南과 협력 통한 발전 모델 필요…전문가들 “사유화 확대되는 북한식 개혁개방”

역사적인 북미정상회담이 점차 가시권에 접어들고 있다. 북·미 양측이 회담 의제를 두고 다각도로 사전 협의 중인 가운데, 북미 정상이 비핵화와 체제 보장에 합의할 경우 한반도 상생시대를 열어갈 남북경협도 급물살을 탈 전망이다. 

창간 3주년을 맞아 특별기획 ‘남북상생시대: 한반도 경제공동체를 고민하다’​를 보도하고 있는 시사저널e는 1부(독일 통일의 교훈)에 이어 이어 2부(한반도 신경제지도)를 총 6편에 걸쳐 나눠 연재한다. 


2부에서는 북한의 개혁개방 발전 모델과 남북경협 방향, 그리고 남북상생시대가 만들어 낼 새로운 동북아 경제체제 모습을 미리 조망해보고 우리의 대응 방향을 모색해 소개할 예정이다. [편집자 주] 

 

‘위대한 중국의 강대함을 알 수 있다. 중국 공산당의 현명한 영도 하에 더 훌륭한 과학의 성과를 달성하게 될 것이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3월 27일 중관촌에 위치한 중국과학원 방문 후 방명록에 남긴 글귀다. 김 위원장은 3월 25~28일 집권 후 처음으로 중국을 방문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회담했다. 김 위원장의 중관촌 방문은 정상회담과 만찬을 제외한 유일한 공식 일정이었다. 중국의 실리콘밸리로 불리는 중관촌은 첨단기술 기업과 벤처 기업의 집결지다.

당시 조선중앙통신 보도에 따르면 김 위원장은 핵물리와 우주공간, 농업, 에너지 등 자연과학기술 분야에서 거둔 성과들에 대한 해설을 들으며 전시물을 관람했다. 노동신문이 공개한 사진에서는 김 위원장과 부인 리설주가 해양과학탐사 관련 전시 코너에서 가상현실(VR)을 체험할 수 있는 기기로 보이는 장치도 착용했다.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이 주재한 가운데 당 중앙군사위원회 제7기 1차 확대회의가 열렸다고 지난 5월 18일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했다. / 사진=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김 위원장 중국 방문 두달 여 뒤, 박태성 북한 노동당 중앙위 부위원장도 중국에 모습을 드러냈다. 박 부위원장은 지난 5월 14~16일 ‘친선관람단’을 이끌고 베이징의 주요 산업 현장을 둘러봤다. 당시 박 부위원장은 시진핑 주석과 면담에서 “중국의 경제건설과 개혁개방 경험을 학습하기 위해 중국에 왔다”고 말했다. 

이러한 북한의 행보는 먼저 개혁개방에 나서 성과를 이룬 중국 산업계를 학습하기 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북한은 베트남식 개혁개방에도 관심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김 위원장은 지난 4월 27일 남북정상회담에서 문재인 대통령에게 베트남식 개혁개방 모델로 가고 싶다고 밝혔다는 매일경제신문 보도가 있었다.

◇“중국 경제 배우겠다”는 북한…향후 개혁개방 방식은 상황·대응 따라 달라질 듯

이처럼 최근 김정은 위원장은 비핵화 의지를 선언하며 경제 발전에 적극 나서겠다고 공언하면서 ‘사회주의 체제’ 북한이 과연 어떠한 개혁개방 방식에 나설지 주목받고 있다.

전문가들은 북한이 개혁개방 방식으로 중국이나 베트남 모델 등 어떤 방식을 도입해도 결국 북한식이 될 것으로 전망했다. 중국과 베트남의 개혁개방 시기(70년대 후반~90년대)와 경제시스템은 지금의 북한이 처한 상황과 다르기 때문이다.

 

다만 북한도 중국과 베트남이 밟아온 기업 등에 대한 사유화 확대 과정을 진행해 나갈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중국과 베트남은 개혁개방 조치를 취하면서 일정 단계를 밟았다. 전문가들은 북한도 이 단계를 밟을 것으로 예상했다.


