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수의 이권 우선하는 기업문화 바뀌어야…글로벌 기업다운 경영능력과 기업가 정신 정립을

징역 5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1심 양형이다. 법원이 뇌물공여 등 다섯 가지 혐의에 대한 유죄를 인정한 결과다. 

 

특정 사건에 대한 사법적 판단은 “법률이 없으면 범죄도 없고, 형벌도 없다”는 이른바 죄형법정주의에 근거한다. 그러나 최순실 사태이후 민심의 법에 근거한 이재용씨에 대한 양형은 이미 징역 5년을 훌쩍 뛰어 넘는 듯하다. 그 민심법의 근거는 우리 재벌의 역사에 있다. 지난 60여년 정치와 재벌은 공생관계를 형성해 왔다. 재벌사를 들추면 이승만 정권부터 최근까지 다양한 형태의 정경유착과 이권수수 사례들을 쉽게 발견할 수 있는 까닭이다.

그러나 백번 양보하면, 과거의 재벌은 정경유착을 통한 사업권 획득 후 경제발전에 기여한 측면도 있다. 긍정적 측면만 보면 수입대체산업화를 통해 산업화의 기틀을 닦기도 했다. 수출을 늘려 내수를 견인한 이른바 낙수효과에도 공헌했다. 일자리 창출, 납세를 통한 국가재정에의 기여, 각종 재화를 생산해서 소비자 후생에 공헌한 측면도 부정할 수는 없다.

반면 이번 삼성과 이재용씨에게 일어난 사건은 과거와 성격이 판이하다. 오로지 이재용씨의 이익을 위한 정경유착이었다. 즉 이건희 회장의 돌연한 유고 후 이재용씨에게 삼성그룹의 지배권을 무리하게 이전시키는 과정에서 발생했다. 에버랜드와 제일모직을 합병하여 삼성생명(삼성전자 지분 7.5% 보유)의 지배력을 공고히 하고, 연이어 에버랜드와 합병한 제일모직을 상장하여 주가수익비율(PER) 130배까지 고평가시킨 후, 삼성물산(삼성전자 지분 4.2% 보유)이 역사적으로 가장 저평가된 시점을 선택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을 감행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국민연금을 동원했다는 의심도 받고 있다. 그 결과 이재용씨의 삼성전자에 대한 지배 지분율은 11.7%나 증가했다. 약 48조원에 해당한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국민경제에 기여한 측면은 없다. 오히려 한국자본시장의 국제적 신뢰만을 실추시켰을 뿐이다. 삼성의 오만한 이기주의가 빚어낸 불행한 사건이다.

이제 어쩔 수없이 삼성은 지배구조 개편의 길에 접어들었다고 본다. 설령 이재용씨가 항소심에서 무죄판결을 받는다 하더라도 ‘민심의 법’에 근거해서는 이미 기결수 신분이다. 삼성의 전문경영인들은 총수 부재 시, 미래 투자와 사업구조 재편에 애로사항이 많다고 볼멘소리를 하지만 이제는 총수 부재를 전제로 한 새로운 기업문화 및 혁신적인 지배구조 개편을 준비해야 할 시점이다. 세 가지를 제안한다.

첫째, 삼성의 무결성(integrity)을 높이는 방향으로 경영이 이루어져야 한다. 이제까지 삼성은 제품 혁신을 통한 수익성 높은 글로벌 기업으로 평가받아 왔다. 반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수익성만을 추구하는 기업이란 이미지가 강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무결성과 수익성은 상충관계가 아닌 양립할 수 있는 관계임을 이제는 알아야 한다. 그 구체적인 방법론도 ESG(환경, 사회, 지배구조)란 프레임워크로 이미 나와 있다. 따라서 경영전략부터 각 밸류체인까지 ESG요소를 심도있게 체화시키는 경영문화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 경영의 고해성사를 하는 자세로!

둘째, 이미 글로벌 기업인 삼성을 이끌 만한 검증된 글로벌 경영자를 물색해서 조타수로 앉혀야 한다. 경영권은 상속할 수 있으나 경영능력과 기업가정신까지 상속할 수는 없다. 아마존의 제프 베조스, 구글의 에릭 슈미트, 애플의 스티브 잡스, 소프트 뱅크의 손정의와 같은 탁월한 기업가들과 상대할만한 역량 있는 리더를 과거 이건희씨의 그 자리에 앉혀야 한다. 또한 삼성그룹 계열사 사외이사들을 비롯한 이사진에도 글로벌 전문성과 높은 윤리의식을 겸비한 인사들을 많이 데려올 것을 권한다.

셋째, 수평적 수직적 시너지를 구현할 수 있는 삼성의 사업 포트폴리오 등을 감안할 때, 과거 미래전략실이 수행했던 컨트롤 타워는 불가피하다고 본다. 별도의 조직을 꾸리기가 어렵다면 사실상 삼성그룹의 지주사인 삼성물산에서 그 역할을 맡으면 된다. 다만 과거 미전실과 같이 총수 이권을 위해 로비와 각계각층에 대한 관리를 한다면 그것은 시대착오적이다. 대신 여하히 삼성그룹을 관리하여 명실상부한 글로벌 기업으로 우뚝 서게 할 것인지에 몰두해야 한다.

삼성의 막강한 힘과 돈으로 초호화 변호인단을 구성할 수는 있다. 향후 변호인단들의 궤변으로 법정의 판단을 뒤집을 수도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이미 세상이 바뀌었고 민심은 떠났다. 삼성의 영향력으로 언론을 움직여도 민심을 되돌리기는 힘들다. 이제 삼성에게 주어진 선택은 사술(邪術)보다 정도 경영으로 실추된 기업의 명예를 회복시키는 일 뿐이다. 삼성이 과거 회귀가 아닌 미래지향적으로 변신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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