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불확실성 커지는데 주요국 통화 정상화는 가속…5월과 7월로 전문가들 인상시기 전망 갈려

한국은행이 올해 1월에 이어 2월에도 기준 금리를 동결했다. 경기는 나쁘지 않으나 물가 상승 압력이 여전히 낮다는 게 동결을 결정한 배경이었다. 여기에 보호무역주의 확산 움직임 등 불확실성이 커졌다는 점도 통화 완화적 기조를 유지한 요인으로 풀이된다.

금융통화위원회(이하 금통위) 위원들은 만장일치로 기준금리를 동결했다. 하지만 상황은 이전보다 더욱 복잡해졌다. 미국이 시장 예상대로 내달 기준금리를 인상할 경우 한·미 기준금리가 역전되는 까닭이다. 미국뿐만 아니라 영국, 호주, 유럽 등도 통화 정상화에 속도를 낼 것이라는 신호를 보내고 있다. 주요국들이 실제 완화 기조를 축소할 경우 사실상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상 압력은 더욱 높아지게 된다.

그렇다고해서 한국은행이 섣불리 기준금리를 인상하기도 쉽지 않다. 물가 상승률이 높아진 선진국과는 달리 한국은 물가가 여전히 낮은 수준이다. 게다가 잘나가는 수출 산업에 보호무역주의 강화라는 먹구름이 다가오고 있다. 자칫 빠른 정상화로 회복기에 접어든 한국 경제에 찬물을 끼얹을 수도 있는 것이다.

시장 전문가들도 추가 금리 인상 시점에 대한 전망이 갈린다. 일부 전문가들은 대외 여건과 한국은행 총재 교체기를 고려하면 이르면 5월에 추가 금리 인상이 이뤄질 것으로 본다. 다른 전문가들은 물가 상승률이 낮은 데다 지방선거가 끼어 있다는 점을 들어 7월을 추가적인 기준금리 인상 적기로 점치고 있다. 금리 인상 횟수도 연 1~2회로 의견이 갈린다.

◇ 2개월 연속 기준금리 동결…물가 아직 저조

한국은행이 27일 오전 9시 금통위 회의를 열고 현행 연 1.5%인 기준금리를 유지키로 했다. 이는 지난해 11월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올린 이후 올해 1월에 이어 두 번째 동결이다.

기준금리 동결은 시장 예상과도 부합했다. 금융투자협회가 23일 채권시장 전문가 100명을 대상으로 이달 기준금리 인상 여부를 설문조사한 결과 응답자 93%가 한국은행이 기준금리(1.50%)를 동결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 같은 결정 배경에는 물가 상승 압력이 높지 않았던 점이 꼽혔다. 한국은행은 이날 배포한 ‘통화정책방향’에서 “국내 경제가 견실한 성장세를 지속하는 가운데 당분간 수요 측면에서의 물가 상승압력은 크지 않을 것으로 전망되므로 통화 정책의 완화 기조를 유지해나갈 것”이라 밝혔다. 실제 전년 동월 대비 물가 상승률은 지난해 10월 1.8%을 기록한 이후 11월 1.3%, 12월 1.5%, 올해 1월 1%로 한국은행의 물가 관리 목표 수준인 2%에 한참 미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경제 성장 경로에 있어 대외 불확실성이 증대된 점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 특히 미국 보후무역주의 강화는 국내 경기를 이끌어온 수출 산업에 부정적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앞서 평창 동계 올림픽이 한창이던 지난 17일 미국 상무부는 무역확장법 232조 조사 보고서를 공개했다. 이 보고서에는 한국을 비롯한 외국산 철강재에 높은 관세를 부과해야 한다는 내용이 주로 담겨 있다. 무역확장법은 미국 안보를 침해할 소지가 있는 수입에 대해 미국 대통령이 직권으로 이를 제한할 수 있는 법이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이날 기자 설명회에서 “보호무역정책이 미국을 중심으로 해서 점점 강해지고 있다”며 “강화된 무역조치를 숫자로만 놓고보면 현재로선 (부정적 영향이)크진 않다. 다만 이것이 다양한 업종으로 확장되고 심화된다면 우리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적다고 할 수는 없다. 미국에 대한 대미 수출 비중이 높고 대미 무역 흑자 규모가 큰 업종이 타격을 받을 수 있다. 예를 든다면 자동차와 철강이 대표적”이라 밝혔다.

◇ 속도 차 커지는 한국과 주요국 통화정책 정상화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동결하면서 주요국과 통화정책 온도차는 더욱 커지게 됐다. 미국을 비롯해 영국, 유럽 등은 통화 정상화에 속도를 내고 있는 상황인 까닭이다.