과거 경험상 사회주의 국가들의 개혁개방은 사유화 확대 과정으로 나타난다. 특히 중국과 베트남은 개혁개방을 위해 중앙집권적 계획경제를 분권화했다. 즉 국가가 소유한 기업과 농장의 생산 및 경영에서 일정 부분 경영 자율성을 줬다. 이 단계 후 국유기업에서 중앙집권적 계획을 없앴다. 이후 국유기업을 주식회사로 바꾸는 민영화를 확대했다.

북한 최근 경제관리 개선조치의 주요 내용. / 자료=임강택 통일강원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북한 시장화의 주요 특징과 도전 요소'(2014.10.28), 이미지=조현경 시자저널e 디자이너

현재 북한은 국유기업과 공장, 협동농장 등에 일정 부분 경영 자율권을 준 단계에 있다. 김정은 집권 이후 북한은 2012년 ‘6.28 방침’과 2014년 ‘5.30조치’를 통해 공장과 기업, 상점, 협동농장 등에 일정 부분 자율경영권을 부여했다.

 

이에 따라 북한 공장과 기업은 원자재 거래, 생산품목 판매, 판매가격과 임금 결정 등에서 일정 부분 자율성을 갖게 됐다. 기업과 공장은 생산물을 노동자의 노동 양과 질에 따라 차등 분배할 수도 있게 됐다. 이는 북한의 국가 계획 축소, 기업 자율 경영권 확대, 시장 활용, 차등 임금제 도입 의지를 보여준다.

농업부문의 경우 ​북한은 포전담당책임제를 도입했다. 협동농장의 작업 분조 인원을 10~25명에서 4∼6명 정도의 가족영농이 가능한 단위로 줄였다. 생산량의 30%를 국가에 내고 나머지는 생산자가 시장에서 자유롭게 처분하도록 했다. 이와 함께 김정은 위원장은 경제개발구 설치도 확대했다. 현재 북한에는 경제특구 5곳, 경제개발구 22곳이 있다. 경제특구와 개발구는 해외 투자를 유치하기 위한 대외 개방 핵심 지역이다.


다만 전문가들은 북한이 처한 상황과 대응에 따라 ‘북한식 개혁개방’ 방식이 결정될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자동화시스템이 발전한 현 시점에서 북한이 과거 중국, 베트남처럼 노동집약적 산업으로 성장하기 어렵다는 의견도 나왔다. 북한만의 새로운 발전 전략 고민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새로운 사회주의 개혁개방 모델 필요…“노동집약 산업 넘어 IT부문 집중 가능”

박형중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중국과 베트남의 개혁개방 시기였던 70년대 후반에서 90년대는 노동집약적 산업이 장점을 가진 시기였다”며 “그러나 지금은 자동화시스템이 갖춰졌다. 또 아프리카처럼 저임금 개발 국가도 존재한다. 북한이 과거 중국과 베트남처럼 저임금, 노동집약적 산업으로만 발전할 수 있는 기회가 상대적으로 줄었다”고 말했다.

조봉현 IBK경제연구소 부소장도 “북한이 노동력 중심의 농업과 경공업 부문에서도 발전하려 하겠지만, 과거 중국이나 베트남과 달리 IT 산업 부문에도 집중할 것으로 본다”며 “베트남과 중국이 개혁개방 하던 시기와 지금은 많이 달라졌다”고 말했다.

특히 한국이라는 존재가 북한식 개혁개방 모델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의견도 나왔다. 한홍열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는 “북한에게는 남한이 있다”며 “한국이 어떤 자세로 북한과 협력을 하느냐에 따라 북한식 개혁개방 모형이 탄생할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 조선중앙TV는 지난 3월 29일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의 지난 3월 25∼28일 방중 영상을 공개했다. 사진은 중국과학원을 방문한 김 위원장이 전시장에 있는 인공지능(AI)로봇 '지아지아'(佳佳)를 바라보는 모습. / 사진=연합뉴스
전문가들은 북한이 개혁개방 과정에서 국가소유의 기업과 농장을 어느 수준까지 사유화할 수 있을지가 관건이라고 밝혔다. 북한이 폐쇄적 정치 체제를 개혁하지 않는 한 쉽지 않다는 것이다. 


