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FTA 폐기론까지 들고 나오는 미국…위기상황서 고환율 정책이 부른 소득재분배 효과 점검해야

#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지난 7월말 기준 지역별 자장면 가격 평균은 서울이 4923원이었고 울산은 5000원으로 전국 광역자치단체 중 가장 높았다. 그런데 4년전인 2013년 8월 자장면 한 그릇의 평균가는 서울이 4409원, 울산은 4000원이었다. 4년 사이에 서울에선 11.7%, 울산에선 25%나 올랐다. 이 기간 동안 서울 비빔밥값 평균은 7864원에서 8269원으로 5.2% 올랐다. 비빔밥값 상승률보다 자장면값 상승률이 훨씬 높았고, 서울보다는 울산에서 자장면 값이 훨씬 많이 뛰었다.
자장면이나 비빔밥은 대표적인 서민들의 음식이다. 그런 만큼 가격이 크게 오르지 않을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속을 들여다보면 상황은 전혀 그렇지 않았고, 지역별 편차 또한 컸다. 무슨 까닭일까.

# 워싱턴 포스트나 블룸버그 등 미국의 주요 언론은 트럼프 행정부가 다음 주 한미자유무역협정(FTA)을 폐기하는 절차에 돌입할 수도 있다고 보도해 파문이 일고 있다. 미국의 요구로 지난달 열린 한미FTA 공동위원회 특별회의에서 한국측이 미국의 요구를 전혀 반영할 기미를 보이지 않자 강경 대응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미국 농축산업계는 이 같은 트럼프 행정부의 노선에 우려를 표명하고 있지만 절대적으로 종사자수가 많은 자동차나 철강업계에선 적극 지지하는 분위기다. 한국의 발 빠른 대응이 필요해 보인다.

# 금융감독원 공시자료에 따르면 삼성전자의 지난해 1인당 평균 연봉은 남성은 1억1600만원, 여성은 8100만원선으로 나타났다. 보통 월급쟁이들이 보기에 입이 딱 벌어지는 수준이다. 그게 샘이 나서인지 중국의 보복으로 회사가 위기에 몰린 현대차에선 노조가 지난 달 28일부터 부분파업을 시작했고, 기아차 노조는 이보다 앞서 지난달 22일부터 부분파업을 진행하고 있다. 특히 기아차는 이와 별도로 노조가 제기한 통상임금 소송에서 패소해 최소 수천억원에 달하는 추가부담이 생길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앞의 세 가지 이슈는 전혀 서로 관계가 없어 보인다. 그러나 속을 들여다보다보면 세 가지 이슈를 공통으로 관통하는 하나의 핵심어가 있다 바로 환율이다. 무엇 때문일까.

◇경상수지 흑자 불구 한국 원화 약세

지난 1일 마감 기준 원·달러 환율은 달러당 1120. 22원으로 지난 7월6일의 단기고점인 달러당 1157.50원보다 3.33% 떨어졌다. 원·달러 환율은 2014년 7월4일 달러당 1007원선까지 내려가 1000원선 밑으로 떨어질 가능성까지 제기됐다. 그런데 이후 환율은 오히려 올라가 2016년 3월4일 1244.70원까지 찍는 등 전반적으로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이후 하락하던 환율은 지난해 12월28일엔 달러당 1212.58원까지 오르기도 했다.


중장기적으로 한국의 경제성장률이 미국의 성장률보다 낮은 것도 아니고, 미국이 경상수지 적자를 계속 이어오고 있는 반면에 한국은 경상수지 흑자를 이어가고 있는데도 한국 원화가치는 오히려 하락했다.

대한민국은 2013년 이후 매년 800억 ~1100억 달러선의 경상수지 흑자를 유지하고 있다. 경제성장률이 아주 높지는 않지만 그래도 플러스를 지속하고 있고, 매년 경상수지 흑자로 보유외환이 늘어나고 있는데도 원화는 오히려 약세를 지속해왔다.

특히 금융위기 직전인 2007년 10월의 월평균환율이 달러당 915.86원이었다는 점을 감안할 때 지금 환율엔 납득이 가지 않는 부분이 적지 않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금융위기를 만나 미국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엄청난 규모의 달러화를 찍어내 달러가치가 크게 손상됐는데도 원화가치는 상승하기는커녕 오히려 큰 폭으로 떨어졌다. 미국 입장에서 본다면 달러화가 싸져야 하는데 오히려 원화가 싸졌으니 기가 찰 노릇일 게다.

원화가 이렇게 싸게 유지된 데는 어떤 경로이든 환율 관리의 의도가 있었다고 추정할 수 있다. LG경제연구원은 최근 한국의 외환위기 가능성은 사실상 사라졌고, 오히려 외화유입이 급증하면서 원화절상 압력이 커져 대책이 필요하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냈다.

◇고환율 이익 국민 모두의 부담에서 나와

그러나 국내 환율흐름을 유심히 관찰해보면 연말 결산을 앞두고 상승세를 타는 경향이 적지 않게 보이고 있다. 연말 환율이 높아져 이익을 보는 것은 당연히 수출기업들이다.

이렇게 환율이 오르면 수출기업들은 힘들이지 않고 이익을 늘릴 수 있으니 고환율이 유지되도록 분위기를 조성했고, 이것이 삼성전자나 현대차를 비롯한 수출의 이익증대로 연결돼 이들 기업 임직원들의 임금수준을 올리는데 한 몫 했다고 할 수 있다.

문제는 이들 기업들이 이렇게 힘들이지 않고 번 돈을 펑펑 쓰는 가운데 중소기업과 대기업의 격차가 급격히 벌어졌고, 수입물가가 급등하면서 자장면값에까지 영향을 주어 국민모두가 그 부담을 안게 된다는 점이다.
 

그런데도 정부는 수출을 늘리기 위한 정책에만 신경을 썼지 이처럼 환율에 의한 소득재분배효과에는 거의 신경을 쓰지 않았다. 결국 국민들이 비싸게 사들인 밀가루 때문에 가격이 비싸진 자장면을 먹어준 덕에 삼성전자나 현대차의 이익이 유지됐다고 할 수 있다.

한국 정부는 트럼프 행정부가 한미FTA를 폐기하겠다는 얘기까지 꺼내게 된 속내를 한국 입장에서만 해석하는 오류를 극복해야 한다. 한국 사람들이 좋아하는 차종 가운데 하나인 랜드로버가 왜 미국에서보다 그토록 비싸야 하는지를 생각해야 한다. 상대와 협상하려면 상대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대안을 모색해야 하는 게 정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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