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등 금융선진국 레그테크 도입 적극적…국내 금융권은 아직 초기단계

글로벌 금융권에선 레그테크(RegTech)가 금융회사들의 준법감시 비용을 낮추는 데 도움이 되는 새로운 산업으로 발전하고 있지만 국내 금융권에선 여전히 논의에 그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 이미지=시사저널e
준법 감시 업무가 인공지능과 결합한 레그테크(RegTech)가 이르면 연내 도입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해외 금융선진국과 비교하면 여전히 늦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에 고도화하는 금융기술에 따른 예상치 못한 사고에 대비해 금융사 준법감시시스템에도 AI시스템이 도입이 빨라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20일 금융권에 따르면 국내 금융권에 AI를 활용한 레그테크 도입이 해외와 비교해 많이 뒤쳐져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레그테크는 규제(Regulation)와 기술(Technology)의 합성어로 규제를 지키면서 데이터를 추출·분석·활용하는 기술이다.

금융기술이 발전하면서 기존 금융규제로는 금융사고를 방지하기 어려운 상황이 현실이 되고 있다. 이에 레그테크는 인공지능 기술을 이용해 리스크 측정, 불법행위 감지 등 업무를 효율적으로 처리할 수 있어 차세대 준법감시시스템으로 금융권에 자리잡을 것으로 전망된다.

해외에서는 이미 금융당국을 중심으로 레그테크를 통한 규제 및 기술의 통합이 시도되고 있다. 영국 금융행위감독청(FCA)은 블록체인 컨소시엄 R3와 공동으로 블록체인 기반의 모기지론 거래내역 분산 원장 시스템을 도입하고 있다. 또 영국 금융감독청은 레그테크 개발과 적용을 위해 350여명에 달하는 전문가를 통해 레그테크가 금융권에 도입돼야 한다고 발표한 바 있다.

호주 증권투자위원회(ASIC)와 싱가폴 금융감독청(MAS)은 자체적인 레그테크 프로젝트 및 포럼을 개최하고 있다. 또 호주 증권투자위원회는 80개 회사와 정기적으로 라운드테이블을 개최하며 레그테크 도입을 위한 논의를 진행해 왔다. 세계경제포럼(WEF)은 2025년 글로벌 금융기관의 30%가 인공지능 기반의 준법감시시스템을 도입할 것으로 전망하기도 했다.

이는 글로벌 경기 침체로 세계 유수의 은행들이 예상치 못한 금융사고를 통해 세금, 벌금, 이행비용을 지불하고 있어 인공지능을 활용한 효율적인 준법 감시 시스템이 필요해졌기 때문이다.

글로벌 금융 리서치그룹 메디치도 글로벌 금융기관들이 규제 컴플라이언스로 쓰는 비용이 80조원에 달한다고 발표한 바 있다. 규제 대응 스프트웨어 시장은 2020년이 되면 130조원까지 커질 것으로 내다봤다. 지능화되는 금융 범죄와 신금융 사업모델 발달로 그에 대응하는 규제와 규정이 증가한 탓이다. 바젤위원회는 이에 2025년에는 글로벌 금융기관의 30%가 인공지능 기반의 준법감시시스템을 도입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국내도 비슷한 상황이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금융사 당기순이익 중 5% 이상이 규정준수를 위한 컴플라이언스 비용으로 지출되고 있다. 매년 40%씩 증가하고 있다. 하지만 국내 레그테크 도입은 걸음마도 떼지 못한 상황이다.

금융감독원 한 관계자는 "우리나라의 레그테크 도입 논의는 늦은 감이 있다"며 "민원 부담이 계속 늘어나고 있는 현실이다. 인원확충에도 부담이 된다. 인공지능 서비스를 이용한 규제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호주 금융감독당국인 증권투자위원회에서 금감원을 방문한 바 있다. 그때 인공지능 시스템인 IBM Watson을 도입한 것을 설명했다. 음성변환 시스템으로 금융투자상품의 불완전판매 검사 등에 활용한다는 설명이다"라며 "그 설명을 들으며 우리도 이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과거 동양증권 불완전판매 때 모든 민원을 수기로 받아쓰고 수 개월에 걸쳐 민원대응에 나선 것을 생각하면 효율적이지 못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국내 금융당국도 이런 금융권의 변화를 인식하고 레크테크 도입 확산을 지원하고 있다. 금융감독원은 올해 주요 업무계획에서 레그테크 기술도입을 지원하겠다는 입장을 명시했다. 디지털 금융환경에 따라 규제환경이 크게 변하고 있는 만큼 인공지능 기술을 활용해 금융사들의 준법감시 영역의 효율화를 추진하겠다는 입장이다.

최흥식 금감원장도 지난 19일 은행연합회에서 열린 '레그테크 도입 및 활성화 과제' 세미나에서 준법감시 업무를 신속하고 효과적으로 처리할 수 있도록 레그테크 도입을 적극적으로 검토해야 한다"며 "금융회사 입장에서는 단기적으로 투자비용이 생기지만 조금만 시계를 넓혀보면 규제 대응과 리스크 관리 능력을 고도화하고 효율성이 높아져 금융회사의 전체적인 비용절감 효과가 더 클 것"이라고 말했다.

 

저작권자 © 시사저널e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