박형중 선임연구위원은 “현재 북한은 국유기업에서 중앙집권적 계획을 일부 없앤 상태까지 도달했다. 북한의 개혁개방이 본격화 되면 국유기업의 민영화가 10년 후에는 가능할 수도 있다”며 “다만 이 과정에서 장애요인도 있다. 국유기업 민영화가 김정은 위원장 체제 보장에 어떤 이익이 될지가 사유화 확대의 관건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박 위원은 “또 지금처럼 북한의 기득권층이 경제적 이득을 독차지하는 시스템이 지속되면 개혁개방에 따른 발전도 어렵다”며 “기업이 지속적으로 생산 활동을 하려면 내부 정치체제도 뒷받침 돼야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중국과 베트남은 개혁개방 시기에 미국과 친교를 맺었다. 미국 자본이나 인력이 들어와도 자신들의 체제를 전복할 것이란 우려가 크지 않았다”며 “그러나 북한이 과연 한국이나 미국의 기술, 인력이 유입될 때 어떠한 자세일지 의문이다. 기술을 전수하러 간 한국인과 미국인들을 감시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조 부소장은 “북한은 그동안 체제 안전에 미칠 영향으로 개혁개방의 성과가 적었다. 북한은 개혁개방에 나서도 이를 급진전시키긴 어려울 것”이라며 “베트남과 중국은 개혁개방 과정에서 대외에 신뢰를 많이 보여줬다. 그러나 북한은 대외 신뢰가 없어 걸림돌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성과 급한 北 정권…개혁개방, 예상보다 빠른 속도낼 수 있어 

 

반면 북한의 사유화 확대 속도가 예상보다 빠를 수 있다는 의견도 나왔다. 홍민 통일연구원 연구위원은 “북한에서 사유화가 제도적으로 허용되면 중국이 밟았던 개혁개방 경로를 빠르게 타고 갈 수 있다”며 “북한의 사유화 법적 허용은 시간이 걸릴 것이다. 그러나 우선적으로 경제개발구와 특구에서 시장경제 원리가 작동할 수 있는 법적 틀을 허용할 수 있다. 이것이 성공적 모델이 되면 사유화 확대가 전면적으로 확대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북한은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7기 3차 전원회의에서도 경제 목표로 가겠다는 취지를 보였다. 그동안 경제특구와 경제개발구를 지정한 것도 사전적 준비를 해온 것”이라며 “북·미 간 타결이 잘 돼 외국인 투자가 가능해지면 생각보다 빨리 이러한 변화가 이뤄질 수 있다. 김정은 위원장도 북한의 그간 시장 경험을 통해 자신감을 갖기 시작했다”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북한이 개혁개방에 나서도 김정은 체제에는 영향이 없을 것으로 전망했다. 중국과 베트남은 개혁개방 후에도 일당지배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조 부소장은 “김정은 위원장이 올해 초부터 비핵화 표명을 통해 개혁개방에 나서려는 것은 경제적 성과를 내기 위한 것”이라며 “이것이 정권 유지에 도움이 되리라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본다. 또 체제 안전에 자신이 있기에 개혁개방에 나서는 것”이라고 말했다.

홍 연구위원은 “북한의 경제 주요 세대인 20~30대는 시장 세대다. 국가에서 배급 받은 경험도 별로 없다”며 “이들은 국가와 시장 경제활동을 분리할 줄 안다. 김정은 체제에 순응하면서 시장 활동에는 적극적이다. 시장 체제 전환이 김정은 체제를 위협하지 않을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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