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 특활비 수수 등 의혹 정확한 사실관계 밝혀야

정치는 곧 말이다. 정연하고 아름다운 수사(修辭)로 전달된 메시지는 효과적으로 대중을 설득한다. 반면 논리 전개가 명확하고 사실과 근거를 기초로 한 말이라도 어려우면 대중은 외면한다. 수년 전 서거한 한 대통령이 여전히 대중에게 사랑받는 이유 중 하나는 대중의 언어로 대중에게 메시지를 잘 전달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치가 수사기관의 수사(搜査)를 말 잔치로 어지럽히려 해선 안 된다. 꾸밈만 앞서 논리 전개가 빈약하거나, 사실과 근거가 배제돼서도 안 된다. 이 관점에서 현재 수사(搜査) 선상에 오른 또 다른 전직 대통령의 말은 귀를 막고 싶을 정도로 부끄럽다.


국가정보원의 특수활동비 상납 의혹, 다스(DAS) 실소유주 의혹을 받고 있는 이명박 전 대통령은 지난 17일 수사기관의 압박이 거세지자 기자회견을 열어 “나에게 물어달라”고 말했다. 그는 “더 이상 국가를 위해 헌신한 공직자들을 짜맞추기식 수사로 괴롭히지 말아달라”고도 했다. 나아가 “이번 검찰 수사가 노무현 전 대통령 죽음에 대한 정치보복 성격 또한 있다”고도 규정했다.

총평을 내리자면 내용은 없고 대중을 현혹하는 말 잔치에 불과했다. 특활비 수수 혐의로 측근들이 구속되고 이 전 대통령의 지시 및 연루 증언들이 쏟아지는 상황이었지만, 그는 객관적인 사실관계에 대한 일언반구도 없었다. 기자들의 질문도 받지 않은 이 전 대통령의 행동은 “나에게 물어달라”는 수 초전 발언을 무색하게 만들기도 했다.

이날 전두환씨의 1995년 연희동 ‘골목 성명’을 떠올린 사람은 기자뿐만이 아니었을 것이라 확신한다. 당시 전씨는 검찰이 적법절차에 따라 12·12와 5.17, 5.18에 대한 수사를 종결했으나 김영삼 전 대통령의 지시 한마디로 수사가 재개됐다고 지적하면서 “검찰의 태도는 다분히 정치적 필요에 따른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모든 사건에 대한 책임은 제5공화국을 책임졌던 저에게 모두 물어달라”라는 말도 빼놓지 않았다.

당당했던 전씨의 향후 행보는 잘 알려져 있다. 5분간의 국립서울현충원 참배. 고향인 경상남도 합천군으로의 도주. 그리고 구속.

이 전 대통령이 안타까운 역사를 반복하는 장본인이 되지 않길 바란다. 의혹에 대한 반박을 지나치게 꾸밀 필요도 없다. 증폭된 의혹을 불식시킬 방안은 정확한 사실관계를 밝히는 것뿐이다. 궁색한 정치 수사(修辭)는 그만 듣고 싶다.
저작권자 © 시사저널e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