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4위 LG 총수 등극하는 후계자 구 상무, 불법‧편법 없다지만 ‘착해’ 보이지도 않아

공기는 무거웠습니다. 수십 명의 취재진이 몰렸지만 으레 있을법한 떠들썩한 상황도 연출되지 않았습니다. 누구나 한마디씩 꺼냈지만 그중 어느 누구도 큰 소리를 내진 않았습니다. 중량급 취재원들이 오고갔음에도 요란스러운 취재가 없었습니다. 조용한 장례를 원한 고인의 뜻을 존중하겠다는 거지요. 말하자면 그날의 취재 분위기는 예우를 다한 추모였습니다. 지난 20일부터 3일 간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구본무 LG 회장 빈소 이야기입니다.

그 와중에도 기자들의 취재욕구를 자극하는 대상이 있었습니다. ‘4세 총수’ 등극이 공식화 된 구광모 LG전자 상무 말입니다. 10년 전 배포된 증명사진 하나만으로 존재하는 LG의 후계자. 장례 분위기와는 별개로 누구에게나 엄청난 호기심을 자아내는 인사 아닐까요. 멀리서나마 얼굴이라도 한번 보고 싶었습니다. 아쉽게도 실패했습니다. 저보다 몇 배는 더 부지런한 기자들이 그와 마주쳤다는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포털 댓글이란 게 ‘왜곡된 거울’이라는 걸 드루킹 사태가 잘 말해줬습니다만, 또 즉각적 여론을 파악하기에는 아직 쓸모가 있습니다. 최소한 온라인 공간에는 구 상무의 승계를 둘러싼 비난의 목소리는 많지 않았습니다. 누군가 “중세 시대도 아닌데 무슨 4세 세습인가”라고 댓글을 달면 그 아래 “삼성처럼 편법 쓰지 않고 세금만 잘 내면 되는 거 아니냐”라는 반박댓글이 주렁주렁 매달렸더군요. 온라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LG 흥해라”의 구광모 식 수혜일 터. 그런데, 과연 그럴까요?

 

기업지배구조 전문가인 채이배 바른미래당 의원의 생각은 다릅니다. 그는 논평을 통해 “구 상무의 LG 주식 보유과정을 살펴보면 2003년 0.14%에서 구본무 회장 양자로 입적되면서 2.8%로 증가했다. 2006년 그룹에 입사하고 휴직하는 동안 지분율은 2.8%에서 4.58%로 늘어났으며, LG전자로 복귀하면서부터는 친부 구본능 희성그룹 회장과 고모부 깨끗한 나라 최병민 회장의 증여로 6.24% 지분을 보유함으로써 3대 주주가 되는 발판을 마련했다”고 꼬집었죠.

 

구 상무는 1978년생입니다. 2003년이면 25세였네요. 일반인이라면 군 제대 후 이제 갓 학교에 복학했을 무렵에 초우량기업 보유 주식을 스무 배 늘린 겁니다. 그러다 구 상무는 어느덧 재계 4위 기업에서 지배구조 정점에 있는 지주회사의 3대주주 지위를 얻게 됐습니다. 대체 그 돈을 어디서 마련했을까요? 채 의원은 “전형적인 회사기회유용과 일감몰아주기를 통해 확보한 자금으로 주식을 매입한 것이 아닌지 의구심이 든다”고 지적합니다. 현대자동차에 시트를 납품해 매출을 급격히 키운 어느 ‘전직 대통령 관련 회사’ 이야기가 아닙니다. LG 이야기입니다.

수수께끼를 풀 열쇠는 희성전자입니다. 아마 앞으로도 ‘LG 총수 구광모’와 떼려야 뗄 수 없을 이 회사의 최대고객사는 LG디스플레이입니다. 희성전자는 LG디스플레이가 만드는 LCD(액정표시장치) 패널에 필요한 백라이트유닛(BLU)를 공급하며 성장해왔습니다. 지난해 매출액은 2조원이 넘었더군요. 중국발 공세로 LG디스플레이가 패널 전략을 바꾼 탓에 실적이 하락세지만 2000년대 초 매출이 700억원에 못 미쳤던 걸 고려하면 롤러코스터 같은 성장세네요.

4월 11일 나온 희성전자 ‘연결감사보고서’에 따르면 이 회사 최대주주는 구 상무의 친부 구본능 회장(42.1%)과 삼촌 구본식 부회장(16.7%)입니다. 친인척 사이인 LG 계열사에서 받은 일감 덕에 매출이 늘고, 이게 고스란히 지분가치 상승으로 이어진 셈입니다. 구 상무도 이 과정에서 희성전자 주식을 처분해 시세차익을 얻었고, 이를 통해 LG 주식을 매입했다는 게 채 의원의 추정입니다. 구 상무가 2대주주(7.5%)인 판토스도 LG 품에 안긴 후 그룹 내부거래를 통해 몸집을 키워왔습니다. 당연하지만 판토스 매출규모가 커질수록 구 상무의 지분 가치도 상승하겠죠.

자, 과연 이 과정이 ‘착해’ 보이시나요? 아마 ‘상대적으로 착하다’라는 표현은 가능할 것 같습니다. 어쨌든 LG가 승계를 위해 불법, 편법을 동원했다는 소식은 없으니까요. 하지만 주식회사가 오너일가 친인척이 지배주주인 회사로 부품 일감을 몰아주고, 덕분에 누군가 시세차익을 누리는 게 ‘LG 흥해라’라는 출처 모를 슬로건과 어울려 보이지는 않습니다. 도덕적 판단을 떠나서, 이런 사업구조는 혁신을 자극할 DNA가 될 수도 없습니다. 일감몰아주기가 횡행하니 중견‧중소기업들이 좋은 사업기회에서 자꾸 뒤로 밀리기 때문입니다.

내부거래나 전속거래가 혁신에 불리하다는 건 이미 자본주의의 심장부라는 미국서도 증명이 됐습니다. 미국 산업에 과문했던 저는 이와 같은 사실을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를 통해 알게 됐습니다. 그래서 박 교수가 기자와 만나 건네준 말을 소개하면서 이 글을 갈음할까 합니다. 삼성에 관해 대화하다 나온 말이지만 재벌기업 중 ‘가장 착하다’ LG도 꼭 곱씹어보길 바라면서 제 나름의 긴 댓글로 덧붙입니다.

1960년대까지 미국 자동차산업에서 3사가 카르텔을 형성했었다. 부품업체들과도 모두 전속계약을 체결해 시장에서 경쟁이 없었다. 그러다 일본 업체들이 미국에 공장을 짓고 부품을 현지조달하면서 전속계약이 깨졌다. 부품산업에 경쟁이 일어나 품질이 좋아졌다. 이게 다시 미국 완성차를 살렸다. 미국 시카고대학 비즈니스스쿨 교수들이 쓴 《자본가로부터 자본주의 구하기》라는 책에 나오는 사례다. 부품산업에 경쟁이 없으면 혁신이 일어나기 어렵다. 1980년대 이후 일본, 독일의 제조업 최종부문은 가격경쟁력을 위해 해외로 나갔다. 일본, 독일 국내는 부품소재 중에서도 고부가 가치 위주로 산업이 재편됐다. 그런데 한국은 이 고도화가 단절됐다. 재벌체제 때문이다. 총수의 사익을 추구하는 구조 탓이고 이제 한계에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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