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년 쌓은 은행 명성, 잃는 건 60초면 충분"…고객 신뢰·조직 윤리의식 높여야

김주원 농협금융지주 준법지원부 팀장이 은행의 준법감시의 중요성, 윤리의식 강화의 필요성을 설명하고 있다. / 사진=노성윤 사진기자

경기가 나쁠수록 은행은 성장한다. 금융의 연금술이란 이런 것이다. 국내 은행들은 올해 상반기에만 8조원 넘는 순익을 거뒀다. 1년 전과 비교하면 171% 증가했다. 경제성장률은 떨어지는데 은행은 이토록 놀라운 성장을 보이고 있다. 그 배경엔 이자이익이 있다. 불경기일수록 고객은 은행 대출 창구를 찾고, 은행은 떼일 염려 없는 가계대출에서 이자를 받는다. 결국 은행 수익의 담보가 서민 빚인 셈이다. 일명 '나라가 망하지 않으면'이란 표현을 은행에선 달리 말한다. '서민이 망하지 않는 한 은행은 성장한다. 특히 불경기에.'

이런 와중에 김주원 농협금융지주 준법지원부 팀장을 만났다. 그는 이 은행 수익의 밑바닥을 들여다보는 사람이다. 수익 창출에 문제가 없는지 확인하고 사내 통제가 가능하도록 조직을 만든다. 은행의 위험 관리, 준법 감시를 위해 일한다. 김 팀장은 "은행은 이익보다 손실을 더 신경써야 한다. 그럴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다"고 말한다. 은행 자본은 '남의 돈'이기 때문이다. 한번 사고가 나면 기존 수익보다 더 큰 손실을 떠안아야 하는 구조에서 은행은 수익을 창출하고 있다. 


24일 농협금융지주에서 2시간 동안 이어진 인터뷰에서 그는 일관되게 '윤리 경영'을 강조했다. 은행이 수익만 추구하기엔 시대 트렌드가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까지 기업이 고객을 끌어갔다면, 앞으론 고객이 기업을 주도한다. 은행이 신뢰로 먹고 산다면 고객 입장에서 경영해야 한다. 특히 앞으로 은행이 금융사고에 예민하게 신경 쓰지 않으면 리스크 관리는 장담할 수 없다고 그는 지적했다.

은행권에서 윤리경영이 부쩍 강조되고 있다. 돈을 관리하는 은행일수록 사고에 주의해야 하는데 지금까지 그러지 못했다. 윤리경영이 소외됐던 것이다. 그런 윤리경영이 주목받기 시작했는데 이유를 어떻게 보나.

시대 변화 때문이다. 과거 정보력과 자금력을 가진 기업이 고객을 끌어왔다면 현재는 고객이 기업을 주도한다. 디지털 시대다. 악덕 기업이 불매운동에 치명적인 타격을 받는 경우가 흔해졌다. 고객을 먼저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되게 됐다. 1998년 IMF사태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지나면서 은행에 윤리경영의 중요성이 대두됐지만 구호에 그쳤다. 금융사고로 인한 과태료 등 손실을 수익이 상쇄하고도 남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법이 바뀌고 은행도 변하고 있다. 정권도 바뀌었다. 금융사고를 내도 이익이 더 클 수 있다는 생각을 할 수 없게 됐다. 금융소비자보호 강화, 집단소송 및 징벌적 손해배상이 법으로 시행될 가능성이 커졌다. 은행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 지난해 청탁금지법이 대표적이다. 은행도 그때 긴장하고 혼란스러워했다. 윤리경영이 은행 문화로 자리잡히지 않으면 리스크 관리가 더 어려워지는 현실로 가고 있다. 

윤리경영이 은행 이익과도 관련 있다고 말하는데 이유가 있나.


은행은 고객 신뢰로 움직인다. 고객 신뢰를 상실한 은행은 생존할 수 없다. 윤리 경영을 하자는 이유는 무엇보다 신뢰를 잃지 말자는 것이다. 고객 신뢰가 큰 은행은 브랜드 이미지 때문에 광고 등 거래 비용을 줄일 수 있다. 자연스럽게 수익이 담보된다. 신뢰야말로 가장 기초적인 은행 자본인 셈이다.