미국은 연준이 올해 세 차례 기준금리 인상을 시사한 것과 달리 네 차례 인상이 이뤄질 것으로 예상하는 시각이 적지 않다. 일각에선 다섯 차례 인상도 예상한다. 영란은행(BOE)는 이달 8일 통화정책위원회(MPC)에서 기준금리를 연 0.5%로 동결했지만 MPC 위원 9명 전원이 인플레이션을 용인해서는 안된다는 문구에 동의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 등 주요 외신은 이를 사실상 기준금리를 인상해야 한다는 주장이라 보고 금리 인상 속도가 빨라질 수 있다고 분석했다.

사실상 긴축에 소극적이었던 유럽중앙은행(ECB)이나 일본은행(BOJ)도 올해 새로운 움직임을 보일 가능성이 높아졌다. 지난 11일 FT 보도에 따르면 ECB는 이날 공개한 지난해 12월 통화정책 회의록에서 “경제가 계속 확장되면 올해 초 통화정책에 대한 견해나 선제 안내 관련 문구가 재논의될 수 있다”고 밝혔다. 일본 역시 지난달 9일 장기 국채 매입 규모를 축소한다고 발표하면서 통화 정상화 신호를 보낸 상황이다.

이같은 상황 배경에는 주요국에 물가 상승 압력이 높아진 데 있다. 오는 3월 금리 인상이 유력한 미국 소비자 물가는 올해 1월, 전월 대비 0.5% 올라 시장 예상(0.3% 상승)을 크게 웃돈 까닭이다. 게다가 물가 상승 압력으로 이어지는 고용과 임금 관련된 지표들도 올들어 견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오는 5월에 기준 금리 인상 가능성이 제기되는 영국 역시 지난 1월 소비자물가지수(CPI)가 전년 동월보다 3% 상승하며 시장 전망치(2.9%)와 중앙은행 물가 목표치(2%)를 상회한 상황이다.

◇ 추가 기준금리 인상은 언제?···전문가 “이르면 5월이나 7월”

한국은행 입장에선 통화정책 운용이 더욱 어렵게 됐다. 이 총재도 지난 20일 한국·스위스 통화스와프 협정식 이후 “경제를 전망할 때도 그렇고 경제 주체들이 올해 경제운용 계획을 짤 때도 미국이 세 번 금리를 올릴 것이라는 예상을 하고 계획을 짰다”며 “예상 외로 미국이 기준금리를 세 번 이상 올리거나, 예상보다 빠른 속도로 올리거나, 유럽중앙은행(ECB)등 다른 곳에서도 완화를 줄이고 긴축적인 모습을 보인다면 분명히 애로가 있을 것이다”고 말하기도 했다.

특히 물가 상승 압력이 높은 주요국들과는 달리 한국의 물가 상승은 정체된 상황이다. 물가가 낮은 상황에서 쉽사리 기준 금리를 올리기에는 리스크가 있는 상황이다. 자칫 회복기에 접어든 한국 경제에 찬물로 작용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기준금리 동결 기조로 가기에는 주요국 통화 정상화에 따른 자본 유출 등 부정적 결과로 이어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전문가들도 추가 금리 인상 횟수와 시점에 대한 전망이 갈리고 있다. 공동락 대신증권 연구원은 “한국의 물가 상승 움직임이 미국, 영국 등 다른 선진국에 비해 크지 않은 점은 그만큼 한국 경제가 이들 국가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뜨겁다는 것과 같다”며 “올해 전체를 봤을 때도 다른 나라들에 비해 경기 여건, 물가 여건이 완만한 상황이어서 연 1회 정도 금리 인상이 이뤄질 것으로 본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미국에서 통화정책 정상화 일정이 생각보다 타이트해지고 가팔라질 가능성이 커졌다. 글로벌 주요국들의 통화정상화 속도도 빨라질 조짐이 보이고 있다. 한국은행이 내외금리차를 신경쓰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통화 정상화 기조는 연동되지 않겠느냐 하는 생각이다”며 “인상 시점은 새 총재가 취임하고 두 번째 금통위인 5월로 예상한다”고 전망했다.

이미선 부국증권 연구원은 “추가적인 기준금리 인상은 빠르면 7월로 예상한다”며 “3월에는 한은 총재 교체가 있다. 6월에는 지방선거를 앞두고 있다. 그 이전에 금리 인상하기에는 부담이 될 것으로 본다. 게다가 물가 지표가 저조해 금리 인상을 서두를 이유는 없어보인다”며 “다만 미국에서 올해 3~4회 정도 기준 금리를 올릴 것으로 보이는데 이 경우 한국은행은 7월을 포함해 하반기 2회 기준 금리를 인상할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27일 오전 서울 세종대로 한국은행에서 임기 마지막 금융통화위원회를 주재하며 생각에 잠겨있다. / 사진=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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