될 경우 미공개 문건을 포함해 특별조사단이 확보한 모든 인적·물적 조사 자료를 적법한 절차에 따라 제공할 것”이라고 밝혔다.

대법원장 명의나 사법부 차원의 추가 고발 대신 이미 시민단체 등의 고소·고발이 여러 건 검찰에 접수된 만큼 수사가 시작되면 적극 협조하겠다는 의미다.

김 대법원장은 이를 위해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관련 특별조사단(특조단·단장 안철상 법원행정처장)’이 확보한 모든 인적·물적 조사 자료를 영구 보존하도록 했으며, 내부적으로는 관련 법관 13명에 대한 징계절차가 이뤄지도록 조처했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김 대법원장의 판단이 현행법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결정이라며 비판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형사소송법 제234조(고발)는 ‘공무원은 그 직무를 행함에 있어 범죄가 있다고 생각되면 고발해야 한다’고 명시해 공무원에게 고발 의무를 부과하고 있다.

대한법학교수회 백원기 회장(국립인천대 교수)은 “형사소송법상 공무원은 일반인과는 달리 그 직무를 행함에 있어 범죄가 있다고 사료하는 때에는 고발해야 하는 의무가 있다”면서 “대법원장이 언론에 일부 공개된 특별조사단이 확보한 인적·물적 조사자료만으로도 범죄의 혐의가 짙은 사안에 관해 고발의 의무를 이행하지 않는 것은 현행법을 정면으로 위반한 처사이고 이는 공무원의 직무유기에 해당하는 것이다”고 말했다.

백 회장은 이어 “징계 절차를 시작하더라도 전·현직 관련자들에 대한 형사고발이나 수사의뢰 등 형사상 조치는 하지 않는다는 것은 국민들이 매우 납득하기 힘든 결정”이라며 “‘수사협조’라는 결론은 미봉책에 불과하고 사법부과 국민을 무시하는 처사다”고 지적했다.

익명의 요구한 한 변호사는 “직무유기죄는 직무상 의무가 있는데도 고의로 이를 방기하거나 다른 일을 하는 경우 성립된다”면서 “문제가 있다고 판단을 내린 상황에서 고발하지 않는 것은 직무유기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판사 사찰 피해자인 차성안 사법정책연구원(사법연수원35기·판사)​ 역시 지난 12일 SNS(Social Network Service)에 쓴 글에서 “법원이 직무상 조사과정에서 범죄혐의가 있다고 사료됨에도 법원의 사법행정권자 누구도 형사소송법상 고발의무를 이행하지 않는 것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차 판사는 각 법원 판사들이 모여 형사고발 여부를 고민하는 상황을 겨냥해 “이게 판사들의 회의에 어울리는 모습인가. 그 결론은 또 얼마나 정무적이고 타협적인가”라고 한탄하며 “법원의 공식 조사도 있었고, 그에 따른 수사 필요성에 거의 공감하면서 형사소송법에 따른 고발의무를 지지 않는 것은 직무유기”라고 썼다. 형사소송법이 공무원의 고발의무를 부과하고 있는데도 정무적 판단을 하고 있다는 비판이다.

김 대법원장이 절충안을 내 놨고 향후 검찰 수사를 지켜봐야 한다는 평가도 있었다.

박찬운 한양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형사소송법상 공무원의 고발의무를 저버린 결정에 비판이 있을 수 있다”면서도 “수사협조는 ‘수사가 부적절하다’라는 입장과 전혀 다른 것이고, 최종 판단을 담당하는 기관의 수장으로서 ‘수사에는 적극 협조하겠다’는 정도의 절충안을 채택한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이어 “이제는 검찰이 적극적으로 수사해야 할 시점이 됐다”면서 “검찰의 수사의지에 따라서 사실관계가 드러나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소장으로 이번 사건을 검찰에 고발한 임지봉 서강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도 “김명수 대법원장의 수사협조 결론은 사실상 고발을 한 것과 마찬가지라고 본다”면서 “모든 공이 검찰로 넘어갔고 검찰은 성역 없는 수사를 통해 낱낱이 사실관계를 밝혀야 한다”고 말했다.

임 교수는 특히 “대검찰청에는 최첨단 과학수사기법을 보유한 국가디지털포렌식센터가 있다”면서 “현재까지 암호를 풀지 못한 파일, 법원행정처에서 긴급 삭제된 파일 등도 모두 복구될 것을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앞서 특조단은 지난달 25일 양 전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가 추진했던 상고법원 등 사법행정에 반대하는 판사들의 동향을 파악하고 판결을 거래나 흥정의 수단으로 삼으려 한 흔적이 발견됐다며 사법행정권을 남용했다는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다만 국제인권법연구회 축소 압박과 관련해 직권남용죄 해당 여부는 논란이 있고, ‘재판 거래’ 의혹은 뚜렷한 범죄 혐의가 인정되지 않는다며 관련자들의 형사상 조치를 취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이후 후속 조치를 둘러싼 논란이 커지자 김 대법원장은 지난달 31일 대국민담화문을 통해 법원 안팎의 의견을 들은 후 관련자들의 형사상 조치를 최종 결정하겠다고 공표했다.

한편 이번 의혹의 중심에 선 양승태 전 대법원장은 지난 1일 자택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재판에 부당하게 간섭하거나 관여한 바가 결단코 없다”며 “정책에 반대하거나 재판에 특정한 성향을 나타낸 법관에게 편향된 조치를 하거나 불이익을 준 적이 전혀 없다”고 강하게 부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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