웰스파고 사건이 있다. 미국 4대 은행이다. 소매금융 강자였다. 국내 시중은행들은 하나같이 웰스파고를 벤치마킹했다. 그런 은행이 지난해 윤리경영을 하지 못해 '범죄 기업'이라는 꼬리표를 달게 됐다. 2011년부터 2015년까지 은행이 고객 몰래 210만 개의 유령 입출금 계좌와 신용카드 계좌를 만들었던 것이 드러났다. 이 스캔들이 터지자 정부감독기관(CFPB)는 웰스 파고에 2000억원이라는 사상 최대의 벌금을 부과했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미국의 한 컨설팅 회사는 앞으로 웰스파고에서 112조원 예수금이 이탈하고 9조원 수입이 줄 것이라고 말했다. 160년 넘게 쌓아온 신뢰가 하루아침에 무너진 것이다. 워런버핏은 이를 두고 이렇게 지적했다. "명성을 얻는데 60년 걸렸고, 그것을 잃는 데 60초 걸렸다." 

 

김주원 농협금융지주 팀장이 인터뷰 질문에 답하고 있다. / 사진=노성윤 사진기자
윤리경영을 소홀히 한 결과 비용리스크가 증가한 해외 사례다. 국내 금융권은 어떤가.

국내 금융권에는 '솜방망이 처벌'이 존재한다. 비정상적으로 얻은 수익이 그에 따른 과태료나 과징금보다 많다면 은행은 그 유혹을 뿌리치기 힘들다. 모든 금융사에 매년 반복적으로 금융사고가 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올해부턴 이런 관행이 통하지 않게 됐다. 금융당국이 은행법 등 10개 주요 금융관련 법령을 개정했다. 과태료와 과징금 부과 한도를 기존보다 2배~3배 높였다. 이 법은 지난 10일 국무회의를 통과해 19일부터 시행됐다. 지금까지 은행이 과징금 2억원을 내야했다면 같은 이유로 앞으론 4억, 6억의 과징금을 내게 됐다. 그만큼 리스크 관리가 더 중요해졌다.

지난해 국내 은행을 긴장하게 만든 사건이 있었다. CD금리담합 사건이다. 증거불충분으로 법원에서 무혐의 처리됐지만 담합이 인정됐다면 은행이 부담해야 했을 과징금은 5조원에 달했다. 한 해 장사를 모두 과징금으로 날릴 뻔했다.

금융사고가 반복해서 일어나는 이유는 뭔가.


대개 은행 창구 직원들이 무엇을 팔고 있는지 상품의 이해도가 떨어지는 경우가 있다. 불완전판매가 일어나는 이유다. 더 큰 문제는 불완전판매라는 것을 알고도 비윤리적 행동을 하는 경우가 있다는 점이다. 본인 실적이 상품 판매와 관련 됐기 때문이다. 국내 은행권의 직원 패널티는 크지 않다. 나중에 불완전판매가 드러나도 패널티가 작다보니 직원으로선 금융사고에 대한 경각심이 작아질 수밖에 없다. 이 점도 고쳐야 한다. 

 

지난해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 불완전판매가 논란이 됐다. 한 증권사가 ISA 불완전판매로 20억원 과징금과 기관주의를 받은 사례가 있다. 은행권도 마찬가지다. 일단 만들어 놓고 실적을 올리는 경쟁 문화가 팽배했다. 

 

윤리경영은 금융소비자보호와 맞닿아 있다. 은행의 신뢰를 높이기 위해 꼭 필요하다. 윤리경영 문화를 조직에 맞게 만들어 직원들이 고객을 대할 때 불완전판매, 비도덕적 행위를 하면 안 된다는 인식을 심어줘야 한다. 그래야 금융사고를 예방할 수 있다. 작은 것에서 시작할 수 있다. 은행권 경영진 또한 윤리경영이 높아질수록 수익이 커진다는 생각을 가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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